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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진 Sep 27. 2024

19. 어머니, 그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ㅡ황재형의  <어머니>

“거 참, 테레비 좀 그만 보고 빨랑 드쇼. 걍 확 꺼버릴까 보다.” 

남편이 쥐고 있던 TV 리모컨을 뺏어 들고 눈을 희번덕거리며 협박을 했다. 야구중계에 정신이 팔려 밥그릇을 보지 않고 식사를 하는 폼이 아주 ‘묘기 대행진’이다. 흰쌀밥 위에 골라준 고등어 살이 산처럼 쌓여 있다. 

아, 이럴 땐 남편이 아니라 팔자에도 없는 딱 ‘막내아들내미’다. 결혼을 하고 난 남편의 ‘엄니’가 되었다. 



남편의 어머니와 한 기의 비석

평생 매운 시집살이를 했던 시어머니에게 남편은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어린 나이에 시집온 그녀는 당당하게 아들을 낳았지만 그녀의 시어머니(남편의 할머니)는  아들 혼자는 외롭다며 또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번번이 윽박질렀다. 이후  내리 딸 다섯을 ‘씀풍씀풍’ 낳은 시어머니는 억울한 죄인이 되어 얼굴조차 들 수 없었다. 그러다가 서른다섯, 늦은 나이에  빛이 찾아들었다. 마지막으로 대문에 빨간 고추를 단 금줄을 걸고 나서야 그녀는 겨우 가슴을 펼 수 있었다. 사내아이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한  막내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멀리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현관 앞에 막둥이가 신던 운동화를 놓아두고, 나가면서 한번 쓸어보고 들어오면서 또 품어보셨던 시어머니. 그녀는 그렇게 아들을 향한 그리움에 가슴이 타 들어갔다. 


여름방학을 맞아 집으로 향한 아들은 곧 보게 될 ‘엄니’를 볼 생각에 마음은 비행기 창 밖의 구름보다 더 두둥실 떠 있었다. 10개월 만에 드디어 꿈에 그리던 어머니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공항에 마중 나와 있을 어머니를 보면 큰 절을 할까, 아님 꼭 안아드릴까 즐거운 고민으로 지루한 15시간 비행시간도 견뎌낼 수 있었다.

드디어 김포공항에 도착, 입국장에 들어선 아들은 어머니를 찾았다. 멀리 가족들이 보인다. 누나들과 매형들. 그런데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엄니는? 집에 계셔? 에이 막내아들이 왔는데, 섭하네.” 

어머니가 나오지 않아 아쉬웠던 막둥이는 활짝 웃으며 누이에게 어리광을 부렸다. 누나는 집으로 가기 전에 들를 곳이 있다며, 막내 동생을 차에 태웠다. 


무겁게 가라앉은 차 안의 분위기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임을 직감했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남매를 태운 차는 장흥에 멈춰 섰다. 차에서 내려보니 산이었다. 옆에 서 있던 누나가 이제는 어머니가 이곳에 계신다고 흐느끼며 동생을 끌어안았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엄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아들이 돌아오기 한 달 전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셨다고 한다. 믿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이름이 비석이 되어 차갑게 서 있었다. 아들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그리고 데굴데굴 구르며 통곡했다. ‘엄니’를 부르며, 이제는 안을 수 없는 그 품을 그리며, 어두워질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황재형, <어머니>, 2005, 캔버스에 흙과 혼합재료, 227.0 x 162.0cm, 가나문화재단 소장



화가의 어머니와 한 폭의 설경

대학을 졸업하고 ‘정직한 예술가’로  살기로 결심한 화가는 젊은 아내와 젖먹이 아들을 데리고 제 발로 ‘막장’을 찾아가 광부가 되었다. 강원도에 있는 탄광촌에서 일하며 광부들의 일상, 그리고 ‘막장’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인 기법으로 가슴 먹먹하게 화폭에 담았다. 

이 화가가 바로 '광부 화가' 황재형이다. 그가 2005년에 그린 <어머니>에는 광부가 아닌,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한 아들의 절절함이 배어 있다.

이 작품은 눈 덮인 백두대간의 능선과 협곡을 하늘에서 내려다본 듯한 시선으로 묘사한 풍경화다. 그런데 그는 얼토당토않게 "어머니"라는 숭고한 이름을 제목으로 달았다. 

화가는 대지를 상징하는 의미로 이런 제목을 붙였나 싶어,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관련된 기사를 읽었다. 


"부산에서 큰아들과 지내시던 어머니가 갑작스레 내게로 와 2년 반을 나와 함께 지내셨다. 당시 내가 가난한 시절이어서 잘 모시 지를 못했다. 그런데 또 어느 날 갑작스레 형님에게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전하셨다. 그렇게 부산으로 어머니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눈물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왜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어머니를 좀 더 편안하게 모시지 못했는지,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 휘몰아쳤다." 


여기까지 읽고 '아, 그랬구나'  싶었다. 이어지는 사연은 더 절절했다. 


