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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ul illang Jan 14. 2024

우울증 졸업자가 상담 선생님께

(6) 우울한 삶을 반짝이게 닦아주신 상담 선생님을 사랑하여 - 일랑

선생님, 저예요. 20회차 상담 졸업자.

매 주 목요일 오후 5시에 선생님과 했던 약속이 사라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잘 살고 있답니다. 제가 마지막 상담일에 그랬었죠?


[함께 있는 시간이 자주, 오래될 수록 제 상태가 안 좋다는 걸 뜻해서 서글퍼요. 선생님과 정이 쌓인다는 게- 저의 불건강함을 나타내는 지표가 되어서요. 전 선생님이 좋은데, 헤어져야만 건강한 개인이 되는 관계인 것도 그렇고요. 이 관계가, 참 슬퍼요.]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그러셨잖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물론 상담사 윤리나, 상담 관련 논문들에서는 상담 후 상담자와 적절한 거리를 두라고 하지만- 그렇지만 저는 계속 연락하는 것 조차 하나의 치료 과정이라고 보거든요. 그리고 인간적으로도 딱 끊고 싶지 않고요. 무슨 일이 있거나 없을 때, 마음이 이상할 때, 기쁠 때 제가 생각난다면 편히 연락할 수 있다고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맞아요. 저는 선생님을 또 어떤 한 역할로 한정해 몽땅 기계처럼 칸에 오차 없이 넣으려는 오류를 범했어요. 선생님은 역할과 역할 사이에는 감정이라는 게 있는 우리는 그래서 인간임을, 그래서 소중한 존재임을 다시금 알려주셨고요. 그 말을 듣고 저는 다짐했습니다. 선생님과 만나지는 않지만, 선생님과 만났던 매주 목요일 오후 5시를- 저를 위한 마음 도닥거림 시간으로 정해야겠다고요. 그리고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이게 상담의 완성이구나. 하고요. 나는 완성형 상담자가 되었다는 뿌듯함이 밀려왔어요. 그러니 졸업자라는 말을 붙여도 되겠지요?

마음을 터놓게 되기까지, 스스로 많은 난관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을 처음에는 믿지 못했거든요. 상담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졌다고 한들 저도 모르게 쌓아놓은 방어기제란 얼마나 치우기 무겁고 보이지 않는 방패막인지, 어디부터 뚫어야 할 지 감도 안 잡힌채 그저 아픔만을 호소했어요. 당장 이 아픔을 해치워주지 않는 의사는 무조건 돌팔이야! 외치는 제 모습은 지금 생각해보니 말 안 통하는 환자였겠네요. 고집만 센.


그런 제게, 결국 네 아픔을 마주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알려주신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그 무엇보다도- 제 곁에, 엉망진창이고- 작위적이고- 연극적이기도 할 때가 있고- 어느 날은 한껏 소심하고- 또 시끄러운 사람 곁에서 그저 저보다 더 아파하며 옆에서 꼬옥 안아주신 그 순간들이 모두 기억에 남아요.

나보다 나를 아파하며 옆에 끊임없이 괜찮냐고 물어봐준 사람, 제게는 선생님이 처음이었으니까요.

스스로도 하지 못했던 보살핌을, 선생님은 어떤 관련도 없는 사람일 뿐인데 진심으로 해주셨어요. 저는 선생님의 눈을 통해 가끔 저를 바라보게 됐어요. 안쓰럽더라고요. 가엾고. 스스로가 아깝다는 기분이 들자, 그제서야 힘을 낼 용기가 났어요. 물론 그 용기도 매 번 미끄러지고 울 줄도 몰라 얼어붙어 있었지만요.



감정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그간 제가 얼마나 아프고, 즐겁고, 화가 나는지조차 판단에 맡겨 버렸던 사람이었어요. 지금도 효과는 아주 확실해요. 눈물이 핑 도니까요. 뭐야, 선생님 보고 싶네. 훌쩍. 하면서 말예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성보다 먼저 찾아온 감정을 저는 그간 통제하기 바빴어요. 그러다 결국 오갈 데 없던, 분출되지 못한 감정들은 마음의 괴물을 만들어냈고요. 스스로를 갉아먹었습니다. 이성에 잠식당한 감정괴물은- 선생님을 만나 하나 하나 녹아내려갔어요. 아빠에 대한 원망, 엄마를 향한 칭얼거림, 나를 향한 분노 모두 선생님의 마음 가득한 상담 덕분에 그대로 꼬옥 껴안게 됐습니다. 모든 걸 눈 앞에 두고 마주하니 그렇게 삶이 산뜻해지더라고요. 그랬더니, 저는 저를 사랑하는 방법을 자연스레 알게 됐고요.


