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자영 Jul 02. 2024

악몽

악몽을 꿨다. 내가 수없이 옥상에서 떨어지는 꿈이었다. 겨우 잠에서 깨니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내가 지금 살아있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침대 옆 협탁에 놓인 비상약을 뜯어 물과 함께 삼켰다. 제발, 진정하자. 나는 지금 떨어지고 있지 않아.


극심한 자살충동을 버티고 몇 주 살아가다보면 조금 괜찮아지는 시기가 온다. 마치 내가 정상인이 된 것 같다. 요즘에는 아주 바쁘게 지내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 오전 내내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퇴근 후 운동을 하거나 공부를 한다. 8월까지 마감해야 하는 소설이 있어 틈틈이 글도 쓴다. 죽겠다면서 일상을 꽤 잘 살아나가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습다.


나는 요즘 그냥 살아가고 있다. 하루씩, 또 하루씩 버티면서 살아간다. 나는 색채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각자 가진 분위기, 표정과 말투가 있다. 나는 텅 비어버린 것 같다. 사람들에게 맞추고 사회의 기준에 맞추면서 붕 떠다닐 뿐이다. 나도 내 색채를 가지고 싶다. 나는 지금 무엇을 향해 살아가고 있는가.


그래서, 그냥 살아간다. 의미도 무엇도 없다. 숨을 쉬고 존재하는 것 자체가 버거워서 그 이상 무엇을 할 수가 없다. 물에 젖은 솜마냥 축축 처진다. 무의식 속의 나는 옥상에서 떨어지고 싶은가보다. 그러니까 그런 악몽을 꾸겠지.


예전에 떨어지려 옥상에 올라간 적이 있다. 옥상 문은 잠겨 있었고, 나는 주저앉아 울었다. 너무나 떨어지고 싶은데, 잠겨 있는 문을 보니 서러웠다. 결국 상담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고, 통화 후 나는 얌전히 집으로 내려왔다. 처음 입은 원피스가 먼지에 더럽혀진 것을 본 엄마는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고, 나는 아무 일 없었다며 그저 웃었다.


그러니까, 요즘 악몽을 꾼다. 나는 여전히 죽고 싶은가보다. 그럼에도 현실의 나는 살아간다. 삶의 끈을 놓지 않으려 발버둥친다.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매일을 보낸다. 이제는 이 끝에 무엇이 있을 지라도,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