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자들은 여행할 때 항로보다 육로를 이용하는 것에 더 가치를 두는 편이다. 비행기를 타는 것은 너무 쉽고 빠른 여행이며 비싼 선택이기도 해서 배낭여행과 부합하는 면이 적어서 그런가 보다. 나 또한 아주 먼 거리이거나 시간에 쫓기는 경우가 아니면 비행기보다는 기차나 버스를 이용한다. 1년간의 여행을 계획했을 때도 가능하면 육로로 다니기로 암묵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 2년간의 여유로운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서 생존의 현장에 발을 내딛기 전에 미대륙을 여행하기로 했다. 일을 잡으면 1년간 여행해 보자는 희망사항을 실천할 수 없을 것이기에. 그전까지 가장 길게 한 여행이 석 달 남짓이었다. 1년 넘게 여행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삶을 여행처럼 사는 1년의 기간을 갖고 싶었다. 중남미에 가고 싶어 미국에서 시작해서 남쪽으로 1년간 내려가 보자는 게 계획이었다. 인도네시아에 있을 때 미국비자를 미리 받아놨다. 지금은 온라인으로 ESTA 비자 신청이 가능한데 그때는 대사관으로 직접 가서 인터뷰도 하고 비자를 신청해야 했다. 911 사태가 터진 이듬해여서 비자 발급이 더 까다로워졌지만 다행히 1년짜리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스페인어 공부도 그때부터 조금씩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돌아오고 3개월도 안 된 2002년 10월 3일에 뉴욕행 비행기를 탔다. 미국을 동서로 횡단한 후 멕시코로 내려갈 생각이었다. 오후 세 시 정도에 출발해 도쿄를 경유하고도 12시간을 넘게 왔는데 뉴욕은 여전히 10월 3일이었다. 도착한 날 저녁으로 스테이크를 시켜놓고 조금밖에 먹지 못했다. 시차적응이 안 된 몸이 음식을 받아들이질 못했다. 그동안 여행했던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본 백인들은 대부분 여행자여서, 뉴욕에서 보는 사람들도 여행자라고 순간순간 자꾸 혼동하게 되었다. 적응할 게 시차만이 아니었다.
미국인들은 뉴욕이 세계의 수도라고 한다. 세계소식의 주된 출처가 미국인 우리나라에서는 뉴스만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서도 이미 뉴욕의 많은 것을 보았다. 세계경제의 중심지라는 월가를 상징하는 황소 동상, 뮤지컬 공연장들이 있는 브로드웨이의 타임스퀘어, 가을에 운치 있는 센트럴 파크, 뉴욕을 전망할 수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미국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 거대한 공룡뼈가 있는 자연사 박물관, 높은 건물들이 많은 맨해튼, 한 나라의 상징으로나 한 도시의 상징으로 이미 유명한 곳이 많긴 하다.
내가 묵은 숙소에는 게시판에 투어일정이 공지되어 있어 참여하고 싶으면 출발시간에 나가 있으면 되었다. 그 투어들이 자원봉사자가 안내하는 무료 프로그램이다. 다니면서 우리가 쓰는 비용만 내면 되었다. 자원봉사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혜택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사는 곳을 소개하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으며 재능기부도 되는 참 좋은 아이디어다 싶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프로그램을 도입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침 여덟 시 반에 출발해서 뉴욕 전체를 다니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가이드는 제리라는 할아버지였다. 전철을 타고 브루클린으로 가서 맨해튼과 자유의 여신상을 보고 아름다운 브루클린 다리를 걸어서 건넜다. 로우타운, 배터리베이로 해서 스태튼섬도 갔다. 조지 워싱턴 동상이 있는 미국의회 구 의사당, 월가, 뉴욕 증권거래소, 시청, 울워스 빌딩, 트리니티 교회, 세인트폴 성당, 911 테러현장인 그라운드 제로, 차이나타운, Little Italy, Little Korea, 타임스퀘어, 록펠러센터, 5번가, 매리어트호텔, 뉴욕의 야경과 쇼윈도를 보며 새벽 두 시에 숙소로 돌아왔다. 열일곱 시간 동안 다닌 것이다.
