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여기는 커스터드 특별한 도시락을 팝니다
하지만 말이죠, 그 한 시절을 함께 즐겁게 지내다가 화려하게 해산하는 관계도 그 나름대로 친구인 건 틀림없어요.
p149
2022년에 출간된 일본힐링소설 '여기는 커스터드 특별한 도시락을 팝니다'에서 나오는 한 문장이다. 고등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 소녀. 친구란 어떤 의미인지, 왜 필요한지조차 모르겠다는 이 소녀에게 제목에 나오는 커스터드 가게 사장님이 해주는 말이다.
이 문장을 보고 난 요새 쓰이는 '시절인연'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났다. 본래는 불교 용어로 '모든 사물의 현상은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는 말을 가르킨다고 한다. 하지만 이보다 '한 때는 친했지만 지금은 친하지 않은 사람'을 가르키는 말로 많이 쓰이는 것 같다. 그 시절에는 죽고 못사는 친구지만 현재는 아닌. 하지만 친구가 아닌 것으로도 단정할 수 없는, 남이라고, 모르는 사이라고도 단정할 수 없는 관계. 그래서 우리는 이를 '시절인연'라는 단어로 쓰나보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대학원 2년, 직장생활 13년.. 쯤? 하나 보면 '시절인연'이라고 불릴만한 인연을 참 많이 만들게 된다. 어쩌면 그 시절 추억 속에는 존재하지만 지금 내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은 인연들까지도.
우리 어린 시절에는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었기에 추억을 남겨둘 사진들도 많이 찍지 못했다. 정말 친한 친구들끼리는 여자들 경우 편지를 주고받았고, 하나의 노트를 공유하여 교환 일기처럼 주고받기도 하긴 했지만, 그 수많은 편지와 교환 일기는 지금 어디로 가버렸는지...
카톡이 생겨나고 나서부터는 인연이 끊긴 사람일지라도 카톡에 계속 남아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간혹 변경된 프로필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다. 혹은 SNS로도. 핸드폰 번호만 알고 있으면 마음만 먹으면 아니 마음을 먹지 않아도 언제든지 그 사람의 안부를 알 수 있는 지금이다. 하지만 SNS를 접속하면 AI가 알아서 나의 지인들을 찾아 추천해 주는 지금도, 여전히 시절인연은 존재한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그 시절 인연을 찾을 수 있을 텐데.
왜일까. 생각해 보면 우리가 기억하고, 추억하는 건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시절 속 함께 했던 그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고등학교 3학년, 수능 시험을 준비하는 팍팍한 수험생 교실. 여고생들만 40명이 넘었던 그곳에서 은근한 경쟁과 여자들만의 특유의 질투와 시기, 고3이라는 특수 상황. 그 숨 막히는 곳에서 내가 믿고 의지했던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난 아마...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그 친구들은 내 옆에 아무도 없다.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전혀 모른다. 대학생이 되고,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면서 점점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겨버렸다. 그녀들 중 한 명은 내 결혼 때까지는 연락이 되었었고, 참석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편지까지 보내오기도 했었다. 그리고 아직도 카톡에는 남아있다. 하지만 섣불리 카톡 채팅방을 누르지 못하는 건 아마 내가 그리운 건 그녀가 아니라 그 시절, 내 옆에서 귀여운 눈웃음을 지으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그녀였기 때문이 아닐까. 카톡의 프로필 사진으로나마 그녀가 잘살고 있는 것 같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난 만족한다. 그 시절 내가 좋아하고, 내가 의지했던 그녀가 현재 살아 있고, 잘 사는 것 같고, 가끔 그리울 때 한 번씩 카톡을 열어보며 추억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시절인연'이라는 게 이런 게 아닐까. 행복했던 시절이든, 불행했던 시절이든, 그 시절을 떠올릴 때면 함께 더 오르는 누군가, 그들이 있기에 그때의 내 시절이 완벽해지는. 그렇기에 지금 그들이 내 옆에 없더라도 그들은 나의 인연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나의 기억 속에 박혀 이따금 기억날 정도면 그건 인연이 분명한 것 같다. 꼭 모든 인연이 자주 연락하고, 자주 만나고, 연락을 이어나가야만 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바쁜 일상에서 한 번씩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그들. 그리고 그 순간 내 마음이 먹먹해지고 애틋해지게 만드는 그들. 어떻게 그들이 인연이 아닐 수가 있을까.
오늘, 나는 나의 지나간, 그렇지만 나를 이따금 미소 짓게 만드는 그 누군가를 기억해 본다. 나의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학창 시절을 그나마 버틸 수 있게 만들어 준 그녀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