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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소음 Oct 27. 2024

7. 강수영(1)

물 위를 걷는 사람


  딸랑.

  어서 오세요. 희소는 어깨로 문을 밀며 들어오는 남자를 향해 인사했다. 바닥으로 시선을 내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검은 모자를 깊게 눌러쓴 남자의 걸음에 확신이 생겼다. 눈썹부터 대각선으로 내려간 모자챙의 나머지 부분을 덮은 도톰한 쥐색 후드 집업 모자 사이로 까만색 머리카락이 삐져나왔다. 조임줄을 당기지 않아 하얗고 기다란 목이 훤히 보였다.

  평일 낮이라 카페 안은 한적했다. 희소를 제외한 아르바이트생은 한 명뿐이었다. 주문하시겠어요? 희소의 말에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희소와 눈을 맞췄다. 무표정하던 희소의 눈이 동그랗게 확장됐다. 오빠, 나지막하게 입을 뗀 희소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해영은 손을 올려 모자챙을 눌렀다. 무엇부터 물어야 하는지, 물어도 괜찮은지 망설이는 희소에게 연락 두절의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할 여유는 없었다. 해영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연락도 없이 찾아와서 미안. 희소는 망설이는 해영을 잠자코 기다렸다. 너희 아버지 연락처가 필요해. 입술이 우므러진 희소의 얼굴에 맥이 풀리며 마침내, 라고 말하는 듯했다. 잔잔히 카운터 밖으로 걸어 나와 거리를 좁힌 희소가 목소리를 낮췄다.

  요괴를 찾고 있는 거죠.

  뜻밖에 희소는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요괴에 대해서 아느냐고 물어보려다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 들어오는 손님은 없었지만 옆을 바라보고 양해를 구한 희소는 예상했다는 듯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이게 마지막이에요. 이제 둘이 무엇을 하든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저는 빼주세요.

  희소의 얼굴은 지쳐 있었고 무언가를 단념한 듯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손가락을 움직였다. 한껏 어깨를 움츠린 해영도 머뭇거리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희소의 이름으로 온 메시지를 누르자 ‘박경준’이라고 적힌 메시지 바로 밑줄에 그의 번호가 있었다. 해영은 조금의 변명 없이 그때의 기만에 대해 사과했다. 희소는 조금 전보다 누그러진 표정으로 멈칫거리다 천천히 입을 뗐다.

  아는 사람 중에 처음으로 요괴를 목도한 사람이 있어요.

  그렇게 친밀한 사이는 아니라 연락처는 없지만, 빠르게 덧붙였다.

  이름은 윤정빈이에요.

  여기에 살지 않아서 만남은 어렵겠지만요, 이번에도 작게 덧붙인 희소는 더 할 말이 있는 듯했지만 급해 보이니 어서 가보라고 말했다. 해영은 희소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었으나 오랜 시간 혼자 앓던 것을 분명하게 피력한 희소의 얼굴이 한결 후련해 보여서, 더는 붙잡지 못한 채 고맙다는 말을 끝으로 카페를 나왔다. 익숙한 종소리가 울리고 잦아들자 마음이 들뜨고 다급한 와중에도 향수에 젖어 들었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채로 카페에 나오지 않았으니 카페 사장에게 해고 통보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방전한 휴대폰을 충전한 지 몇 시간 되지 않아 조금 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해영은 희소가 보낸 연락처를 꾹 눌러 메시지를 보냈다. 신해영입니다. 연락 부탁드립니다. 간단한 안부 인사와 부탁을 동봉해 보내자마자 빠르게 답장이 돌아왔다.

  -박경준입니다. 무슨 일 있나요?

  해영은 길거리에 멈춰 서 답장을 보내려다 지척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저번에는 생각이 짧았다고, 사채를 피해 숲으로 도망갔다가 요괴를 마주쳤다고, 알맞은 생략과 요약을 거쳐 상황을 설명했다. 답장이 바로 오지 않았지만 ‘읽음’ 표시가 메시지 옆에 작은 글씨로 떠 있었다.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아봤자 결론은 하나였다.

  요괴에 대해 알고 계신 걸 듣고 싶습니다.

