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그저 견디고 있을 뿐이다. 어른으로서의 일들이 바빴을 뿐이고, 나이의 무게감을 강한 척으로 버텨냈을 뿐이다. 어른도... 아프다.
- 드라마 응답하라 1988 2화 '당신이 나에 대해 착각하는 한 가지 중'
2015년 11월부터 2016년 1월까지 방영된, 즉 지금부터 약 8년 전에 방영된 '응답하라 1988, 2화'에서 나온 대사다. 극 중 주인공인 덕선이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부모님들만 먼저 시골 장례식장으로 떠나고, 덕선이 삼 남매만 뒤늦게 장례식장으로 따라간다. 하지만 시골 할머니 집에서 치러지고 있는 장례식장에서 어른들의 웃고 떠드는 모습에 당황하는 삼 남매. 걱정했던 아빠도 마찬가지. 그러나 뒤늦게 외국에서 큰아빠가 도착하자마자 그제야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는 아빠의 모습에 이제야 깨닫게 된다. 그동안 꾹꾹 참고 있었던 아빠의 모습을.
2007년 나의 24살. 첫 직장에서 신입사원으로 정신없이 일하고 있던 나에게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일하는 시간에는 웬만하면 전화를 하지 않던 엄마였다. 이상함에 전화를 받자마자 격식을 차리는 듯한 말투로 말을 이어가는 엄마.
"XX아. 할머니 돌아가셨다."
오랜 당뇨 합병증으로 고생하시던 할머니였다. 이때도 병원으로 입원 중이었던 할머니. 결국 돌아가신 거였다. 회사에 다급히 말하고, 선배들의 위로를 받고, 그날 일과를 마치고, 혼자 살고 있던 집으로 돌아와 옷을 차려입고, 근처에 살던 이모와 이모부의 차를 타고, 고향 대구로 향했다.
사실 나는 할머니와의 애틋한 기억이 없다. 큰 친손녀이지만 할머니에게는 나보다 더 애틋한 함께 살던 외손녀들이 있었기에 할머니에게도, 나에게도 서로의 존재는 혈연으로 엮인 존재 그 이상 그 이상도 아니었다. 그런 할머니의 죽음 소식을 처음 회사에서 들었을 때는 아무리 애정 없는 관계라도 나에게는 할머니인지라, 그리고 할아버지의 존재는 세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없었던지라 울음이 쏟아지긴 했다. 그 마음은 아마 나의 혈연에 대한 애도, 죽음이라는 자체에 대한 애도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울음은 그날까지는 다시 흐르지는 않았다. 아니 다시는 흐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염습이라는, 그때까지는 알지도 못했던, 처음 보았던 그 의식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장례식장은 어느 장례식장처럼 오랜만에 만난 친척, 지인들 간의 안부를 묻는 자리로 채어졌다. 나의 부모님도 지친 기색이긴 했지만 예상되었던 죽음이었기에 별다른 슬픔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염습. 난 몰랐다. 그때까지도 그 의식에 대해. 집안에 어른이 돌아가신 건 그때가 처음이었고, 아직은 어린 나이 24살이었으니까. 이른 아침 가족들을 부르는 장례식장 직원의 부름에 부모님, 고모, 고모부, 작은 아버지, 큰 손녀인 나는 할머니가 계시는 그곳으로 갔다. 다른 손자 손녀들은 다들 그 자리에 없었다. 그렇게나 할머니가 아끼던 언니들은 아기들 키우느라 바빴고, 동생들은 너무나 어렸다. 그렇게 손자 손녀 중 나만 참석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보았다. 부모님의 눈물을. 아니 울음을. 그리고 고모와 작은 아버지의 울음을. 그리고 나도 덩달아 펑펑 울었다. 나는 내가 이렇게까지 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직도 나는 그때 왜 내가 울었는지 모르겠다. 처음 본 부모님의 울음 때문이었는지, 이제야 실감 나는 할머니의 죽음 때문이었는지, 단순히 죽음이라는 그 단어 때문이었는지는. 그렇게 할머니를 보내드렸다. 그리고 한동안 나는 할머니의 죽음이 현실인지 꿈인지를 꽤 헷갈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14년 후 38살. 작년에 두 번째로 나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14년 사이에 난 신입 사원이 아닌 팀장이라는 직책을 가졌었고, 9년 전에 결혼했고, 7살 된 아들이 있었다. 외갓집에서는 내가 큰 외손녀이다. 친손자보다 더 큰. 그래서 염습도 갔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지 않았다. 함께 가자는 이모들의 말에 순간 고민을 했지만 가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1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난 그때의 그 울음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의 울음과 나의 울음과 그리고 죽음이라는 것 자체를 아직도 감당할 자신이 없는 13년 전 어린 신입 사원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에.
언젠가 나의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면 그때는 피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럼, 그때는 진짜 어른이 될 수 있는 걸까. 누군가의 죽음을 견딘다는 건 어떤 마음인 걸까.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어른이 아닐지. 그렇다면 내가 어른 되는 시기는 최대한 늦게 다가와도 될 것 같다. 아직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