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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런두런 Oct 13. 2023

마음의 은유와 상징

마음 표현하기 편

포장지를 보면 그 안의 물건이 무엇인지 예상이 가능하다.

뽁뽁이로 감싸 있으면 깨어지기 쉬운 것이고, 부드러운 천으로 쌓여 있다면 흠집을 보호하기 위함 일 것이다.

갓 뽑은 작물의 흙을 툭툭 털어 신문지에 쌀 때도 있고, 형형색색의 꽃은 투명 포장지와 리본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마음은 직접 보일 수 없는 형태여서

감싸고 있는 포장으로 그 의미를 전달하기도 한다. 

특히 은유와 상징으로 포장된 마음은 종류가 다양하고, 그 깊이가 풍성하다.

은유는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다른 대상에 빗대어 표현하는 수사법이고,

상징은 추상적인 개념이나 사물을 구체적인 사물이나 행위로 나타내는 개념이다.  



오래전 정신의학과 병동에서 실습 중에 있었던 일이다.

환자의 상태에 대해 병동의 의료진이 함께 논의하는 집담회 시간이었다. 집담회 장소가 환자들의 서예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활동실이었는데, 한 정신의학과 교수님께서 어느 작품에 눈길을 주시면서 그 의미를 다른 참석자들에게 질문하셨다.

주목한 붓글씨 작품은 이것이었다.

'사랑하다 죽어버려라'

짧고 강렬한 문장의 작품이었다.

정신의학에서 '죽음'과 관련된 단어는 여러 가지로 의미심장하다.

특히 '자살'로 해석되기 쉬운 '죽어버려라'라는 표현은 도발적이면서도 의료진으로 하여금 다양한 의학적 판단을 하게끔 만드는 표현이다.

교수님은 몇 가지 질문을 하셨고, 다른 참석자들은 그 작품을 쓴 환자의 정서상태에 대해 의견을 말하였다.

그때 회의 참석자들을 웃게 만든 한 명의 의견이 있었다.

"교수님, 저 글귀는 정호승 시인의 시 제목입니다,
그 환자가 시를 좋아한다고 했어요."

혹시 환자에게 자살사고가 있는지 긴장감이 팽팽한 회의자리였는데, 갑자기 모두가 릴랙스 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는 주치의에게 그 시집을 사서 읽어보라고 말씀하셨다.




또 하나의 어릴 적 에피소드이다.

유년시절 목욕을 마칠 때쯤 엄마는 꼭 욕실 바닥보다 한 단 높은 넓은 판 위에 나를 올라서게 하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차렷 하고 가만히 있으렴"

그리고 따뜻한 물 한 바가지를 어깨 위에서부터 부어 발끝까지 헹구고, 마른 수건으로 온몸을 감싸 욕실 밖으로 내보내셨다. 이것이 목욕의 마지막 절차이다.


이 기억은 수십 년 전 기억인데 나의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다가,

방황을 일단락 짓고 내적 갈등을 마무리해야겠다는 열망으로 가득 찬 날 밤, 꿈에서 다시 생생하게 떠올린 추억이다. 신기한 것은 이 꿈에서 깨어난 아침부터 지지부진하던 일이 정리되는 방향으로 돌아서고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각 개인에게는 자기만의 은유와 상징적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내면의 자아로부터 나온 깊고, 강한 의식이 표출된 것이다.

또 과거의 다양한 경험과 생각들이 결합하여 독창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마음건강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은유와 상징으로 포장된 상대방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다루게 된다.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 것일까?
어떻게 전달하고 싶은 것일까?
얼마나 오랫동안 안고 있던 것일까?
누구에게 보이고 싶은 것일까?


오늘도 풍성한 은유와 상징으로 다가오는 내담자의 마음을

마치 선물 포장을 풀어보는 것처럼 기대하며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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