  해영은 경준에게 그은 무언의 선을 기억했다. 서로를 안전하게 갈라놓는 선이라고 자위했지만 잊을 때쯤 마음이 동했고 경준이 느꼈을 무력감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비슷한 고통을 공유하는 경준의 존재로, 적어도 혼자 남겨진 것 같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고통을 끄집어내 거울처럼 비춰 보게 되었다. 불행은 정말 나누어지는 것일까. 함께 불행한 것이 정말로 낫다고 말할 수 있나. 두 배로 불행하고 두 배로 초라한 인생이 아닌가. 어쩌면 불행은 곱셈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현실을 내버려 두고 미지의 존재를 좇는 건 어둠으로 몸을 숨기는 한 쌍의 바퀴벌레나 다름없다고, 스스로를 해치지 못해 안달 난 것처럼. 박약한 자신을 견디지 못하고 괴로워했고 자주 흔들렸으며 번민은 늘었다. 해영은 경준을 외면하면서도 그의 존재로 위로받고 남몰래 부채 의식을 가졌다.

  -제 딸 혜경이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가입한 동호회의 회원들과 함께 요괴를 찾으러 숲에 갔다가 죽어 돌아왔어요.

  해영이 경준을 외면했듯 경준도 해영을 외면하고 비웃을 수 있었다. 그럴 줄 알았다고, 진작 그렇게 해야 했다고, 지난 일을 비난하고 나이를 앞세운 훈계를 늘어놓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경준은 어긋나는 말로 시작하지 않았다. 잠잠히 도움을 청하는 해영의 손을 잡았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감히 짐작할 수조차 없이 거대한 풍랑 같지만, 경준은 비관과 비난으로 삶을 붙들려하지 않았다. 대신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묵묵히 해냈으며, 때로는 포용하고 순응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추념했다. 해영은 망설임 없이 보내온 답장에 가슴 안쪽이 뜨거워졌다. 동시에 사무칠 정도로 커다란 부끄러움을 느꼈다.

  -딸의 죽음에 대해 꾸준히 알아보고 있지만 아직 근접하지도 못했습니다.

  느리지만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적은 문자였다. 아쉬움과 착잡함을 삼키지 못하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 때 하나의 문자가 연달아 전송됐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전화번호였다. 번호 앞에 ‘강수영’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아는 게 없어서 딸이 가입했던 동호회 회장 번호라도 보냅니다. 얻을 게 있을 거예요, 그 문자를 끝으로 뒤늦게 감사 인사를 보내도 답장이 없었다.  

   

  샤프의 모서리가 마모되었다. 길거리에서 받은 전단지의 뒷면은 매끈거리고 두꺼워 몇 번씩 선을 덧대지 않으면 샤프가 마찰한 부분이 잘 보이지 않았다. 종이의 재질이 특수해 선 하나도 신중하게 그어야 했으며 샤프심이 얇고 가냘파서 선명함을 위해 힘을 주면 쉽게 부러졌다. 해영은 샤프를 기울여 얇게 덧칠하며 기억을 더듬어 그렸다.

  조금 전 해영은 경준의 도움으로 얻은 동호회 회장의 번호로 메시지를 남겼다. 구구절절한 사정을 한 자씩 눌러 적다 가지치기 애매한 부분에서 애를 먹어 꽤 시간이 걸렸다. 해영은 답장을 기다리며 집 안을 서성이다, 오는 길에 받고 탁자 위에 올려둔 필라테스 학원 전단지를 집었다. 납치가 빈번했던 몇 년 전, 어딜 가나 붙어 있던 실종된 아동을 찾는 전단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사진이 없으니 기억을 그림으로 옮긴다면 여자에 대해 아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나타나지 않을까. 확신은 없었지만, 해영은 잘라낸 생수병에 꽂혀있던 샤프를 쥐었다.

