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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ul illang Feb 07. 2024

내가 나여서 예쁜 건, 질문 때문이야

(17) 태국, 내 사랑의 표현방식을 사랑하여 - 일랑

나는 나여서 예쁘다.


그걸 아는 사람이나, 알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좋다. 가족 외에는 내가 나여서 얼마나 예쁜지 알 수 없으니- 나와 연을 맺고자 하는 사람들은 나를 궁금해했으면 좋겠다. 그 외의 다른 접근법들은 내게 플러팅이 되지 못한다. 외모가 자신의 취향이라던가, 성격이 어떻다던가, 직업이 어떻다던가, 취미가 어때서 좋다던가 하는 것들. 내 예쁨의 이유는 내 이름 세글자이고- 그 이유를 찾아봐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활짝 열리는 편. 그 외의 답을 제출한다면, 가차없이 땡 오답입니다! 하고 웃어 넘기는 편.


 왜 그런가- 생각했더니 이거 유전이다.
 이건 엄마와 내가 태국 방콕 유람선을 타며 얻은 나의 깨달음.


엄마는 늘 세상을 궁금해한다. 신기할 정도로 질문과 감상이 많다. 마치 내겐 동화속에서 튀어나온 인어공주님 같다. 바다 안에서 살던 공주가 육지를 밟으며 어머, 이 감촉은 뭐지? 하고 신나게 주변 꽃들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아 나는 왕자가 되어야 하나 난감하다. 하지만 난 그렇게까지 세상 모든 것에 감읍할 수는 없는걸요.


즉, 엄마가 감탄 및 반짝이는 것들 발견 담당이라면 나는 초 치기 담당. 그 옆에 심드렁한 집사 정도. 안경 쭉 올리며 공주님 그건 위험해요- 그건 비싼데요- 하는.



유람선을 탔다. 해넘이를 보는 크루즈라서 반일 투어를 신청했는데, 통통배보다 조금 큰 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 먹을 시간이 애매해 배 안에서 포장된 팟타이와 볶음밥을 미리 주문했다. 가이드분께서 가져다주신 밥을 얼른 먹어야겠다, 이 배는 한 시간짜리니 시간이 촉박해- 판단했다. 숟가락을 빠르게 들었고, 배는 출발했다. 점차 붉어지는 하늘 아래 놓인 방콕의 모습을, 엄마는 당연하게도 무척 궁금해했다. 예를 들면



-어머, 저 나무는 어쩜 이런 강물 위에서도 잘 자랄 수 있지? 저것 봐봐. 자연이 경이롭지 않니?



-이 위에 저 집은 통나무 같은 걸 바닥에 대고 지었나봐. 집 형태가 참 특이하네?



-다 쓰러져가는 배다. 난파선인가봐! 저 주인은 게으른가 봐. 너네 아빠 데려와서 저거 고치라고 하면 될 텐데.



-예쁜 관광지들 사이에 다 쓰러져가는 집들이 있는 게 신기하지 않니? 이 모든 광경이 어우러진다는 게 참 신기해.



나는 점점 화가 차올랐다. 숟가락 들지 않고 대체 뭘 하는 거지. 제발 먹으면서 궁금해하면 안 될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제 채 40분도 남지 않았다고. 엄마는 배에 타서 무려 20분동안 음식은 손 하나 안 대고 감상을 뱉기 시작했고- 나는 걱정했다. 이 끼니 제대로 안 먹으면 밤 9시에야 뭘 먹으러 나갈 수 있을텐데. 왜 뭐가 저렇게 궁금한거야. 뭘 그렇게 감탄하는 거야. 뭐 저렇게 볼 게 많은 거지? 같은 건물을 보면서도- 오 건물이다 하는 나와 달리 엄마는 저게 전통 양식인지, 누가 살고 있는지, 언제 지어졌을지 끊임 없는 물음표를 만들어냈다. 엄마, 제발…



-이제, 밥 먹자. 엄마- 여기 30분밖에 안 남았어. 엄마 여기서 밥 먹어야지 안 그러면 때 놓쳐.


빠직하고 냉철해진 내 목소리를 듣고 엄마가 합하며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몇 초 지나 후회했다. 저 물음표가 엄마에겐 사랑이었지- 저게 엄마가 삶을 애정하는 방법이었지, 하는 사실이 뒷통수를 쳤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게도 무한 물음표덩어리를 던지곤 한다. 어디야, 누구랑 같이 있어, 혼자니, 밥은, 뭘 먹었는데, 어디였어, 어땠어, 기분은 어땠어 하며 맑은 눈으로 나를 꼭 담는다. 사춘기 시절에는 그게 너무 답답해서 그만 물어보라고 화도 냈는데- 이제는 엄마의 표현이라는 걸 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엄마가 하는 애정의 표현은 물음표와 질문, 관심 가지는 태도이기에. 앗차, 엄마의 여행을 내가 방해했다는 생각에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엄마에게 다시 말을 붙였다.



-엄마, 저 나무에 뭐 달려있어.


-그러게? 저 위에 있는 건 뭘까? 태국은 참 신기해.


-...새집 아냐?


-그래애? 근데 저 옆에 건물은…



여전히 나는 엄마의 모든 물음표에 모두 점을 찍을 수는 없는 딸이다. 그리하여 감정의 공감 대신- 무뚝뚝한 현실형 대답을 턱턱 내뱉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사랑받는 소중한 사람인 걸 알게해 준 엄마는 나를 늘 궁금해했고 그런 형태의 사랑 안에서 귀히 컸기에 - 내 사랑의 양식은 타인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만들어졌다. 엄마의 사랑을 쑥쑥 잘 먹고 큰 덕분에- 그리고 그 맑은 궁금함이라는 태도가 다른 사람들에게 좋게 보이는지, 가정교육 잘 받은 단정한 기운이 느껴진다고도 곧잘 듣는다. 



고맙다. 올바르고 맑은 사랑의 결을 품게 해 준 엄마에게. 온 몸으로 알려준, 사랑의 표현방식으로서 궁금함이라는 태도가.

 

그래서 나는 내가 예쁜 거다. 나는 내가 나임을 알기 위해 던진 무한 물음표를 무던히 견뎌낸 사람이니까. 나를 사랑하는 방법과 내가 예쁜 이유 모두 내가 나이기 때문이라서. 그리고 그런 이유가 아주 마음에 들어서.



늘 내가 궁금하고, 그 맑은 호기심이 나를 예쁘게 만드는 이유라는 것을 잘 아는 사람. 그게 나다. 


그래서 오늘의 내가 참 좋다.


아, 물론 엄마의 무한 생성 물음표는 여전히 버겁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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