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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로 비가 내릴 때

- 말을 안 한 건 속인 건가?

by 화수분

둘이서만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갔다.

매운탕이었는지 경양식집의 함박스테이크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스물넷 여신입이랑 나이도 모르는 남선배랑 만나서 점심을 먹고 바다를 보러 가는 길.

비가 내렸다.


한 시간쯤 달려서 창밖으로 얼핏 바다가 보였다.

여신입은 그동안 살던 동네, 다니던 학교, 직장 주변 외엔 지리도 잘 모르고 운전도 할 줄 몰랐다.

조수석에서 조신하게 앞만 보고 앉아있던 그녀는, 척척 길을 찾고 물 흐르듯 차를 매끄럽게 운전하는 남자를 '멋지다' 생각하며 곁눈질로 흘끔 보았다.


조금 뽐내듯 남선배는 턱짓으로 바다를 가리켰다.

고개를 돌린 그녀는 저절로 "와~"하고 낮게 탄성을 질렀다.

시야 가득히 펼쳐진 바다 위로 뽀얗게 빗줄기가 내리 꽂힌다.


수평선을 분간할 수도 없이 망망히 열린 바다.

처음 본 풍경이다. 바다 위로 비가 내리다니......

이토록 평화롭고 가득 차고, 우리를 고립시키는 아름다운 빗줄기!


비가 거세진 줄도 몰랐다.

창을 열고 싶었다. 밖에 나가고 싶었다. 비를 맞고 싶었다.

비 맞는 바다풍경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저 앞에 전망대가 보인다.

둘이 한번 마주 보고 차를 세웠다.

우산 한 개를 함께 쓰고 전망대로 올라섰다.


날리는 빗물이 몸을 적셨다. 그것도 좋았다.

남선배가 무슨 말을 해도 잘 안 들렸다.

비 맞는 바다를 바라보자니 가슴이 웅장해졌다.


곧바로 추워져서 차로 돌아왔다.

전망대 주변에 다른 차도 없었고 다른 사람도 없었다. 35년 전 그 시절엔 카페도 없었다.

그녀는 후줄근해져서 조수석에 오똑하니 앉았다.


그래도 기분이 흡족했다.

밖에서 우산 쓰고 담배를 태운 남선배가 급하게 운전석에 앉았다.

"으으" 하면서 손으로 빗물은 훔쳤다.

그녀는 쾌적하지도 않은 이 모든 상황이 즐거웠다.


돌아오는 길에 비는 줄었다.

동네에 가까워지니 비가 그쳤다.

아니, 이 동네엔 비가 오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는 마치 영화 속이나 동화 속 체험을 다녀온 것처럼 벌써 비 내리던 바다가 아득해졌다.

남선배가 그녀를 집 앞에서 내려줬는지 정류장에 내려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차에서 내릴 때, 조수석 시트가 비 맞은 옷 때문에 젖었을까 신경 썼던 기억이 난다.




다음날 여선배가 쇼핑백을 하나 건네며 말했다.

"음, 이따가 OOO샘한테 이것 좀 전해줘. 숙직했다고 와이프가 놓고 갔나 보네."


여신입은 순간 오른쪽 어깨가 '화끈화끈'해졌다.

남선배와 우산 한 개 쓰고 바다전망대 올라갈 때 '간질간질' 했던 거기.


*모든 사진출처--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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