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eul illang Dec 07. 2023

신부에게, 신부 친구가

(1) 친구의 새로운 시작을 사랑하여 - 일랑


결아, 결혼 축하해.

이 말도 안 되는 주어와 술어가 꼭 짜임이 맞는 날이 오는구나. 사실 네가 결혼한다는 말을 1년 전부터 선포하듯 했는데 난 단 한 번도 네게 편지같은 거 써볼 생각이 없었어. 방금 전까지 말야. 힌트를 좀 줄게. 넌 뭐든 맞히는 걸 좋아하니까. 짱구 같으니라고. 지금은 2023년 11월 21일 화요일 밤 9시 47분이다. 이제 기억나? 너 나랑 뭐 했는지? 


당연 기억 안 나겠지. 넌 늘 그러니까. 발끈하지 말자. 우리 너무 평상시같은 날이라 기억이 안 날거란 뜻이야. 그날이잖아- 네가 오후 6시 7분에 저녁을 사려는 내게 전화를 건 날. 그리고 최고로 행복한 사람의 말투로 내게 방방 소리친 날.


나, 예비 1번이었던 거 집 됐다! 나 됐어! 난 되는 사람인가봐!
오늘 맛있는 거 먹을까?! 너 저녁 먹었어?


웃기지. 나는 네게 침착하라 얘기하고, 너를 타일렀어. 내일은 네 드레스 가봉이 있는 날이고, 신랑이 너 혼자 먼저 축하한 걸 알면 속상하거나 화가 날 지도 모른다고. 그랬더니 넌 자신이 선택한 사람은 그럴 리가 없다며 자신 있게 웃더라. 그리고는 집에서 시장 음식을 포장해 와 먹자고 했지. 


언제 네게 편지를 써야겠다 다짐했냐면, 그 때. 나는 문득 네가 전화로 부탁한 굴무침을 시키고 메뉴판을 가만히 쳐다보다 너가 좋아하는 두부김치를 선물로 사야겠다- 마음 먹고, 열심히 네 집에 걸어간 뒤. 그리고는 네게 선물이라며 아빠마냥 검은 비닐봉지를 내밀었지. 고소한 냄새 가득한 두부김치를 보며 너는 말했어.

잘됐다!
나는 일품이라서 냉장고에 일품 진로 사 놨다.
그거랑 같이 먹자. 너는 맥주랑 같이 먹어?

그 때. 그 순간에 다짐했어. 네게 편지를 쓰겠다고. 

당연하게 서로가 뭘 좋아하는 지 알고- 기뻐할 걸 찾아서 각자의 최선을 다해 투박하게 어떤 물건을 교환하듯 내미는 그 순간. 깨달은 거야. 아- 내가 네게 어떤 마음을 표한 적이 있었나, 하고. 그리고 결혼이란 건 으레 그렇듯 아주 중요한 순간이니까. 내가 낯간지럽게 문장 몇 개 더한다고 네가 갑자기 놀라지 않을 것 같더라고. 엉겁결에 들어온 문장 몇 개 네 마음에 깊이 남지는 않을 것 같아서. 

너 나 알잖아. 관심받는 거 이상하리만치 싫어하는 또라이란 거. 모두에게 그렇더라. 난 내 마음이 깊고, 다양하게 다정해도 상대방은 그걸 모르길 바라. 특히 우리같은 지방 사람들에게는 더욱이. 표현이 참 투박하잖아, 서로. 굳이 말 안해도 알지 않아 싶었던 거지. 근데, 서울 남자 만났으니 너도 좀 낯간지러워졌을 거라 믿어. 실제로 요새 표현도 좀 늘었지, 너? 방금만 해도 그랬잖아. [네가 오늘 날 축하하러 와 줘서 그것만으로도 기쁘다.]라고. 나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 로봇이- 인간 로봇이- 저런 말을 서슴없이 한다고? 결혼은 참 대단해, 사랑은 더 대단하고. 그 대단한 걸 넌 지금 눈 앞에 두고 있더라. 난 그 대단한 걸 옆에서 함께 보고 있고. 영광이다, 야.


 결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다행이다. 그리고 네가 그 사랑을 소중히 대할 줄 아는 사람이라 다행이야. 일하다 만난 우리 사이도 네가 덧붙인 거잖아, 사실. 처음엔 분명 필요로 의한 취미에서 비롯된 사이였지만 말야. 네가 날 어쨌건 사생활의 시간에 불러냈고, 난 그걸 거절할 줄 모르는 스물 세 살의 아기였고. (좀 봐 주라. 지금 생각해 보면 아기 맞잖아, 너도 그 때 어렸고.) 그렇게 한 직장에서 잠시 스쳐갈 줄로만 알았던 인연이 그새 세 보니 7년이다. 많이도 흘렀네. 넌 그새 내 온갖 꼬락서니를 다 봤지. 내 전남친부터, 술 취해 토를 하던 그 순간까지. 나도 네 모든 걸 봤다고 자부하는데, 이상하게 기억하려니 하나도 모르겠다. 내가 본 네가 그동안 네가 맞나 싶기도 해. 네가 남편과 함께있을 때 보여주는 새로운 모습들은 내가 모두 처음보는 사람이니까. 뭐랄까, 훨씬 사회화된 로봇이랄까? 사랑을 대범하게 말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된 네 모습은 내가 여전히 적응하기 어렵기도 해. 그렇지만 좋아 보여. 그건 확실해. 사랑을 어색하게나마 삐걱삐걱 표현하는 네가 남편은 얼마나 예뻐 보일까. 



