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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ul illang Dec 14. 2023

우울 안에 살고 있는, 너에게

(4) 누군가의 우울을 사랑하여 - 일랑

똘망아. 나는 또 밤에 잠이 안 오기 시작했다. 

내일 일어나야 하는 이유가 아무리 고민해도 없거든. 그럼 난 너를 생각해. 


널 떠올려서 힘을 내겠다는 건 아니야. 이런 캄캄하고 막막한, 끝날 것 같지 않은 시간을 너도 거기서 견디고 있지는 않은가 걱정해. 이만큼 고통스럽게 무감각해지는 피곤을 넌 몰랐으면 하는데. 이런 예감은 꼭 틀리질 않더라고. 2023년 11월 30일 목요일 새벽 1시에 넌 뭘 하고 있니? 


난 네가 내년 봄부터 갈 인도네시아에서라도 마음 편히 잘 자기를 - 지금부터 상상하고 기뻐하고 있어. 알잖아. 내 사랑은 크고 대단한데, 날 위할 줄은 모르는 거. 그러니 오늘의 내 사랑의 몫은 네 걸로 하자. 네가 내 다정한 우물을 길어다 가는거야. 내 마음속에서. 내일치 신선한 사랑을 위해. 오늘치 마음을 누군가에게 쏟지 못했거든. 그럴 때 난 널 자주 떠올리곤 해.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넌 나와 연락을 했지. 

누가 보고싶을 시간도 없는 자신이 싫다고.
내가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내가 답했어. 

넌 그런 마음 쏟지 않아도 된다고. 네 시간이 생긴다면 넌 네 몸을 챙기라고.
 보고싶어하는 애정은 내가 네 대신 두 배로 더 할 거라고. 


그랬더니 넌 웃더라. 그제야 픽 웃으며 네가 왜 피곤한지 일상을 알려주었어. 친척 오빠 결혼식에 가는 길이라며. 우리 대화는 이렇지. 남들과 달라.


잘 지내니? 하는 안부 인사 대신 뜬금 없이 네가 보고 싶다며 내가 마음을 전해. 

그러면 너는 어떤 마음인지 솔직한 네 상태를 내게 알려주고. 

나는 그럼 그런 네 모든 상황을 사랑한다고 답하지. 

내 웃긴 장난같은 고백에 넌 자신의 하루가 어땠고, 무언가 자신을 할퀴었는지 삶을 토해내. 

남들은 거꾸로던데.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셨나요- 하는 안부문사가 일 번, 

요새 어떻게 지낸다는 일상 나눔이 이 번, 

그리고서 말이 통하는 상대라면 감정이나 마음이 어땠는지 삼 번으로 말하곤 하더라고. 


난 툭 마음부터 뱉고보는 우리의 우정이 참 좋아. 소중해. 어떤 이유 없이 감정만 남아있는 나를 네가 언제든지 묻지 않고 그대로 안아주어서. 

네가 곧 나와 다른 길을 간다는 소식을 며칠 전에 들었어. 다행히 이번에는 가기 전에 알려주더라. 몇 년 전부터 내가 제발 사고를 치려거든 먼저 알려라도 달라는 애원이 통했나봐. 고마워, 네 삶에 잔소리할 기회를 줘서. 넌 내가 발끝만큼이라도 널 따라갈라 치면 이렇게 늘 대단한 일을 벌이곤 하더라. 잘 지내던 경기도 직장을 그만두고 시험을 냅다 쳐서 제주도에서 평생 살거라더니, 이번에는 그 일마저 때려치고 외국에서 새로이 네 삶의 터전을 잡아보려고 한다니. 역시 난 네게 멀었단 생각이 든다.


 너처럼 제 삶을 용기내어 바라는 세상으로 박차고 나가는 사람이 내 곁에 있다니, 내가 가진 행운이 있다면 그건 널 만난 걸 거야. 우리 같이 인도네시아 갔을 때 난 다시 한 번 느꼈지 뭐니.

 네가 내 인생의 빛이구나. 선물이구나. 그리고 생이구나. 


앗, 이렇게까지 말하니까 네 마음이 좀 무거울 것 같다. 그냥 좀 더 가볍게 말해볼게. 넌 또 나보고 고슴도치 엄마라며 제 새끼 예쁜 것 마냥 말하는데- 어떡해. 난 네가 예뻐 보이는 걸. 

날 살게 하는 사람이 있고, 날 더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넌 후자야. 


똘망아, 난 한 번도 너에게 제대로 옆에서 걷고 있다 생각한 적이 없다. 이건 사실 내 열등감에서 비롯된 비밀인데- 너 한국 떠난다니까 내가 큰 맘 먹고 알려주는거야. 넌- 내게 늘 한 발짝 앞서 있는 대단한 사람이었거든. 용감하고 씩씩하고, 대담하여 대책없는 네 명랑한 삶에 난 널 대단히 사랑하게 됐어. 부끄러워지더라- 내가. 난 같은 나이에 뭘 하고 있나, 네 옆에 있어도 되는 사람이 맞나 자꾸만 날 되돌아보게 되더라고.


그래서 넌 내게 
넌 나를 잘 살게 하는구나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날 세상 안으로 밀어넣는 네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그건 내 사랑 아닐까. 사실 네가 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어. 그저 난 네 옆을 졸졸 쫓아다니며 날 놓지 말아달라 간청하는 거야. 금은보화도 통하지 않는 네게 나는 내 성장을 들이밀지. 그렇게 자꾸 혼자 생각해선 못할 귀찮은 일을 벌이곤 해. 내 손을 놓지 말아달라고. 

똘망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같은 선상에 있기도 했지.

 다른 이유로 우울과 불안, 그 외의 부서질 듯한 청춘의 어두움을 각자 겪어냈어. 

서로의 동굴 안이 어떤지 짐작조차 못하면서도- 나는 그 안에 들어갔어도 네 촛불이 살랑살랑 보일라치면 그래도 너니까- 너라서 잠시 두 눈이나마 세상에 붙여보았는데. 너의 동굴 안은 어떻니? 네 동굴 안에서 내가 도움이 되지 못해 슬프다. 넌 내게 이만큼이나 소중하고 도움이 되는 친구였는데- 난 네게 해줄 수 있는 게 이깟 말 몇 마디밖에 없어서 속상하고. 


네 동굴을 억지로 깨부시지 않을게. 너 거기 조심히 안전히 잘 숨어있어. 내가 지금처럼 네 동굴 앞에서 서성여볼게. 아직 살아있음에- 연락함에 안도하면서, 무턱대고 내가 이렇게 비행기 티켓을 끊을게. 네 없는 힘으로 나를 만나주어 고마울 뿐야. 


우리 곧 만난다. 난 너와 함께할 시간으로 오늘을 또 버텨냈어. 미래를 기약하는 건 참 좋아. 행복할 순간이 정해져있는 것만 같아서. 나도 행복할 수 있을 거야, 하는 다짐 같아. 너와 함께- 

네 남은 한국 생활이 즐거울 수 있도록 내가 최선을 다할게. 마음을 다할게. 

네 동굴을 꼭 끌어안아줄게. 굳이 나올 필요 없이 손만 흔들어줘. 

그런 네 모습조차 내겐 소중하고 기특하니까. 


사랑해- 네 연약한 마음까지도.

그러니 우리 이번 주에 즐겁게 놀자.

마음 편안히. 평안하게.

서로 불평을 막 늘어놓자. 세상에.

왜 이런 삶이냐며 팍팍해 죽겠다고 머리를 같이 쥐어뜯어 보자.

아름다운 제주도에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저 늘어져 있어보자. 


곧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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