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에 관한 정보를 담은 ‘론리 플레닛’ 책은 여행지에서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것이었다. 책이 워낙 두꺼워서 필요한 도시별로 뜯어 얇은 책으로 만들어 가지고 다녔다. 한 도시를 정복할 때마다 그 도시가 해당된 소분한 책을 버리는 것을 즐겼는데, 그 책이 이리도 그리울 줄 알았더라면 어디 잘 모아둘걸 그랬다.
나는 여행객들이 늘 북적이는 유명한 관광지로의 여정을 즐기지 않는다. ‘론리 플레닛’ 책에서 가장 좋아했던 문구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이었다. 두 세 페이지로 길게 묘사된 장소보다는 한 페이지 저 구석에 간단히 적힌 장소를 찾아내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또 정해진 일정대로 움직이며 판에 박힌 듯 똑같아지는 느낌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보의 바다에 살고있는 지금도 인터넷 검색에 의지하기 보단 여행 산문집을 보다가 또는 여행지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맛집이나 방문지에 대한 확신을 갖는다.
나에게 여행을 하면서 가장 잊지 못하는 순간은 대부분 예상치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났다. 창밖으로 바라본 낯선 이들의 일상풍경, 졸다가 잘못 내린 역, 너무 배가 고파 허겁지겁 들어간 식당 등 뜻밖의 일과 인연으로 이루어진 조각조각의 추억들이 내면의 변화를 일으키며 일상을 더 멋지게 살아가게 한다. 과거에도 앞으로도 내 여행이야기는 계획성 없는 여정과, 책과 함께한 개인적인 사건들의 모음집인 '여행 내러티브'일 것이다.
내 여정의 장소는 다양하지만 특별히 인도에서의 여행은 삶에 ‘터닝포인트’라고 정의한다. 여행자의 탈을 쓴 현지인으로서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고, 인간에 대한 터무니없는 기대를 하며 받았던 상처와 경계의 마음을 허무는 계기가 되었다. 방황과 혼란으로 시작한 여행지에서 ‘불완전함’을 인정하며 안정과 자유를 찾았고, 그럼에도 살아내야 하는 숙명 앞에서 큰 위로와 지혜를 얻었다.
20대의 시작 지점에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인도여행을 무탈하게 잘 마친 것은 행운이다. 더불어 이야깃거리로 엮어낼 수 있는 참신한 소재들과 사건들이 있음에 감사하다. 잊지 못할 여행길에서 만난 나무그늘, 산, 바다, 구름, 햇살과 비, 무지개, 별무리, 동물들 그리고 수많은 인연들과 친구들에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