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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기 Oct 22. 2023

너무 느려, 더 빨리, 더 빨리.

그렇지만 이미 2배속이었다.


"SNS를 하기엔 제 나이가 너무 많네요."


어느 날, 우연찮게 유튜브의 이해 못 할 알고리즘을 통해 배우 킬리언 머피가 아날로그 감성의 진가를 보여주는 인터뷰 영상 모음집을 보게 되었다. 무게감 있고 진중하고 느긋해 보이는 태도에 당시 개인적인 사정으로 복잡했던 머리가 정리되고 덩달아 여유로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SNS 계정을 만들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그러기에는 자신의 나이가 너무 많다고 돌려서 거절하는 그의 모습이 재치 있었다. 누군가에겐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접하는 것이 SNS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을 터인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인 그가 기술과는 동떨어진 모습을 보이니 어쩐지 더욱 신선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다소 편향되게 들릴 수 있겠으나, 누구에게나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다주는 게 SNS인 것은 아니다. 사실 SNS를 잘 사용한다는 것은 어쩌면 현대 사회에 매우 잘 적응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응 이전의 삶이 어땠는지 더는 떠오르지 않거나 아예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다시 한번 킬리언 머피의 인터뷰 영상을 시청해 보는 것을 추천하고 넘어가고 싶다. 






언제부터 이렇게 느리게 말하고 있었지?


영상을 볼 때 반드시 재생속도를 조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목적이 있지 않고서야 느리게 보진 않을 테고, 1.5배속 또는 애매하게 1.75배속, 나아가 2배속으로 빠르게 바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의를 볼 때도 1.5배속에서 2배속,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도 1.5배속을 누른다면 느껴본 적 있을 것이다. 1배속, 즉 원래 속도가 얼마나 느린지를 말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생소한 환경에 떨어진대도 얼마든지 적응을 위해 열려있는 우리의 뇌는 곧 2배속을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2배속은 실제 일상이 아니다. 이전에도 언급한 바 있듯, 우리의 일상은 지겨운 자극들로 가득하다. 대화나 독서, 배속을 할 수 없는 영상물도 많다. 배속을 하게 되면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콘텐츠도 많다. 빠른 속도로 영상을 시청하는 데에 익숙해진 우리는 이미 그런 자극에 무뎌져있지만, 한 번쯤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숏폼 영상의 빠른 템포에 뿜어져 나오는 도파민, 1시간이 넘어가는 영상을 보면 벌써 느껴지는 지루함, 15분이 채 되지 않는 영상을 볼 때에도 배속을 걸어야만 하는 습관은 언제부터 우리 모두의 습관이 됐을까? 또, 이런 습관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어차피 기억할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는데.


빠른 속도로 영상을 시청하면, 시각적인 정보는 한꺼번에 더 많이 밀려오게 된다. 우리는 그 많은 양을 단번에 처리할 수 있을까? 복잡한 이야기를 최대한 생략하고 난 답은 '아니다'에 가깝다. 인간의 기억은 여러 단계와 카테고리로 나뉠 수 있는데, 이중 작업기억이라는 부분이 있다. 작업기억은 우리가 정보를 일시적으로 저장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작업기억에서 유지되는 정보는 영원히 남지 않는다. 낯선 휴대폰 번호를 잠깐 기억했다가 전화부에 저장하고 나서 잊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와 달리 우리가 영원히 기억하고 있는 기억들도 많다. 이름과 같이 중요한 정보들은 장기기억에 존재해, 언제든 해당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충분한 단서만 있다면 접근이 가능하다. 장기기억의 용량은 이론적으로 무한하다. 이에 비해 작업기억의 용량에는 한계가 있다. 일시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정보량이 정해져 있으므로, 효율적으로 현재의 기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역량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빠른 속도로 영상을 볼 때 우리에게 쏟아지는 정보는 너무나 많다. 기본 속도로 시청하며 정보를 얻을 때 보다 놓치는 정보는 많아지고, 정작 중요한 내용은 흘려보내고 자잘한 디테일만 흐릿하게 남을 가능성이 커지니 효율적으로 정보를 처리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정보가 과하면 우리 뇌는 쉽게 지친다. 릴스를 몇 십분, 몇 시간이고 보고 나서 하는 것 없이 피로하다면 작업기억- 다른 말로 단기기억을 혹사시켰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빠른 속도에 맞춰 더 빨리 정보를 처리하라는 신호가 끊임없이 뇌에서 쏟아지면, 우리의 인지 체계는 과부하되고, 이로 인해 장기적으로는 주의력과 집중력이 저하되기 쉽다. 