"어머니는 젊었을 적 남편을 잃고 홀몸으로 우리 형제를 키워내신 분이었다. 어머니를 보내고 그 길로 산으로 뛰어 올라가 산 중턱에 멈춰 서서 종일 울었다. 눈물을 흘리는 내 앞에 헐벗고 긁히고 잘린 산이 보였는데, 그 자연 속에서 어머니가 보였다. 오 남매를 키워내고도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내게 큰 울림을 줬다. 그림을 보면 헐벗은 산맥 아래에 3대의 집이 모여 있다. 한 가문을 만들어낸 어머니의 존재를 담아냈다. 그때 부산으로 갑작스레 내려간 어머니는 3일 뒤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나마 2년 반을 함께 지낼 수 있었던 것이 참으로 감시한 지점이다."(《서울문화투데이》에서) 


물감에 흙을 섞어 완성한 그림에는 화가의 눈물과 탄식이 함께 담겨 있다. 

설경에 녹아 있어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알 수 있는 초라하고 작은 집엔 불조차 들어와 있지 않다. 어머니를 잃고 세상의 빛도 소리도 그에게서 멀어져 갔다. 화가가 겪은 ‘처연한 고요’로 그의 예술혼도 식어갔다.

맨살을 드러낸 황톳빛 땅은 어머니를 여의고 상실감에 비틀거리는 헐벗은 화가의 마음이다. 황톳빛 산 능선 사이사이에 이제는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어머니’를 찾는 절절한 울부짖음이 메아리 되어 돌아온다. 

그날, 내 남편이 어머니를 잃고 헤매던 그 골짜기에 울려 퍼졌던 통곡처럼. 굽이굽이 골짜기마다 쉬어버린 사내의 쇠목소리가 바람이 되어 매섭게 울어댄다. 



'시어머니의 아들'과 내 '막내아들'

엄니의 아들은  학업을 이어가야 했기에  미국으로 돌아갔다. 1년 후  여름 방학을 맞아 다시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뚜쟁이 아주머니 소개로 나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어머니 없는 집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인지 내 주위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아침마다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조간신문을 들고 집으로 찾아와, 자정이 돼서야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아침에 눈 비비고 일어나면 소파에서 신문을 읽고 있는 그에게  눈곱 가득한 맨얼굴을 보이게 되어  민망했지만 오지 말라고 할 수 없었다.

그 여름, 우리는 무엇에 홀린 듯한 시간을  보내고, 몇 개월 후 식을 올렸다. 그리고 내 시어머니의 아들은 지금까지 나의  ‘막내아들’로 살아가고 있다. 




<함께 듣는 곡>

Ein deutsches Requiem독일 레퀴엠 Op.45  - 브람스 

1곡. Selig sind, die da Leid tragen /denn sie sollen getrostet werden.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요.(마태복음 5장 4절)


음악가의 어머니와 진혼미사곡

1865년, 남편과 헤어져 홀로 살고 있던 브람스의 어머니가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졌습니다. 

마흔이 넘은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여 세 아이를 낳고 30년 넘게 부부로 살아왔습니다. 1년 전 어느 날, 브람스의 아버지는 별거를 요구합니다. 남편과 헤어져 살던 중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아버지보다 17살 연상이었던 어머니는 한쪽 눈과 다리를 심하게 절었기에  브람스에겐 지켜주고 싶은 애틋한 ‘엄니’였습니다. 

비엔나에 살고 있던 브람스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인 함부르크로 서둘러 찾아갔지만 너무 늦게 도착하게 됩니다. 식어가는 어머니의 손을 부여잡은 브람스는 통곡합니다.

어머니를 보내고 다시 비엔나로 돌아온 브람스는 살아남은 자를 위로하고 이제는 고인이 된 어머니를 추모하고자 <독일 레퀴엠>을 완성합니다.

전통적인 레퀴엠은 죽은 자를 위해 영원한 안식을 구하는 ‘진혼 미사곡’입니다. 이제까지의 미사곡은 라틴어로 되어 있지만 브람스는 마르틴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서의 구절로 가사를 채웁니다. 이해하기 힘든 라틴어보다는 일상의 언어로 ‘살아남은 자’들을 위로합니다. 살아 숨 쉬는 보편적 의미의 진혼곡을 완성하기 위해  잠 못 이루었던 음악가의 고뇌와 따뜻한 마음이 오선지에 녹아내립니다.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ㅡ윤동주의 시 <길>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과 죽음에 대한 애통함은 새로운 가정으로, 혹은 예술혼으로 극복해 갑니다. 

살아가는 동안, 사랑했던 이와의 추억은 희미한 옛 그림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잃어가기에, 잊기에 살아내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아내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산산이 부서졌지만, 오늘도 잃어버리지 않고 한 조각 한 조각 찾아내어 설움에 겹도록 불러보는 그 이름은 ‘어머니’입니다.


https://youtu.be/W0VaC9EZZ8w?si=eiN_2mn2JOAKK28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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