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심한 카공족 입문기
아침인데도 창밖이 아직 침침하다.
겨울 끝자락을 붙잡는 가랑비가 빈 밭에도, 저수지에도, 마른 숲에도 촉촉하게 스며든다.
오늘은 월요일, 오전에 라인댄스 수업에 간다.
12시에 라인댄스 수업이 끝나면 회원들과 근처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신다.
점심 먹으러 가는 식당은 분식집이다. 동네에서 다 아는 맛집이다.
우리 팀 6~7명이 언제나 팥죽, 수제비, 순두부찌개를 인원수대로 시켜서 골고루 나누어 먹는다.
커피집도 오가는 길에 있는데 두 달쯤 전에 젊은 자매가 오픈한 커피맛집이다.
테이블이 여섯 개 있는 소박하고 작은 커피숍에 손님이 많아서 우리가 앉을자리가 없을 때도 있다.
오늘은 다행히 안 쪽에 빈자리가 있어서 2시 무렵까지 거기서 이야기를 나눴다.
설명절 잘 보내라는 인사를 서로서로 나누고 헤어져, 이제는 나 혼자서 다섯 시간을 보내야 한다.
집에 다녀오기에는 좀 멀고 시간도 아깝고.
생각해 둔 도서관을 찾아 가야지하고 운전해 갔다.
아침부터 내린 비가 그대로 늘지도 줄지도 않고 종일 세상을 적실 모양이다.
마침 어제가 입춘절기였으니 이젠, 분명코 봄이로구나!
도심에 자리 잡은 도서관 진입로가 모처럼 한산하고 주차장도 빈자리가 제법 있어서 '웬 떡이냐'하고 가까운 곳에 주차를 했다. 책과 노트북까지 챙겨 들고 우산을 받치고 기우뚱거리며 빗물 젖은 데크길을 백 미터쯤 걸었다. 오래된 벚나무 아래 데크길을 만들면서 벚나무 밑동만큼 구멍을 파내고 판재를 깔았기 때문에, 걷는 사람에게 한결 운치를 더해주는 예쁜 길이 맘에 들었다. 더군다나 비에 젖은 벚나무의 검은 몸피를 보는 것을 나는 무척 좋아하는 편이라 좀 무거운 걸음도 괜찮았다.
아뿔싸!
오늘 월요일, 휴관이네.
어쩐지 모두 좋더라니.
또 무거운 가방 들고 우산 받치고 되돌아간다.
되돌아가는 길엔, 담배를 피우며 마주 오는 아저씨가 데크길을 차지하고 오므로 난 데크아래 아스팔트길로 내려서서 절벅거리며 발을 적셔야 했다.
운전석에서 곰곰이 생각하고 앉아있다.
집에 가고 싶어졌다. 그래도 기다려야 한다.
돌아오는 금요일, 전통풍물패 공연을 위한 총연습이 오늘 저녁에 있기 때문에 빠지면 안 된다.
평소에는 화요일에 장구수업을 하는데 오늘 특별일정이 잡혀서 긴 시간의 공백이 난감해졌다.
연습실 가까운 카페에 가서 글을 써야지.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쳐놓고 글을 써본 적이 없어서 어쩌지?
눈치 보이지 않을까? 어떤 카페로 가야 할까?
연습실에서 가까운 대학교 앞을 한 바퀴 돌았다.
규모가 크고 2층도 있고, 주차장이 넓은 카페를 찾았다.
주차를 하고도 차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망설였다.
안 해본 짓 하기가 이렇게 망설여 지다니......
카모마일 한 잔을 받아 들고 2층으로 올라왔다.
넓고 트인 분위기가 시원하다. 큰 공기청정기도 있다.
이미 몇몇 젊은이들이 노트북을 펼쳐놓고 있다.
라운드 진 창가를 따라 좁은 붙박이 책상과 전기 콘센트, 키 높은 의자가 가지런히 준비돼 있다.
끝자리를 잡고 앉았다. 노트북을 펼치고 안내돼 있는 와이파이를 잡고 한시름 놓았다.
따뜻한 차를 마신다. 창밖으로 얌전한 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다.
카페 2층에서 내려다보이는 8차선 도로 위로 차들이 바삐 달린다.
아직 잎이 나지 않은 가로수들은 온몸이 검게 젖었다.
비 맞는 가지 끝끝마다 봄날 터질 꽃눈이 탯자리를 잡고 있겠지.
오늘 하루종일 꽃눈에게 젖 먹이듯 자박자박 내리는 봄비에게 땡큐!
이젠 맘먹고 찾아간 도서관이 휴관이어도 걱정이 없다.
일단, 낯선 카페에 들어서고 보는 거지.
혼자서, 젊은 학생들이 많은 곳에, 민폐가 아닐까, 이런 생각 좀 안 들었으면......
때마침 누가 날 찾나.
음료 한잔 더 시키러 계단을 내려가는 참에 전화가 온다.
주섬주섬 짐 싸들고 반가운 사람 만나러 일단 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