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약별 Feb 29. 2024

바닷가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누군가의 시선에 담긴 우리, 예쁜 풍경이 되자.






강릉 안목 해변을 찾았다. 꽤 오랜만의 바다.

겨울이지만, 영상 기온의 햇살도 바람도 따스했던 날.

아이들은 바다에서 파도타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차마 물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아이들은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발을 담그며 놀았다.


나는 그때, 아이들의 모습이 아닌, 그림책 "이제 떠나야겠어"를 손에 들고 바다를 배경으로 책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이는 내 옆으로 다가와, 아주 조그만 모래알 같은 조개껍데기를 주었다며 보여주었다.

나는 그게 또 신기해서 아이 손에 올려진 조개껍데기를 관찰하고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누군가가 찍는다.


잠시 후, 2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이 시크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넨다.

아이들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한다. 보내드려도 될까요, 정중하게 묻고는 

그녀가 찍은 사진들을 보여준다. 다행스럽게도 모두 뒷모습, 살짝씩 보이는 옆모습이 전부.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려나 싶던 내 예상과 달라 처음에는 흠칫 놀랐지만, 이내 어떤 연락처도 묻지 않고, 아이폰의 에어드롭 기능을 이용해 사진을 보내주고 돌아서는 그녀.

나는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네긴 했지만 당황스러워서 마음만큼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다.


모래 위에 혼자 무덤덤한 표정으로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고 사진을 찍던 그녀의 모습을, 나는 본듯하다.


낯선 이가 내 모습을 찍었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의 시선에 그 순간만큼은 예쁘게 보였을 우리가, 

그런 우리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담아주고, 일부러 와서 전해준 그녀가 참 용기 있고 다정하게 느껴졌다.

바다를 배경으로 행복해 보이는 우리의 한때, 건네받은 사진에서 그 마음이 느껴져 참 고맙고 따스했다.

오래 기억될 것 같은 우리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겨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훈훈함으로 가득 차는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나는 더 예쁜 마음으로, 예쁘게 살고 싶어졌다.





<기분의 디자인>이란 책에서 읽었던 글귀가 떠올랐다. 나 자신이 먼저 아름다운 풍경의 일부가 되자고

되뇌어 본다.


자신을 풍경이라고 생각했을 때 이왕이면
아름다운 풍경이면 좋겠다고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좋은 기분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주변에서 보면 내 모습도 풍경의 일부일 뿐이거든요.
세상이 아름답길 바란다면 그 풍경의 일부인 나부터
먼저 그렇게 되자는 거죠.

 - 기분의 디자인, 아키타 미치오




2024. 2.18.


 

바닷가에서 찍은 그림책, 이제 떠나야겠어


                    


이전 07화 온실에서 겨울나는 고양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