봄비가 어제 오후부터 밤에도 그치지 않았고, 오늘 아침까지도 여전히 냇물을 불리고 있다.
각시비 오는 이른 아침에 두툼한 등산화를 신고 검은 우산을 받쳐 들고 산책을 나섰다.
일찍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자동차들이 드문드문 신호등 앞에 머물렀다 떠난다.
우리가 수없이 반복해 온 머물렀다 떠나기.
신호등처럼 짧게, 또는 영원처럼 길게......
작년 11월부터 브런치에 연재로 '어느 곳'에 얽힌 이야기들을 어설프게 엮어 보았다.
어떤 장소에 의미를 부여할 땐 반드시 그곳에 나의 서사가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구경으로 끝난 장소는 아마도 기억에서 이미 잊혀진 것 같아.
내게 달콤했던 곳보다 가슴 아팠던 곳이 더욱 짙은 기억으로 새겨져 있는 걸 보면, 새로운 상처를 피해야겠다는 스스로의 보호본능이 작용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점점 옹색해진 나의 테두리를 인정한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장소만 차지하겠다는 다짐!
나에게 '장소'란 사람이고, 일이고, 관계이고, 집이고, 살림이다.
이젠 딱 됐다!
인생 후반전에 마침맞게 설계된 내 주변의 설정들.
배치를 조금 바꿀 수는 있다.
그러나 숫자를 더하고 깊이를 더하기는 스스로 지양하기 바람.
이 동네로 이사 온 지 일곱 달이 됐다.
작년 여름 막바지에 와서 올봄을 맞았으니 여기서 사계절을 모두 만난 셈이다.
도시와 시골의 경계, 혼잡과 고요의 경계에 머무는 곳.
양손에 떡 쥐는 게 난 좋다.
그래서 이곳은 내게 잘 어울리는 동네다.
네온사인이 멀어지는 곳에선 살 수 없다고 선언했던, 동창생 친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겠네.
비 오는 아침풍경에서 황토색이 초록에게 밀려나고 있다.
자연의 섭리가 그러하니 나도 느리고 굼떠지는 것을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지금 하고 싶은 것을 미리 포기하지는 않는다.
책 읽기, 글쓰기, 장구 치기, 춤추기, 공연보기, 산에 가기......
여생동안 건강을 유지하고 웃을 수 있는 여유로움을 소망한다.
그런데 경제활동에서 손을 놓은 지 2년이 다 돼간다.
너무 일찍 은퇴했나? 손익을 따져 결정한 거니까 그것도 현명한 선택이다.
'규모의 살림'은 내 주특기, 아쉬운 대로 작은 살림은 꾸려갈 수 있겠다.
평화로운 환경과 작은 욕심이 공존하는 삶을 추구함!
브런치 활동 중에 신기하고 부러운 작가님들이 계십니다.
매일 글발행하시는 작가님들 말이에요.
저는 글 한편 쓰는데 네댓 시간이 걸려요.
몇 번 수정하고 사진 골라 넣고 완성하려면 시간과 공력이 더 들지요.
알량한 글 한편 발행하는데도 이러한데, 다작하시는 작가님들의 재능이 정말 부럽습니다.
새벽글쓰기, 아침루틴, 실천하시는 분들께도 찬사를 올립니다.
* <지금여기, 그때거기> 수요연재를 마칩니다.
* 졸필에도 관심 주셨던 구독자님, 라이 킷, 댓글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려요.
* 수요연재는 새로운 주제로 곧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