이상하게 눈물이 다 나. 술이 취했나 봐. 네가 일품이라며 함께 먹은 일품 진로가 이렇게 도수가 셌었나?

우리 일주일에 두 세 번씩 신나게 술 먹을 때에는 단 한 번도 찌푸리며 술 먹은 적 없었지. 난 그게 신기해. 사람들이 쉽게 싸운다는 술자리인데- 죽어라 서로 싫다고 토론하면서도 실제로 서로가 싫어 미칠 뻔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는 게, 우리다운건가 싶기도 하고. 네가 결혼한다고 그런 널 잃는다는 생각은 없어. 난 네가 말한 대로 남들이 보기보다 훨씬 냉정하잖아. 우리 원래 각자였잖아. 서로 하나였던 적 없잖아.


 여전해. 넌 결혼하던 말던, 결이고 난 나야.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누군가 조금 다른 형태로 살아갈거야. 근데 이 눈물은 어디서 나오는걸까. 내 주중 술친구 뺏겨서 서운한 거 아니고, 원래 있던 자리에 놓아주어 다행인 눈물인가보다. 안도의 눈물. 혼자서도 행복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다채롭게 행복할 네 자리. 그건 네 남편 옆이야. 스스로 그 자리를 알고 있는 너와 내가 대견하다. 우리 박수 한 번 쳐 주자. 결혼식 준비에 다이어트하느라 점차 없어지는 술자리가 서운하지 않냐고 누군가 묻더라. 동료였었나, 너와 나의 사이를 잘 알던 어떤 누군가였던 것 같아. 남자친구 뺏기는 기분 아니냐고 하던데- 전혀. 진짜 아니었어. 우린 그런 거야. 오늘 슬픈 일이 있었고, 이틀 전에는 미친 듯이 기쁜 일이 있었고, 그래서 술이 필요했고. 함께 1을 이야기하면 10 정도 이해할 직장 동료도 필요했고. 그래서 꽤 자주 만났던 거지.


나는, 오늘 좀 뿌듯했어 결아. 네가 나에게 그토록 기다리던 집이 당첨되었다고 연락했을 때, 나 사실은 상상 속에서 널 좀 질투할 줄 알았거든. 막상 네가 진짜 되었다고 소식 들으니- 한 톨의 미움이나 배아픔 없이 그저 기쁘더라. 마음이 놓이더라. 잘됐다 싶더라고. 진심으로 축하한단 소리가 나오더라. 그런 내가 난 또 기특했고. 

너, 나한테 이용당했어. 네 결혼으로 나는 꽤 성숙하고 있어. 진심으로 누군가를 축하하는 마음이라는 걸 배우고 있거든. 나도 내가 이럴 줄은 몰랐고. 너 하나도 안 질투나. 부러워. 부러운 거랑 질투는 다른 거잖아. 네가 서로 아웅다웅 다투고 미친듯이 사랑할 누군가를 만나 부러워. 그게 배알이 꼴리지 않아. 전혀. 네가 어떤 아파트를 나중에 사건, 어디에 또 당첨이 되건, 나는 너를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오늘 들었어. 그래서 눈물이 났나? 순수하게 누군가를 축하해줄 수 있다는 마음을 졸업해서. 

그런 마음을 갖게 해 준 네게 고마워서.



 우리 서로 진저리치는 사실 알아? 사람들이 우리에게 묻는 거 있잖아.

[이렇게 서로 오래 친할 줄 알았어요? 이렇게 서로 자주 만날 줄 알았어요?] 하는 거. 


둘 다 인상 있는대로 찌푸리고는 아니라고 답하지. 그건 아직도 그래. 나는 내일도 너랑 자주 만날 지는 모르겠어. 근데, 그렇게 시간이 쌓이더라. 어제 힘들었고, 오늘 기쁘면 난 아직까지는 너에게 연락하고 싶더라. 윤정포차에서 보자고 말야. 술 좀 먹어달라고. 얘 미친 거 아니냐고 내 말 좀 들어달라고. 우리라는 말은 거창하고 나는- 일단 나는. 오늘은 그래. 내일 만약 누군가에게 터놓을 황당무계한 일이 생기면 어제 너와 일품진로를 까먹었어도- 네가 드레스 가봉을 하고 아파트 계약을 해서 피곤한 채라도 네게 무턱대고 연락은 해 볼 거야. 안 나와도 되니까, 그냥 연락이라도. 그런 시도라도 할 사람이 아직은 너야. 음- 결혼을 하면 내일 모레 쯤은 모르겠다. 그건 상황 되서 그 때 답하면 안 될까? 난 냉정한 사람이니까.


아, 하나 더 있어. 단골 질문. 이것도 답해볼래? 