3시간짜리 영화를 어떻게 보는데?


관점을 조금 바꿔서, 인간적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우리는 타인의 표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태어나서부터 타인의 표정으로부터 분위기를 읽고 옳고 그름의 체계를 갖추게 되는 것도 그 일환이다. 이러한 사회적 지각은 우리가 사회에 유연하게 적응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필수적인 생존 역량 중 하나다. 


영상에 특히 사람이 나온다면, 우리는 등장인물들의 상호작용으로부터 무의식적으로 많은 정보를 얻고 학습할 수 있다. 사회적 의사소통에는 다양한 단서가 있는데, 인물의 표정과 목소리 등 비언어적 요소와 언어적 요소를 자연스럽게 연합시켜 감정적인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물을 이해하고 이를 자신의 상황에도 적용해 볼 수도 있다. 


이처럼 인물이 등장하는 콘텐츠를 본다는 것은 다시 말해 사회적 적응에 필수적인 소통 역량을 기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너무 자연스러운 과정이므로 우리는 인식하기도 어려울 수 있지만, 어찌 보면 더할 나위 없이 귀중한 생존 연습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너무 빨리 제시되는 영상에서는 이러한 과정에 충분한 시간을 들이기 어렵다. 내용 이해를 하더라도 1배속으로 시청했을 때만큼 인물의 상황에 몰입하기 어려울 수 있다. 


어쩌면 모든 것이 별 문제가 아니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사회적 의사소통이 점차 사라져간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고요함과 따스함, 아날로그. /ⓒunsplash


짧고 템포가 빠른 영상은 거의 보는 순간 끝이 난다. 끝이 난다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는 말이다. 책을 읽거나 영상을 보는 등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활동을 할 때, 우리는 뭔가 끝으로 달했을 때의 보상을 기대하며 시청하는 행위를 지속한다. 그렇지만 그 결과가 빠르게 주어진다면 만족을 지연할 필요가 없이 보상이 주어져서 즉각적으로 만족감을 느낀다.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이 보상이 주어지는 그 형식에 익숙해지게 되면 우린 더는 무언가를 기다리기 어려워진다. 또 긴 시간을 기다릴 수 있을 만큼 주의력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이미 단기 보상 체계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잘난척 할 생각은 아니다. 숏폼 영상, 나 역시 시간이 날 때마다 시청한다. 시간이 없더라도 자동적으로 확인할 때가 많다. 영상 배속 재생이야말로 나의 친구다. 인터넷에 확장 프로그램으로 추가해 두었을 정도로 느리게 제시되는 영상을 견딜 수 없어한다. 그렇지만 언제부터였을까? 3시간, 아니 2시간 40분이 넘어가는 영화관 안에서 나는 매우 괴로움을 느꼈다. 영화, 심지어는 음악의 평균 재생 시간도 짧아진다. 분명 나만이 느끼는 괴로움은 아니라는 반증이다.



한 가지 중요한 변명-


PIMU (대화형 미디어의 문제적 사용)라는 단어를 통해 우리가 처한 현상을 재정의했지만, 이후로 어쩐지 이해를 돕기 위해 스마트폰이나 특정 미디어에만 한정해서 글을 진행하게 되는 점에 양해를 구하고 싶다. PIMU가 현실의 거시적 현상을 해석하기 위해 가장 적절한 정의임에는 틀림이 없다. 스마트폰, 컴퓨터, 게임 등. 기기는 다양하고 특정 미디어에 집중해서 중독에 한정하여 현상을 이해하자니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문제 현상을 논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상상하기 쉬운 예시를 드는 것이 적절하다. 그 점이 직관적이고 이해가 빠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도 마찬가지로 특정 미디어를 들어 예시를 들어보고자 한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PIMU로 현상을 정의한 뒤 작성하는 글임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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