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ally don't know love

at all ㅡ에드워드 호퍼, <뉴욕의 방 Room in NewYork>

by 조용진


사랑은 때때로, ‘너만은 내 것’이라고 믿는 순간, 조용히 우리를 비껴간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한 장면이 그랬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캐런(엠마 톰슨)은 남편의 코트 주머니에서 우연히 고급 목걸이 상자를 발견한다..

결혼 생활 내내 스카프만 받아오던 그녀는 반짝이는 금빛을 보자, 들뜬 마음이 관자놀이까지 뛰어오른다. 이 목걸이가 자신을 위한 특별한 선물일 거라 믿으며, 누가 볼세라 조심스레 상자 뚜껑을 닫는다. 그러고는 달뜬 설렘으로 선물을 열어볼 크리스마스이브만 기다린다.

크리스마스 날, 캐런은 한껏 감탄할 준비를 하고 선물 상자를 열었다. 남편의 카드와 함께, 상자 안에는 분명 이전과는 다른 특별한 무언가가 얌전히 놓여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기대하던 반짝이는 하트모양 목걸이가 아닌 조니 미첼의 CD였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그녀

남편의 외도를 직감한 그녀.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어른답게, 아이들 앞에서 침착한 표정을 지으며 침실로 향한다. 그리고 조용히 문을 닫는다. 침대 옆에 선 그녀는 몇 번이고 꺽꺽 터져 나오는 울음을 애써 삼킨다. 방안을 가득 채운 <Both Sides Now>의 멜로디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그녀의 어깨 위로 무심하게 내려앉는다. 크리스마스를 위해 입은 가디건의 붉은 색상마저 슬픔을 고조시킨다. 그녀는 결혼생활 내내 남편과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진정한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 믿어왔다. 하지만 그 믿음은 남편의 외도를 직감한 순간, 조니 미첼의 노래와 함께 산산이 무너져 내렸다.

그 노래, <Both Sides Now>. 조니 미첼(Joni Mitchell, 1943~ )은 이 곡을 어떻게 쓰게 되었을까?


구름, 사랑처럼 인생처럼

"나는 구름을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보았다.”

1966년, 비행기 안에서 소설을 읽던 조니 미첼에게 이 한 문장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솔 벨로(Saul Bellow, 1915~2005)의 소설,『비의 왕 헨더슨(Henderson the Rain King)』(1959) 안에 숨어 있던 글이었다. 그녀는 책을 덮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천천히 밀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곧,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위에서 내려다본 구름은 땅에서 올려다보던 구름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사랑처럼, 마치 인생처럼, 그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양면의 시선이기도 했다.

그 무렵, 조니 미첼은 사랑과 이별을 겪으며 감정의 깊은 격류에 휘말려 있었다. 미혼모였던 그녀는 가난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딸을 입양 보내야 했고, 그 선택은 오래도록 마음을 앓게 했다. 이후 가정을 꾸렸지만, 결혼 생활 역시 그녀를 온전히 품어주지 못했다.

<Both Sides Now>는 그녀가 치열한 전쟁을 치른 상처의 흔적이었다. 사랑의 단맛과 쓴맛, 눈부신 순간들과 어두운 그림자를 지나며 마침내 이 음유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I really don't know love at all.” (나는 모르겠어요. 정말 사랑이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사랑의 뒷면 같은 풍경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뉴욕의 방(Room in New York)>(1932)을 처음 보았을 때, 문득 조니 미첼의 노래가 떠올랐다. 뉴욕의 밤, 마치 밤하늘을 날던 새가 잠시 내려다본 어느 방의 풍경처럼. 창문이 활짝 열린 방에는 정적이 자욱하다.

작은 원형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앉아 있다. 남자는 어두운 얼굴로 신문을 읽는 중이다. 건너편에는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앉아 있다. 여인은 피아노 옆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오른손 둘째 손가락으로 건반 하나를 툭, 툭 건드린다.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을 견뎌내기 위해, 무언가 소리라도 내보려는 듯한 그녀의 몸짓은 뉴욕의 밤 풍경만큼이나 스산하기만 하다.

이 방엔 대화가 없다. 한때는 사랑의 언어로 채워졌을 공간. 하지만 지금, 두 사람은 등을 진 채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본다. 남아 있는 온기마저 방 안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미지근하다.

이 장면은 사랑의 뒷면이다. 모든 것을 내어줄 듯 시작된 사랑은 세월 속에서 침묵과 거리감으로 자라났다. 함께 웃고 울던 시간은 흐릿해졌고, 이제는 서로를 바라보는 일조차 조심스러워졌다.

room-in-new-york.jpg 에드워드 호퍼, <뉴욕의 방>,1932, 캔버스에 유채, 73.66 × 93.03 cm , 미국 쉘던 미술관 소장.