[그렇게 자주 오래 만나도, 서로 할 말이 많아요?]

네, 많아요. 하고 답한 적 우리 단 한 번도 없지. 오히려 [집단적 독백인걸요?]라고 웃어 넘겼지. 사실이거든. 서로가 자기 할 말만 일방적으로 해 대고, 진심으로 공감할 생각 따위 않고 술잔이나 비었나 확인하는 서로의 뽄새란- 아재 아니냐고. 남 말 들을 줄 모르는. 근데, 나 그런 사람이 필요하더라. 내 말 어쨌거나 앉아서 들어주고, 별 말 없이 술이나 한 잔 더 따라주고, 맛있는 음식이나 먹으며 풀라고 2차 메뉴 벌써부터 고민하는 네 존재 말야. 그게 또 너 아니면 누가 그러겠냐.


3년이나 나이 어린 내가, 너를 진심으로 친구로 생각한다는 게 열받니? 하지만 내게 넌 언니 아니고 진짜 친구였는걸. 눈치 하나 안 보고 먹고 싶은 거 없다고 떽떽거리고, 뭐 그런 말을 다 하냐고 네 진짜 정체 사람들이 아냐며 경멸하고, 그런 날 보면서 너도 덩달아 네가 더 심하다며 삿대질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가끔 내게 언니일 때가 있었어. 어우 야 나 또 눈물 핑 돈다. 나이가 들었나. 내 말같잖은 모든 꼬라지를 견뎌 주던 지난 몇 년간- 넌 내게 언니이자 의사였다. 친구이기도 하고, 물론. 죽고싶다며 어느 날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던 네 방 자취방, 정신이 반쯤 나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던 우울증 진단 받기 며칠 전, 우울증과 불안장애 진단을 받고 어쩔 줄 몰라 밥맛이 똑 떨어졌을 때 밥이나 먹자고 먼저 연락왔던 몇 달 전, 그리고 그 모든 걸 겪고 글로 풀어내기 시작한 최근까지. 네가 내 곁에 없었던 적이 하루도 없었다. 내 개같은 망상들도 진지하게 글로 써봤자 돈 안 된다며 까내리고, 네가 지금 죽으면 너무 아깝다며 혀를 끌끌 차 줬고, 병원에 왜 진작 안 갔냐며 너 진짜 이상한 애라며 신랄하게 욕도 했잖아. 나도 내가 견딜 수 없어서 환장할 때, 너는 이상하리만치 내 곁에서 끝까지 너 정신차리라고 욕을 하더라. 

나도 날 포기했는데- 네가 뭐라고 날 안 포기해. 바보야. 

그러니까 이런 감정기복 심한 애가 네 옆에 붙어 있는 거 아냐. 다 네 탓이야. 



그, 다 네 덕이라고 말하기 어려워서 이렇게 쏘아붙이는 거야. 네 덕분에 살아있다. 심지어 잘. 온전히. 네가 날 처음 봤을 때 보다 훨씬 더 멀쩡히.

네 행복을 바라는 이유는, 그러니까 나 때문이야. 날 살게 했으니까 네가 행복해야지. 그래야 내가 또 온전히 살아있는 것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갈 용기를 얻지. 너 또 이용당했어, 내 옆에 있으면 계속 이용만 당할걸? 그래도- 그래도 괜찮다면, 축하해주려고 해. 너를. 

네 모든 행복은 네가 뿌린 모든 마음들에게서 비롯된 걸 거야.
갑자기 신이 똑 떨어지게 주는 선물같은 거 아니고, 네가 늘 남에게 당연한 듯 주는 말도 안 되는 관심 같은 것들.
거기 랜덤 박스로 집 당첨도 숨어 있고 한 거지. 캐시백 같은거라 생각해. 


진심으로 네 내일을 응원한다, 결아. 매일 행복할 수는 없다는 거 알잖아, 우리. 

결혼이라는 게 드라마에서 나오는 일처럼 하루만에 휘리릭 끝나는 이벤트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삶에 들어오는 새로운 사랑을 당연한 태도로, 하지만 소중히 품는 너라면 2023년 12월 10일의 결이도 행복한 순간을 맞이할 거라 믿어. 2024년의 결이도, 2025년의 결이도. 네 덕분에 내가 결혼이라는 걸 해보고 싶어졌다, 언제는 죽기만을 바랐던 사람에게 미래를 꿈꾸게 하다니- 책임져라. 나랑은 좀 더 멀어져서 보란듯이 남편과 함께하는 네 미래로 말야. 내가 진짜 기쁜 순간은, 나와 네가 남편 몰래 만나 술 마시는 시간이 아니라 남편과 네가 신혼집에서 서로 힘든 하루였다고 토닥여 주는 그 순간일 거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써 준다. 귀한 단어니 새겨 듣고 마음껏 오글거려해라.


언니, 결혼 축하해. 잘 살아.
우리 각자 잘 살자. 언니도- 나도.


p.s. 너 드레스 입은 거 보고 나 깔깔 웃으면 어쩌지? 이미 내가 웃고 지나갔을 지도 몰라.

                    


이전 21화 스스로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사랑하는 방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