제가 알게 된 방법이란- 스스로 불쾌한 감정을 금방 알아채고, 그 곳에 자신을 놓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저는 저를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 저를 사랑하니까요. 아, 선생님도요. 선생님도 사랑해요.


삶을 살게 됐습니다.

삶은 그간 견뎌내는 것이었어요. 죽지 못해 겨우 살아가는 사람은 생기가 없어요. 제가 그렇게 죽음에 도취되어 상담실 문지방을 넘었고요. 결국 살려달라는 구조 신호인 셈이었고, 선생님은 단박에 그걸 알아차려 주셨잖아요. 죽고 싶은 게 1지망 소원인 사람을 삶의 목표로 가득하게 한 선생님만의 마법이란- 선생님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른 상담센터, 다른 선생님에게 제가 이만큼 마음을 열고 종알종알 떠들 수 있을까 상상해 보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어느 날은 놀랍도록 건조한 눈빛이, 어느 날은 맑고 따뜻한 눈빛이 모두 어느 날의 저 같을 때가 있었어요. 그래서 더 마음이 갔어요. 나도, 나이가 들면, 저런 사람이 될 수 있을 지도 몰라- 하고요.

미래가 없는 사람에게, 선생님은 앞을 보라 말한 적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오히려 오늘의 그 슬픔을 꼭 끌어 안고, 기억하라고 하셨어요. 그저 있는 대로 느끼라고요. 그렇게 슬픔에 나뒹구는 제 곁에, 그냥 선생님이 있을 뿐인데 저는 그런 한 시간에 기대어 또 다음 주를 살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 이 감정, 이 순간을 사는 연습이었을까요? 과거를 감정으로 모두 받아들이고, 현재를 살아내니 자연스레 미래가 기다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단 한 마디도 제게 물은 적 없었잖아요. 아, 미래에 관련된 말 몇 개 물은 적 있으시죠. 하지만 그것조차 이런 말들이었잖아요. [일랑님은 어떤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라던가 [일랑님의 삶에 중요한 게 뭘까요?] 같은 것들이요. 남들이 묻는 일년 후 계획, 몇 년 후 버킷리스트 따위 물어보신 적 없었어요. 전 그게 좋더라고요. 계획 말고 감정으로 묻는 미래. 이상향으로 점쳐보는 미래란, 희망적일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렇게 희망이라는 단어 하나 없이, 마음 안에 희망이 자랐습니다.


어른이 됐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적 없다고 오해한 제 삶은, 결국 사춘기를 지나지 않은 모범생 소녀가 억지로 살아낸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런 제게 진정한 사춘기를 겪도록 도와주셨어요. 부모님에 대한 불안, 초조, 미움, 답답함은 가족에 대한 불만, 직업에 대한 불만, 존재에 대한 자책으로 이어졌어요. 그런 불만조차 모두 꾹꾹 눌러담고 살던 소녀는 부모님이 세워놓은 잣대를 스스로 풀어던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깊은 사랑, 믿음, 가족에 대한 유대를 느꼈어요. 제가 선택한 가족과의 관계이고, 힘들 땐 마음껏 찡찡거릴 테니까요.

 사랑은 모두 표현하는 것이었어요. 어떤 한 면만 보여주는 게 아니었어요.

막내딸 역할 말고- 제 이름 세글자로 집안에서 상쾌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온갖 면을 다 보여줘도, 부모님들은 저를 사랑할 거니까요. 건강하게 소통하는 방법은 물론- 아직 배우는 중입니다. 하지만 표현할 줄 아는 어른이라면- 이 정도는 독학해도 되겠지요?  


모든 삶이 반짝이는 순간으로 가득합니다. 그런 제 두 눈을 빌어 본 선생님 또한,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매일 행복할 수는 없어도 시간마다 소중함을 알고 계신 선생님이라면 무탈히 평안하실 거라 믿습니다. 우리, 또, 만나요. 마음과 마음으로. 그냥, 이유 없이, 보고 싶어서.


p.s. 그래도 상담자와의 약속이 우선이라며 본인 몸 아프거나 혹사하시고 감기 걸린 채로 껄껄 웃으며 돌아다니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선생님을 사랑하는 존재들이 이렇게나 많은걸요! 건강!


일랑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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