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하우스는 모델하우스일 뿐입니다!
아파트 분양 당첨은 앞에서 소개한 대로 처음이었다.
솔직히 주변 사람들 중에서도 청약으로 아파트를 구입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2~3년이 지난 신축아파트를 구매하거나, 전세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대인관계가 워낙 활발하지 않은 탓에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어쩌면 나 자신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준비를 해야 될지 더 막막한 게 사실이었다.
아파트 층수 추첨을 끝내고, 바로 계약서를 작성해야 된다고 했을 땐 솔직히 겁도 많이 났었다.
평소 같으면... 혼자서 이런 계약은 꿈도 못 꿨을 것이다.
단순히 원룸 계약이나 전세 같으면 오랜 자취생활로 혼자 부동산을 통해서 방도 알아보면서 계약해 본 적은
꽤 있었지만, 매매를 해 본 적은 난생처음이었다.
원래 성격상 백화점이나 마트에 옷이나 물건을 사러 갈 때도 혼자 가서 잘 사는 편은 아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40대 초반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큰 계약을 할 때는 누군가 옆에 같이 있어주기를 바라는
편인데, 이 때는 혼자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계약서를 작성하면서도 옆에서 설명하는 내용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던 게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그냥 그 당시에는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기쁨에 도취해 있었기 때문에...
마트에서 큰돈을 쓴다고 해도 20만 원 내외만 써도 부들부들 손이 떨린 나였는데...
자그마치 6억 가까이 되는 계약서를 겁도 없이 혼자서 덜컥 작성을 한 것이었다.
머릿속으로는...
'지금 이게 잘하고 있는 건가? 맞겠지? 그래... 이 나이에 아직 결혼을 안 했으니... 집이라도 하나 있어야지!'
혼자서 토닥거리기도 하고, 잘하고 있다는 주문을 수만번은 되새겼던 것 같다.
그리고 층수를 고르고 난 뒤, 뒤에서 업체 직원들과 주변 사람들이 축하의 박수를 쳐주는 분위기에 있다 보면
마치 뭔가 '위대한 사람'이 된 것 마냥 정신이 혼미해지기도 해서 이성적인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기도 했었다
행사 당일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시공업체 관계자들인 듯했다.
그래서 진행도 정신없이 후다닥 해버리는 탓에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었던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진행 순서가...
일단 입구에서부터 신분증을 확인한 후, 추첨 순서를 위한 번호를 배정받는다.
그러고 나서 2층 모델하우스가 있는 곳으로 이동해서 대기하고 있다가 배정받은 순서가 되면 통 속에 있는
층수를 뽑는다. 뽑은 층수가 마음에 드는 경우에는 다음 순서로 진행이 이어지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에는 포기를 할 수 도 있다.
(이 경우 포기를 한다고 해서 청약통장이 쓸모가 없어지는 경우는 아니라고 했다. 왜냐하면 아직 계약 전이기
때문에 청약통장은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들었다... 혹시나 이 정보가 틀릴 수도 있으니 만약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더 자세히 알아보시기를 권합니다)
당첨된 아파트를 계약하겠다는 의사 표시를 하게 되면, 다음 단계는 서류 검토 단계를 거쳐야 된다.
후보 80번임에도 추첨장으로 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서류 검토 과정에서 탈락자들이 생각보다
많이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1순위로 청약이 당첨된 경우라도 서류에서 탈락하는 이유는 여러 경우가 있는데, 그중에서 가점기록을 잘못하는 경우(나이, 자녀, 청약기간 등등)도 많았고, 무주택자로 신청을 했는데,
알고 보니 주택을 가진 경험이 있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솔직히 얘기하면, 난 청약을 넣기 전 작성하는 가점(?)이라고 해야 되나...
정말 최저 수준을 가진 부류들 중 한 명이었다. 청약 기간도 2년 정도 지난 듯했고, 금액도 5만 원씩 그냥 유지하는 수준으로 넣어두었고, 무주택 기간이 그나마 점수를 받았던 것 같다.
(솔직히 채점 항목이 기억이 가물가물한 탓에...)
그래도 중요한 것은 사실적이고 솔직하게 작성해야 된다는 점!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기분 좋게 1순위 당첨이 되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서류를 잘못 적어서 탈락하는 경우도
꽤 많이 발생하기에 청약을 하는 경우라면 이 점은 필히 유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튼, 계약 의사를 밝힌 후 준비해 간 서류를 그 자리에서 바로 검토를 해주는 단계를 거치게 된다.
그 순간은 정말 조마조마하다.
'혹시 서류를 빠트린건 없었나? 나도 모르게 주택을 소유한 적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냥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순간이었다.
"서류 준비 잘 해오셨네요! 검토한 결과 아무 이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상담원의 입에서 이 말이 떨어지기까지... 불과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체감상으로는 꽤 긴 시간
기다렸던 것 같다. 이 과정을 마치면 이제 계약서를 작성하는 순간이다.
준비해 간 인감도장을 조심스럽게 상담사에게 건넨다.
그리고 여러 서류를 작성해야 되는데, 이제까지 살면서 단시간에 이름을 그렇게 많이 적어본 적도 없었던
것 같았다. 꼼꼼히 읽어보고 적어야 되는데, 그럴 시간도 충분치 않고, 그냥 들뜬 마음에 믿고 쓰기 바빴던 것
같았다. 여기서 또 중요한 점 하나...