  해영은 어릴 때부터 생김새를 기억하고 모작하듯 종이에 옮기는 것에 재주가 있었다. 남들과 구별될 정도로 특출난 것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진학은 불가능하니 누구에게도 평가받지 않고 들키지 않을 수 있던, 이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또래의 눈을 빌려 애매함을 특별함으로 치환했던 재주였다. 해영은 나이아를 그리기 시작했다. 어깨를 덮은 긴 머리카락과 처연한 눈동자, 코의 부드러운 곡선과 앙증맞은 입술, 얕은 볼 패임과 둥그런 이마. 며칠간 누구보다 가까이서 바라본 여자의 얼굴은 시간이 지나면서 어떠한 부풀림과 축소 없이 기억 속에서 사진처럼 뚜렷해졌다.

  해영은 카메라를 켰다. 살짝 떠서 아래쪽에 공간이 생긴 장판 위에 그림을 올려두고 휴대폰을 쥔 손을 얼굴 가까이 들어 올렸다. 빛 번짐과 미세한 각도의 차이로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해영은 자신의 그림자가 그림을 가리지 않게 이리저리 돌려가며 정확하게 정면에 두고 해상도를 높인 후 버튼을 눌렀다.

  찰칵. 셔터음이 멎자마자 조금 전 개설한 블로그에 들어가 사진과 함께 사람을 찾는다는 몇 자의 글을 적어 게시했다. 익명 커뮤니티라고 검색해서 나온 온갖 종류의 커뮤니티에도 동일한 글을 올렸다. 그리고 댓글이 달렸을 때 바로 알 수 있도록 알림을 진동으로 설정해 두었다. 해영은 오래되어 배터리가 빠르게 닳는 휴대폰 화면을 끄고 바닥에 둔 그림을 내려 보았다. 여자의 차분한 목소리가 이명처럼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때 여자의 입술에서 모진 원망이 나왔다면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고 상한 기분만 떠올라 여자가 죽든 말든 나서지 않고 관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강한 이질감과 모순을 느낄 정도로 잔잔한 말과 태연한 태도는 상황과 동떨어져 그를 현실로 불러들였다. 여자의 태평하고 침착한 태도는 접었다 펼친 종이처럼 흔적을 남겼다. 죄책감의 형태로 남아 문질러도 당겨도 선명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다.

  해영은 딱딱한 바닥에 쓰러지듯 누웠다. 잠을 청할 때마다 귀를 간질이던 풀이나 바람을 거두는 것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찬기에 익숙해진 몸이 순식간에 풀어졌다. 사실은 현관문을 열었을 때부터 그랬다. 코에 익은 냄새, 알맞은 온기, 알고 있는 가난의 흔적. 두려울 만큼 적응한 익숙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한순간 불안을 잊고 현관에 들어섰다.

  집으로 돌아온 건, 결과적으로 패착이 될지 몰라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안일한 생각 때문에 죽도록 맞은 그날을 잊은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반드시 마주해야 할 일에 손톱만큼이나마 담대해진 것이었다. 언제까지고 숲에서 지낼 수 없는 데다 못 안에서 본 존재가 그 이유를 설명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다는 것과 쌓인 연락도 소식도 없이 사라진 그들의 존재는 티끌 만한 희망을 안겼다. 아주 잊은 건 아니래도 반쯤 포기한 거라면 좋겠다. 말도 안 되는 소망이라는 걸 알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휴대폰 진동에 현실로 내던져졌다.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한 해영은 휴대폰에서 울린 진동임을 깨닫고, 올린 글에 댓글이 달렸다고 생각하며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뜻밖에 그것은 연락이었다. 잠금 화면 위로 뜬 메시지 알림에 발신인은 강수영이었다.

  -죄송하지만 동호회는 더 이상 운영하지 않습니다.

  해영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동호회를 운영하지 않는다니, 예상하지 못한 답에 굳어버린 해영은 형식적인 답장이라도 해야 할지, 다시 경준에게 연락해야 할지 막막함을 느꼈다.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 다른 방법을 고민해 보려던 찰나 또 알림이 울렸다.

  -그렇지만 지나치기엔 제 마음이 편치 않네요.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쁩니다.

  언제 시간 괜찮으신가요, 연속해서 온 문자에 답장을 쓰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안도가 저절로 호흡에 섞여 새어 나왔다. 해영은 가능한 시간과 함께 감사 인사를 몇 번씩 덧붙여 전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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