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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와 전봇대

- 야, 기대!

by 화수분

그 거리를 지날 때면 나의 시선이 꼭 머무는 곳.

걔네들이 마침맞게 기댄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참 절묘하기도 하다.


시골동네지만 차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그 사거리를 오가면서 신호에 걸리면, 난 항아리가 전봇대에 기댄 모습을 신호 대기시간 내내 지켜본다.


그 사거리 항아리집 사장님이 지형지물을 요긴하게 이용해서 물건을 전시해 놓은 모습이 참 재밌다.

4차선 도로가에, 반들반들하고 동글동글한 항아리가 크기별로 죽 늘어서 있는 옹기집.

넓은 마당에 가득 어깨를 맞대고 있는 항아리들은 비를 맞은 날 예쁘고, 눈이 쌓인 날 더 예쁘다.





어디든 기대고 있으면 참 좋다.

물리적으로 기대도 좋고 심리적으로 기대도 좋다.

기댈 곳이 있다는 건 물리적으로는 안전하고, 심리적으로는 든든한 것.


음식점이나 카페에 들어갈 때 나는 등 기댈 곳이 있는 자리를 선호한다.

누구나 그럴 듯싶다. 여럿이 동행했을 경우엔 어른에게 등 기댈 자리를 양보한다.

그 편안함과 아늑함을 알기 때문이다.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댈 때의 만족감은, 온몸의 피로가 풀리고 마음까지 너그럽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그런 카페에서는 오래오래 머물고 싶어 진다.


난 아이들을 키울 때 포대기로 업어주기를 좋아했다.

내 등에 기대는 아기의 옆얼굴이 느껴질 때, 뿌듯해지고 울렁거리던 그 기분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를 흔든다. 겉으로 표현할 수 없는 충만함,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행복감을 저와 나와 둘이서만 교감했었지.


아이들이 크고 누군가 업어줄 일이 없어졌는데, 새 식구 강아지가 왔다.

장차 손주를 업어주려고 간직했던 아이들의 포대기로 강아지를 업어줬다.

우리 강아지 달래는 내 등에 얼굴을 기대지 않았다.

달래는 내가 업어주는 걸 좋아하면서도 두 발을 내 등에 짚었다.


착 앵기면 좋으련만, 나는 늘 아쉬워서 허리를 숙인 채 엉거주춤 강아지를 업고 둥가둥가 거실을 맴돌았다.

달래가 내 등에 착 앵긴 날은, 우리 강아지 달래가 하늘나라에 가기 전 며칠뿐이다.

고개를 들 힘조차 없어서 내 등에 머리를 맡긴 달래를 눈물로 업어 보내고, 난 지금도 포대기를 간직하고 있다. 여전히 누군가를 등에 업고 싶다.


한 때는 나도 지평선 위에 홀로 서있는 것처럼 막막할 때가 있었다.

마음을 기댈 곳이 없어서 늘 먹먹한 마음으로 서성거렸다.

내게 든든한 큰 나무가 되어 줄 거라고 믿었던 사람이, 머지않아 내게 적군처럼 느껴질 때의 그 허망함이란.


지금,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안정된 내 모습이 내 맘에 들고 감사하다.

홀로인 내 모습이, 남들 눈엔 짠하고 외롭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난 괜찮다.


차라리,

함께해서 출렁이는 불안정보다 단조롭고 밋밋하고 비생산적인 혼자의 안정이 더 좋다.

너무 많이 기대지 않고, 자신의 경계를 가진 사람들하고,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며, 몸과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는 지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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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내가 자빠지지 않을 만큼 내게 기대도 좋아.

내겐 바느질 잘된 짱짱한 포대기가 있어!


사진 ; 유튜브,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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