침묵의 표정을 그리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는 늘 이런 장면을 그려왔다. 한때는 "20세기 초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또는 "도시의 고독과 일상의 공기를 그린 거장"이라는 수식어로 불렸지만, 그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아마도 ‘침묵의 화가’ 일 것이다.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젊은 시절 파리를 여행하며 인상주의와 입체주의 화풍을 눈에 익혔다. 그러나 그가 진짜 그리고자 했던 것은 화려한 색채나 구도가 아니라, 도시라는 공간에 흐르는 고요한 소외감이었다. 극적인 서사보다 멈춤의 미학을 선택한 것이다.

광고 일러스트레이터로 생계를 이어가며, 실내의 풍경과 말없이 앉은 사람들, 무채색의 밤과 그 사이에 흐르는 고독의 기류를 꾸준히 그려 나갔다. 그의 시선은 늘 도시의 이면을 향해 있었다. 식당, 극장, 거실처럼 익숙한 공간에 앉은 인물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등을 돌리고 있다. 서로를 바라보는 듯해도 시선이 끝내 닿지 않는다. 마치 한 공간에 있지만, 서로 다른 시간에 속한 사람들처럼.

대표작인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1942)에서는 깊은 밤 카페, 말없이 앉아 있는 네 사람 사이에 흐르는 고립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호텔 방(Hotel Room)>(1931)의 여인은 책을 펼친 채 침대에 앉아 있다. 굽은 어깨와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몸짓에서 우리는 ‘기다림의 공간 속에서 홀로 갇힌 존재’를 마주하게 된다. 이렇듯 호퍼는 ‘함께 있기에 더 깊어지는 도시인의 고독’을 정직하게 표현했다.

그의 그림은 조용하다. 하지만 그 고요함은 식어가는 사랑의 그림자처럼, 오래된 관계 속을 떠도는 긴 한숨처럼, 생생하게 그들의 내면을 비춘다. 호퍼의 침묵은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진실한 감정으로 다가온다.



사랑은 어쩌면... 건반 하나를 누르는 손끝

<Room in New York> 역시 마찬가지다. 한때, 이 방은 더할 나위 없이 따스한 기운으로 감돌았을 것이다. 나지막한 웃음소리, 아무 말하지 않아도 마냥 설렜던 순간들...

하지만 지금, 그들이 머무는 공간은 사랑이 사라진 뒤에 남아있는 빈자리처럼 싸늘하다. 사랑은 처음엔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야기는 하나씩 줄어든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가 된다. 편안함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것은 사랑이 언어를 잃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몸은 가까이 있지만 말은 멀어지고, 표정은 비워진다. 끝내는 ‘건반 하나’를 툭 치는 몸짓으로 서로의 마음을 겨우 떠올리는 모습. 사랑이 끝났다고 말할 수도 없고, 사랑이 남아있다고 확신할 수도 없는 미묘한 공기가 방안을 가득 메운다.

사랑은 어쩌면 감정이 저절로 식어가는 과정을 함께 겪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사랑을 다 안다’고 해맑게 믿었다가, 종국엔 모르겠다고 고개를 떨구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위에, 조니 미첼의 노래가 조미풍처럼 흐른다.

“I really don’t know love at all.”





<함께 듣는 음악>

Joni Mitchell - Both Sides Now


호퍼의 이 그림을 마주하면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왜 이리도 조용하면서도 먹먹한지요. 마치 조니 미첼의 노래처럼 ‘감정의 뒷면’을 포착한 그의 시선이 저릿하게 느껴집니다.

“I've looked at love from both sides now

From give and take, and still somehow

It's love's illusions I recall

I really don't know love at all

난 이제 주었다가도 받는 사랑의 양면을 다 보았어요.

그리고 여전히 사랑은, 내 기억 속에 있는 환상일 뿐이에요.

난 정말 사랑이 뭔지 전혀 모르겠어요."


조니 미첼은 사랑을 달콤하게만 노래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했지만, 그 사랑이 어떻게 식어가는지를, 어떻게 기억 속에서만 남게 되는지를,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겪어온 슬픔은 겹겹이 쌓여 한 편의 시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노래는 잔잔하지만, 속으로 삼키는 눈물처럼 묵직하게 마음을 적십니다.

그림 속의 두 사람도 그랬을 것입니다. 한때는 서로 사랑을 주고받았고, 기대하고 실망했으며, 애써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닿던 그런 시간이 있었겠지요. 하지만 지금, 두 사람에게 남겨진 것은 고요한 방의 침묵과 피아노 건반 하나를 누르는 알량한 손끝뿐입니다. 그 한 음이 사랑의 끝에서 들리는 유일한 대화처럼 울립니다.

사랑은 구름과 닮았습니다. 내려다볼 때와 올려다볼 때가 다르고, 가까이 들여다보아도 좀처럼 내가 생각했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지요. 달콤하기만 했던 사랑은, 어쩌면 추억이라는 이름의 환상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결국, 사랑을 끝까지 겪어낸 사람만이 이렇게 말하나 봅니다.

"I really don’t know love at all.”라고요.


https://youtu.be/7cBf0olE9Yc?si=mxjrrCqv_sfS7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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