제리는 그 긴 일정 동안 자세하게 설명하며 안내했다. 외국어에 오랜 시간 집중하기도 힘들고 걸어 다니기도 피곤해서 중간에 그만두고 싶기도 했지만 쫓아다니다 보니 어딘지도 몰라 그냥 빠져나올 수도 없었다. 뉴욕의 많은 장소를 하루에 훑었다. 이렇게 다니고 나니 그다음 일정은 내가 보고 싶은 것에 집중해서 고르기가 쉬웠다. 다른 투어도 있었는데 매번 늦게 일어나거나 다른 일이 있어 참여하지 못했다.
뉴욕에는 볼거리가 많았다. 구겐하임 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자연사 박물관, 휘트니 미술관, 현대미술관(MOMA)에서 세계의 수도라는 걸 증빙하듯 다양한 전시가 있고 이를 보며 며칠을 보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카르멘 공연을 봤고, 40주년 뉴욕 필름 페스티벌에서 영화 ‘Monday Morning’을 보고, 타임스퀘어에서 ‘Little Ham’이란 흑인 재즈 뮤지컬도 봤다. 거의 매일 보러 나갈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열흘 동안 뉴욕에 있었는데 다양한 공연일정에 뉴욕에 더 있을까 망설여졌다.
또 다른 참신한 경험은 샌디에이고의 한 서점에서였다. 나의 미국 대륙횡단의 끝 지점이었고 미국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서점 2층에서 샌디에이고 오페라의 공연(2003 International Season) 프로그램을 홍보하기 위해 맛보기 공연을 하는 것이다. 오페라 아리아를 좋아해서 일부러 그 홍보시간에 맞춰갔는데 열 명도 안 되는 사람이 앉아 있는 앞에서 가수가 직접 노래하는 경험은 색달랐다. 처음 겪어보는 거라 바로 앞에 있는 오페라 가수를 눈 마주치며 보는 게 어색하긴 했지만 노래가 주는 감동은 컸다. 그만큼 가깝게 느껴져서 오페라에 대한 사람들의 거리감을 좁히는 좋은 방법 같았다. 이런 홍보는 공연하는 측이나 서점에게 모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고 본다. 홍보용 CD까지 나눠 주었다.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를 여행한 것이 처음이었는데 일상에서 접하는 미국은 그리 세련되지 않았다. 음침한 뉴욕의 지하철, 버스 안이고 전철 안이고 개의치 않고 아무 데서나 먹는 사람들, 패스트푸드 체인점이 잔뜩이고 일회용품이 여기저기 버려져 있고, 빈자리에 잠깐이라도 가방을 두지 못하게 하는 박물관 경비원, 군인들 정렬하듯이 승객들을 줄 세웠던 그레이하운드의 한 버스 운전사는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나마 자원봉사 프로그램과 서점의 경험이 이를 상쇄해 줬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 또한 우리보다 훨씬 선진적이긴 했다.
두 달간 미국을 다녔다. 동부에서 미국의 가장 남쪽인 플로리다반도의 키웨스트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와 서쪽으로 간 거다. 예상보다 길어진 건 미국이 얼마나 넓은지 가늠하지 못해서이다. 앨버커키에서 플래그스태프 구간만 기차를 탔고 다른 구간은 모두 버스로 이동했다. 육로로만 대륙횡단하는 일을 미국인들도 버킷리스트에 올릴 정도인가 본데 나는 남미 대륙까지 갈 계획이어서 이것이 그리 대단한 일 같지 않았다.
보통 미대륙 횡단이라고 할 때 미국만을 말하지 북남미 대륙을 가리키지 않는다. 미대륙이라고 하면 아메리카 전체를 말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미국이 그 단어를 독차지하고 있다. 미국을 말하는 USA(United States of America)란 국가명에도 북아메리카가 아니라 아메리카라고 미대륙 전체를 대표하듯이 표현한다. 미국이 아무리 넓다 해도 북미의 반 정도 차지할 뿐인데. 미국이 미대륙을 대표한다고 말하기엔 아메리카 대륙에는 아주 많은 나라가 있고 각각이 너무나 다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