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결혼식을 왜 꼭 이유도 없이 해야 하는 걸까?
사랑과 돈 중 불안한 미래를 극복하는 데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던 '사랑'이라는 도의적 가치를 자꾸 물질에 빗대어보게 된다. '프러포즈', '결혼'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더 그렇다. 돈을 아끼다가, 인생에 한 번뿐인 일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가. 이도 저도 아닌 채로 매일 흩날리는 나의 정신 건강-
"나랑 결혼해 줄 거니?"라는 말을 들었고, 그 전에 먼저 부모님께 내년에 결혼하겠다 엄포를 놓았으며 - 왼손 약지에 처음으로 금반지라는 것을 껸 채로 알리 익스프레스에 7만원 미만의 웨딩 드레스를 찾았다. 불안하고 답답하다가도 눈물이 팽 돌면, 다독여주는 큰 가슴 앞에 기댄다. 머리통의 열기가 그 사람 심장으로 쏘옥 흡수되고, 나는 이내 지구가 멸망할 것 같아 두려운 여자에서 결혼식장에 등장해 엄마와 아빠에게 편지 낭독을 하는 신부가 되어 잠이 든다. 남들은 눈이 휘둥그레해진 채로 놀라 뒤집어질 뻔 했다는데, 나는 그저 "괜히 오버하지 마."라며 손을 내젓는 결혼식 준비 시작 선언.
원래 이 때 즈음에 부모님들께 알려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다만 언니가 형부 없이 본가에 간다기에 나도 함께 가겠노라 하고 따라갔을 뿐. 남자친구와는 5월 즈음에 부모님을 서로 뵈러 갈까- 각을 보고 있던 찰나였다. 그래서 말했던 것 뿐이다. 외식을 끝마친 그 때, 일어나기 직전의 4명에게.
"나 이제 내년쯤 결혼을 준비하려고 해."라고.
후폭풍은 엄청났다. 엄마는 여느 주말 드라마 리액션마냥 "세에에아사아앙에! 정말이니?" 라고 틀어나오려는 비명을 두 손으로 막았으며, 언니는 "야. 나한테는 먼저 말해줄 수 있었잖아."라고 투덜거렸고 아빠는 오빠의 어깨를 부여잡고는 "이제 네 자리가 애매해졌다?"라며 은근히 장남에게 너도 미래를 생각하라는 압박을 넣었다. 그리고 나는 장장 6시간에 걸쳐 엄마와 언니의 취조를 받아야했다. 왜 결혼이라는 걸 생각하게 되었는지, 굳이 이 남자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식은 어떻게 할 건지, 집은 어디서 살 건지, 직장은 어떻게 되는 건지, 그 집안은 제사를 많이 하는지, 시누이는 있는지 등등.
할 수 있는 대답은 성심성의껏 했지만, 나는 점차 모든 게 귀찮아졌다. 그와 함께하며 한 번도 생각지도 못한 질문들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갯수가 많아질수록, 엄마와 언니는 흐음- 하고 턱을 괴고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게 싫었다. 뭘 그렇게까지 남의 집 밥숟가락의 갯수부터 종류까지 다 알아야 하는 게 결혼이냐고. 내가 알고 있는 거라곤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난데없이 '지구는 20년 뒤에 멸망하고 말 거야.'라고 기후 변화에 따른 종말론을 믿고 있으면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라며 내 눈을 맞추고 웃어주는, 오늘을 보게 해주는 단호한 표정이라던가,
'주말에 어딘가 나가고 싶을지도 몰라. 근데 지금은 침대에서 10분만 더 누워 있어볼래.'라고 했을 때 '그래, 10분만 더 기다려 볼까?'라고 했다가 불현듯 어딘가 산책이라도 하자고 하면 군말 없이 냉큼 옷을 갈아입고 나를 문 밖으로 이끄는 단단한 손이라던가,
신나게 둘이서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도 화장실에 다녀오고는 '나 조금 울었어. 근데 이유는 없어.'라고 토로하는 내게 '그랬구나. 갑자기 슬펐구나.'라며 다 괜찮아질 거라며 안아주던 가슴이라던가,
대화를 주고받다가도 이따금씩 혼자 생뚱맞은 생각에 빠져 말수가 없어지는 내가 눈 앞의 이 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맞춰주는 그의 눈동자,
그런 것들이었단 말이다.
그러니 본관이 어디고, 무슨 김씨이며, 부모님의 원래 고향은 어디인지 알 턱이 있겠느냐고. 우리의 대화는 그런 이야기가 낄 틈이 없었으니. 엄마와 언니의 마음도 이해는 간다. 막내가 갑자기 결혼한다고 해서 이것 저것 물었더니, 돌아오는 답이란 "그냥" 아니면 "모르겠어."밖에 없다. 하지만 난 이 사람과 하는 사랑의 정의는 무엇이고 이 사람이 주는 사랑의 종류로 내 삶이 온전히 따스해질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되었다는 말 같은 걸 길게 늘어뜨리고 싶지 않았던 것 뿐이다. 진심으로 진지하게 들어줄 리도 만무하고. 하지만 돌아오는 그녀들의 질문은 가혹했다. 집은 매매를 할 것인지, 어디에 구할 것인지, 전세나 월세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 같은 것들이었으니.
