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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ul illang Mar 28. 2024

행복 앞에 멈칫거리던 이유는, 나의 자격지심

(27) 자격지심을 몰아내고 행복을 맞이하는 나를 사랑하여 - 일랑

이상하게 마음이 까끌거린다.

내가 사랑인가 아닌가 콩닥거리는 마음을 제대로 들여보고 있기에- 놓쳐지는 무언가.


[넌 나와 다른 종족이 됐잖아,] 하는 눈길.
 또다시 따가워, 심장이 얄팍하게도 내달린다.


무언가를 선택함에 앞서 다가오는 두려운 순간. 또 다시 약해지는 내가, SAFE ZONE을 넓히기 위해 부딪혀야 하는 나의 방어기제란, 이것이었다.


-나 지금 행복한 기분에 누군가를 무심코 대하다 상처입히지 않을까, 



그러니 난 평상시대로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닐까. 방방 뛰는 풍선같은 마음을 정신 없이 내뱉다가 누군가의 슬픈 마음을 세심하게 바라봐보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러니 예처럼 연약하고 슬퍼 우울한 나라의 시민으로 계속,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것만 같아서. 그러다가 알게 됐다. 



이건 바로 내가 가지고 있던 최종 내면 몬스터
행복하고 건강한 삶에 대한 자격지심이었음을.



나도 모르게 긋고 있던 선이라니, 화들짝 놀랐다.  나는 행복한 나라의 행복시민이 되기를 주저하는 것이다. 그 쪽 나라는 참 따스하더라, 여행 다녀왔는데 참 좋더라. 하지만 내가 거기에 가 있다가는 그간 쌓아왔던- 나를 무수히 도와주던 슬픔의 포옹들을 외면하는 것 같아서, 혹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건방진 사람이 되어가는 게 싫어서. 근데 생각해보니 웃긴 거다. 행복한 사람이 왜 깔보듯 안 행복한 사람을 바라볼 거라 단정짓는 거야? 이 생각은 어디서 나온 걸까. 자꾸만 내달리는 심장에 손을 얹고 가만히 내 밑바닥 구석까지 수색을 나가보자.



찾았다. 여기다. 명확한 피라미드, 행복 등급, 안 행복 등급. 상위와 하위.


나는 행복한 사람과 행복하지 않은 사람을 두고 남몰래 모두를 계급처럼 나눠놨더라고. 



상처입은 사람들이 아픈 채로 따스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그러려면 상처를 입건 말건, 입었었건 입을 예정이건 있는 그대로 보았어야지. 행복할 수 있어, 안 행복할 수도 있고. 행복하다가 안 행복할 수도 있고, 안 행복하다가 행복해질 수도 있어. 그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다. 나는 내 불행과 우울, 불안을 하나의 마패로 삼아 비웃고 다녔던 것이다. 해맑게 웃음을 지을 줄 아는 사람들을. 그러면서 사실은 그 사이에 끼고 싶어 했다. 이 무슨 행복 일진 놀이도 아니고. 그 사람들은 나를 비웃은 적이 없다. 내 불행을 가벼이 여긴 적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 혼자 삼은 기준으로, 그들을 ‘안행복’ 나라에 입국시키지 않았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하루 일과가, 마음이, 정신이 이보다 더 건강할 수 없이 평안하다. 그 사람은 내가 나인 것만으로도 꽤나 날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이 느끼게 한다. 그래서 그 손을 잡고 시간을 걸었다. 함께 있지 않은 날도, 나는 함께인 것만 같은 시간을 걷는다. 그러다 알았다. 나, 지금, 이보다 더 행복할 시간을 겪어본 적 없다고.



덜컥 겁이 났다. 내가 행복해도 되는 거야? 대책 없이?


행복을 보류해놓고 일단 마음을 아프게 해놓는다. 그런 나도 참 웃겨서, 나 이제 그만 하려고. 행복 미뤄놓고 두려워하는 것. 망치를 들 힘이 있다. 그거, 그대로 들어본다. 천천히 다가간다. 내가 깨부셔야 할 마지막 관문. 자격지심 몰아내기. 알 수 없는 불안 떨쳐내기. 시작해 보자.



다른 종족 아니고, 그냥 나다.
행복하다고 나랑 다른 결의 사람 아니고, 안 행복하고 우울하다고 나랑 같은 결의 사람도 아니다. 사랑할 준비를 찬찬히 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누군가의 곁에 함께 하고 싶다. 그런 내 평안과 기쁨에서 나오는 또 다른 성숙한 나를 맞이할 것이다. 물론 지금 내가 인생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 옛날처럼 남들의 슬픔에 깊이 공감을 못하거나 나도 모르게 내가 혐오하던 부류인 [삶을 사랑하세요, 인생은 즐겁습니다, 나를 사랑하세요!]같은 말을 내뱉을 수도 있다. 내 시선으로 보는 오늘이 참으로 장밋빛이므로. 정확히는 보라빛. 하늘색과 보라색이 한 데 뒤섞인 솜사탕색의 세상. 하지만 행복하다고 더 레벨업하는 것도 아니고, 안 행복하다고 덜 레벨업하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나누던 급의 경계를 치워버린다. 내가 사랑을 시작해서 바뀔 내가 두렵다. 그렇지만 그렇게 바뀐 내가 줄 새로운 따스함이 있을 것이다. 나는 나를 믿기로 한다. 



그러니, 마음 놓고 행복해 보자.


네가 바뀌든, 안 바뀌든, 너는 너대로 괜찮은 사람이니까.


자신의 가치를 우울에서 성장했던 과거에 머무르게 하지 말자.


새로이 바뀌게되는 자신에게서도 멋진 구석을 찾아보자.


깊은 상처의 경험을 담은 채로 행복한 사람이 뿜어낼- 새로운 다정함을 맞이하자. 


다만 잊지 말자. 내가 지금 기쁘고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해서, 모두가 똑같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저 있는 그대로 서로의 세상을 바라봐주기. 기만 따위만 하지 말자. 


그거면 돼.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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