계약서를 작성할 때, 솔직히 처음에는 아파트 금액만 머릿속에 생각하고 갔었다.
옵션이라는 건 내 계획에 전혀 없었던 부분이었다.
'에이... 아직 혼자 사는데 무슨 옵션이야... 그냥 아파트 자체만 있어도 충분할 것 같은데... 안 해야지!'
이렇게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하면서 들어갔었다.
그런데 막상 설명을 듣다 보면 이런 다짐을 했던 기억은....
마치 '내 머릿속의 지우개'라는 영화 제목처럼 그 부분만 깨끗하게 싹 지워져 기억 자체를 못하게 되었다.
상담사의 설명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면서,
'그래! 맞아! 이건 꼭 필요할 것 같네. 이게 없으면 좀 볼 품 없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나중에 팔게 될 때는 이런 옵션이 있어야 잘 팔릴 것 같은데...'
아직 지어지지도 않은 아파트... 아니 벌써부터 팔 생각으로 옵션을 생각하고 있는 이 모습 자체가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너무 웃겼다.
그래도 다행히 그 순간에는 냉정함을 좀 찾았던 것 같았다.
옵션을 선택하긴 했는데, 정말 필요한 부분만 계약을 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베란다 확장(이건 뭐 거의 필수로 해야 되는 옵션이라...)과 매립형 에어컨 설치, 그리고 중문.
이 세 가지 옵션만 선택을 했고, 장판이나 벽지, 냉장고, 식기세척기 등 나머지 옵션의 유혹들은 꿋꿋이 참고
버텨내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기특하다는....
그런데 이 대목에서 많이 아쉬운 부분도 있다. 허탈하다고 해야 되나?
이 계약을 한지 거의 3년 전인데... 이때가 거의 마지막이었다. 뭐가 마지막이냐고?
아파트 분양이 몰리는 시기의 끝물이라고 해야 되나?
그래서 지방의 35 평수의 아파트 가격이 자그마치 5억에서 6억 원대...
물론 브랜드나 평수에 따라 이 정도의 가격을 하는 곳이 적지 않긴 하지만...
중요한 건 이 아파트를 계약하고 나서 그 후로 분양하는 아파트의 조건들을 보면...
우리에겐 옵션이었지만, 그 옵션이 무상으로 제공되는 경우도 있었고,
특히 더 배가 아팠던 건, 중도금 대출이 무이자가 대부분이었다는 점.
중도금 이자만 해도 거의 3,000만 원 이상을 예상하고 있는데, 이걸 무이자로 해주는 걸 봤을 때는...
'아... 진짜 나 호구 아닌가?' 이런 생각도 정말 많이 들었다.
그렇다고 중도금 이자 때문에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당시에는 호구라고는 정말 1도 생각하지 않고, 행운을 가진 사나이! 선택된 남자!라는 별 희한한
생각을 가졌으니...
이렇게 옵션까지 선택한 후, 계약서를 작성하고 나면 모든 절차는 끝이 난다.
참! 계약금 10%를 그 자리에서 입금까지 해줘야 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시공업체에서는 이게 제일
중요한 부분일 수도....ㅎㅎㅎ
이 과정이 끝나고 나면 공급계약서를 받아 들고 1층으로 내려와 문 앞에 서 있는 친절한 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 한 손에는 소정의 상품(각 티슈?ㅎㅎㅎ)을 들고...
문 앞을 나서면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지만 또 한 번 나를 반겨주는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갑자기 나에게 다가와 선물공세를 하며, 전화번호를 물어본다.
그리고 명함을 건넨다. 바로 부동산에서 나온 직원들이다.
"완공되기 전에 집 매매하실 거면 여기로 연락 주세요! 전세도 좋습니다!"
'잉! 뭐야! 기분 좋게 3년 후에 들어가서 살려고 하는 사람한테...'
그냥 명함과 선물(역시나 각 티슈...^^;;;)을 받아 들고 지하철로 향했다.
불과 2시간도 채 걸리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긴장을 많이 한 탓에 지하철을 타는 순간 온몸에 힘이 쭈욱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내 계약했어요!"
"맞나? 몇 층인데?"
"49층 중에 26층!"
"이야! 로얄층 같네! 축하한데이!"
그렇게 축하인사를 받을 때까지가 딱 좋은 순간이었던 것 같다.
집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짜이지도 않은 자금 계획.
모을 수도 없는 돈.
남들은 이야기한다.
"에이. 요즘 누가 자기돈 가지고 집을 사노! 다 은행에서 대출받고 하면 살 수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
"하하하..." 그냥 웃는다. 웃을 수밖에 없다.
그분의 말대로 은행의 돈을 빌려 사야 하는 게 현실이기에...
그런데 은행에서 그만큼의 돈을 충분히 대출해 주는가?
그 당시에는 DSR, DTI 이런 용어 자체도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그냥 3년간 저축해서 모자란 돈은 보통 은행에서 대출받는다고 하니깐.... 그렇게 하면 되겠지?
'에유~ 모르겠다! 머리 아파서 오늘은 더 이상 생각도 못하겠다!"
라고 하면서 현재까지... 3년 내내 같은 고민을 계속하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3년 전... 중요한 결정을 해야 될 사안이 또 하나 있었다.
아파트 구매와 동시에 생겨버린 고민거리...
잉? 갑자기 아파트 계약을 해놓고 여기를 뜬다고?
왜? 어디로 가는 건데?
다음 회차에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