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응답하라 1994
서울의 첫 번째 밤 그 포근하면서도 서걱거리던 이불의 감촉과 뜨거우면서도 서늘했던 그 밤의 공기를 난 아직도 기억한다. 1994년의 서울이란 내게 딱 그랬다. 분주하지만 외롭고 치열하지만 고단하며 뜨겁지만 차가운 도시. 그리하여 정말 속을 알 수 없는 도시. 우린 당당히 서울 시민이 되었지만 아직 서울 사람은 될 수 없었다.
- 드라마 응답하라 1994 1화 서울사람, 삼천포 내레이션-
2013년 10월에 방영된 '응답하라 1994의 첫 1화'에서 나온 대사이다. 2013년이라니 10년 전이다. 내가 쓰면서도 헉 소리가 나온다. 이렇게 오래되었을 줄은. 요새 브런치 글을 쓰느라 드라마의 대사를 찾아보면서 기억에 남은 드라마들이 이렇게 오래되었음을 새삼 느끼면서 생각한다. 과거가 그리우면 늙은 거라는데 벌써 이런 나이가 된 건지. 그리고 생각한다. 새로운 드라마를 봐야겠다는 자기 합리화.^^;;
아무튼 오늘. 이 드라마 이 대사를 선택한 이유는 삼천포의 첫 대사가 마치 나의 첫 대학 생활을 시작할 때, 아니 첫 대학 생활을 위해 짐을 싸 들고 대구에서 상경한 첫 그날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옆에는 함께 짐을 들고 와준 엄마가 있었지만, 엄마나 나나 그 당시 감정은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보다 훨씬 구석에 자리한 학교, 20년 전이니 지금보다 훨씬 낙후한 기숙사(4명이 2층 침대 각 한 칸씩을 쓰고, 공용 샤워실과 화장실을 쓰던 시절이었다)를 보고 엄마는 꼭 이 학교에 다녀야겠냐며 안타까운 한소리를 하시고 내려가셨다. 그 당시 나의 마음은...잘 기억은 안 나지만 막막한 마음 반, 드디어 자유를 얻었다는 해방감 반이 아니었을까. 지방에서 자란 사람들은 알겠지만, 지방에서는 이런 말이 돈다. 서울에 가면 코 베어 간다는 이야기. 서울 사람들은 무섭다는 이야기. 하지만 나는 대학교는 꼭 윗동네로 가고 싶었다. 대구가 왜 그렇게 답답했는지... 그래서 성적에 맞는 학교를 꾸역꾸역 찾아 결국은 갔다. 그 무섭다는 곳으로. 사실 합격했던 서울의 학교는 등록금이 비싸서 서울 근처 용인에 있는 학교로 가긴 했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용인이나 서울이나 무섭기는 매한가지.
그렇게 시작된 나의 서울 언저리 생활은 벌써 20년을 맞이한다. 서울 사람들은 타지도 않는다는 한강 유람선을 대학교 1학년 마지막 기말고사를 마치고 같은 기숙사 생활을 하는 친구들과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함께 타면서 서울의 밤하늘을 구경했고, 심야 영화 3편을 보면서 마지막 영화에서는 잠들어버렸고. 그 당시 친구들과 한강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를 보면서 하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10년 후에 우리는 저 아파트 중 한 곳에 살 수 있을까'(10년 후가 아닌, 20년 후인 지금. 아직도 못 살고 있다).
그 당시에도 유독 길눈이 밝은 친구들을 졸졸 따라다니던 나. 하지만 20년 후인 지금도 여전히 길눈이 밝지 못해 서울 길을 헤매는 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삼성역으로 출퇴근할 때가 있었다. 가끔 출근길에 넓은 차도를 건너기 위해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을 때면 정말 분주하게도 오고 가는 사람들, 그 어느 곳보다도 넓고 복잡한 차도를 보면서 '이곳이 서울이구나, 나는 왜 이런 곳에 아직도 살고 있을까. 어쩌다가 이런 곳에 자리를 잡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물론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보다는 적겠지만 벌써 20년 넘게 이곳에서, 이곳 언저리에서 살고 있는 나지만 아직도 가끔 이곳이 낯선 나이기에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나이기에 가끔 이런 질문을 하곤 한다. '떠날까? 나의 고향으로?' 하지만 언제나 마지막 결론은 '아니. 그럼에도 난 이곳이 좋다'이다. 앞의 대사처럼 '분주하지만 외롭고 치열하지만 고단하며 뜨겁지만 차가운 도시' 이것이 서울을 표현하는,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서울이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곳을 떠날 수 없는 이유는 이곳에서 내가 겪은 수많은 경험과 그 경험과 함께한 수많은 추억과 그 추억과 함께 한 수많은 사람이 여기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20년 동안 때로는 외로웠고, 때로는 정말 치열했고, 때로는 정말 고단했지만, 내 옆에는 이 모든 걸 함께 해준 나의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도 그들이 내 옆에, 이곳에 있기에 난 이곳 서울이 좋다. 아마 차가운 이 도시 서울에 살고 있는 모든 분도 나와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이곳은 우리가 모두 함께 치열하게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에. 혼자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곳, 서울이기 때문에.
그러니 남은 인생도 이곳에서 그들과 함께하고 싶다. 때로는 치열하게, 때로는 여유롭게, 때로는 추억을 되새기며, 우리 모두 함께 이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