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가 궁금해 할, 그리고 당신 딸이 답하지 못할
정신건강의학과에 몰래 가던 딸이 폭로를 결심했다. 부모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울었고, 소리도 쳤다. 서먹서먹한 몇 달을 지내고 새로이 가족이라는 형태를 만들어 나가는 중. 생생히 들려주는, 부모님께 밝힌 뒤 나의 변화 몇 가지.
1. 가족으로부터 받은 어릴 적 오해 풀기
"엄마, 나 5학년 때 왜 그랬어? 왜 나 데리러 안 왔어?", "아빠는 왜 나한테 관심이 없어?" 같이 마음 속에만 담아놨던 질문을 직접 할 용기가 생겼다. 일명 '말이 나와서 그런데' 전법. 뜬금없는 나의 질문에 부모님은 당황하면서도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었고, 나는 알게 되었다. 혼자 생각하고 예상하고 먼저 앞서나가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상처받고 있었다는 걸.
2. 나의 모든 행동을 이해해줌
[돈이 있다. 하지만 보증금을 부모님이 대 줬으면 좋겠다.]
이 이상한 두 문장을 내가 내뱉어도 엄마는 고개를 무한정 끄덕이며 기꺼이 아빠에게 돈을 내놓으라는 지시로 공조해주었다. 부모님에게 기댈 수 있는 첫 걸음으로 특이한 행동을 하는 딸을 '네가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헤아려주신다. 누워서 이틀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애니메이션만 봐도 한껏 동난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다는 걸로 잘 받아들이고 있다.
3. 진정한 '나' 자신으로 집에서 살 수 있음
부모님이 하는 작은 농담조의 말도 내겐 큰 의미로 다가와 삶에 깊숙이 자리잡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부모님께서는 "네가 가장 무던한 자식인 줄 알았는데, 가장 크게 영향을 받아 오히려 섬세하고 예민한 상태였다는 걸 이제 알았다."며 앞으로 장난이라도 생각해 보고 하겠다는 말을 하시더라고. 내가 예민한 사람인 것을 알고 있는 부모님과- 불편한 걸 불편하다고 말할 줄 아는 자식이라면 충분하다. 나는 집에서 '나' 그대로 숨쉴 수 있으니.
4. 책임감으로 하던 행동 중지
[일주일에 두 세번씩 한 시간 넘게 하던 페이스톡, 한 달이 가기 전에 지방 본가 주말에 꼭 가기, 바쁠 때에도 무조건 받던 할머니 전화]
아무도 시킨 적 없는 효도 3종 세트를 그만뒀다. 놀랍게도, 내가 이런 행동을 안 해도 세상은 나를 사랑해 주더라고!
이번 설날에는 대담하게도, 전 부치는 것을 돕는 대신 고등학교 친구들과 밖에 나가서 수다를 떨고 오려고 한다. 나는 나의 시간이 있으니까. 부모님이 힘들면 도와달라고 말 할 테니까. 그 전까지는 미리 눈치를 보고 애써서 무언가 할 필요 없으니까.
그동안 몰래 다니느라 힘들었지만, 더 빨리 말할 걸 하고 또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겐 어느 정도 마음이 단단해지고 병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고민한 뒤인 지금이 딱 말하기 적절했던 시기니까. 덕분에 혼자 땅 끝까지 떨어져 슬픔을 파댕기고 다녔지만- 그런 시간들도 견뎌내 서 있는 지금이 나는, 평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