그저 함께 미래를 담고 내일을 바라볼 사람을 곁에 두고 싶었던 것 뿐이었는데, 나를 아끼는 주변 사람들은 자꾸 '그러니까 이 돈'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묻는다.
오랜만에 만난 친한 친구는 '그러니까 이 식은 어떤 돈으로 얼마나' 할 것인지도 물었다. 결혼식 전체 비용을 상대방 쪽에서 부담했는지, 자기들끼리 모은 돈으로 했는지, 결혼식을 진행하는데 꼭 하고 싶어서 당사자들끼리 진행한 게 맞는건지. 나는 그저 마음 맞는 성인 남녀 둘이 앞으로 같이 살자는 약속만으로도 결혼은 충분한 것 같은데, 어른들은 아니라고 고개를 내저으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함께할 세월을 꿈꾸며 살림을 합치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한 결혼이었고 남들의 생각과 기대와는 무척 달랐다. 그놈의 '식', '세리모니'가 얼마나 중요하다고. 원치도 않는 남들의 눈과 기대를 위해 그간 노력해 쌓은 돈과 시간을 얼마간 버려야 한다니 속상함이 닥쳐왔다. 이것마저 내 마음대로 못하는데, 내가 뭣하러 결혼을 해야하는건지 짜증도 차올랐다. 그러니 내 '결혼식'의 목표는 '가성비 있는, 남들을 위한 최저가 행사'가 되었더랬다. 그렇게 웬만한 걸 생략하거나 저렴한 웨딩홀 패키지로 처리하자는 결론. 나는 스튜디오 촬영 대신 알리 익스프레스나 당근에서 7만원 미만의 웨딩드레스를 찾겠다고 키워드 알림 설정을 해놓았다. '웨딩 드레스, 드레스, 웨딩 촬영, 2부 드레스.' 단어들은 하루에 많으면 다섯 번씩 내 핸드폰 위를 장식했고, 나는 그 때마다 '이것보다 조금만 더 돈 들이면 우아하고 화려한 옷을 찾을 수 있을텐데.'라는 마음과 싸우느라 곤혹을 치렀다.
그러다보면 이 사람과 함께 살 집이 어디쯤 될까 네이버 부동산을 검색하게 되고, 우리 돈으로 갈 수 있는 곳은 겨우 원룸 빌라일 것만 같은 생각에 울적해지며, 지금 겨우 찾은 평안한 전세 아파트 살이를 청산할 생각에 미래는 착잡하고 어둡게만 펼쳐진다. 이렇게 돈을 모아 겨우 마흔이 넘어 작은 집을 매매한들- 기후 위기가 닥쳐 이미 지구 온난화가 심각하게 진행되었으니 50정도가 되면 지구의 온 생명체는 멸망하고 말 것이다.
내가 내달리는 미래의 끝은 외계인 침공도, 사막화도 아닌 생명체 자체 폭망이다. 그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어차피 다 끝날거, 지금 쓸 수 있을 때 팡팡 돈이나 다 써버려? 팽글팽글 내 머릿속은 희한한 쳇바퀴를 타고 도는 중.
어쨌거나 결혼을 막상 하려니 내 불안은 다 ‘경제력’에서 싹을 틔운다는 걸 깨달았다. 그럼 나는 돈 많은 집안의 남자를 다시 찾아 만나야 할까, 혹은 내가 돈을 더 많이 버는 직업으로 바꿀 공부라도 해야 할까. 그런 생각에 잠시 빠졌다가도 이내 웃는다. 웃어버리고 제낀다. 지난번에 말했듯- 내가 나답게 살아가기로 한다는 건 그런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꼭 붙잡고 두려운 늙음을 통과해보겠노라 다짐하는 것. 그게 아직 다가오지도 않을 미래의 불안을 훠이훠이 떨칠 수 있는, 내가 가질 ‘결혼’이라는 생활의 의미라고. 분명 나는 경제력이 풍족한 사람을 만나면 그 나름대로의 불안을 떠안고 벌벌 떨 테지. 농담으로 “그런 삶 한 번 살아봤으면 좋겠네!” 말하지만, 나는 이 사람과 함께하는 오늘이 못내 기쁘다. 딱 맞는 온도만큼 따뜻하고 부드럽기도 한 걸. 내 스타일이야. 이런 속도의 삶은.
무거운 고민이라고 꽁꽁 싸매고 혼자 앓아누웠던 20대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네가 고민하는 시간도 소중하지만, 대부분 별 일 아니니 걱정 말고 네 아름다움을 지켜라.]라고 말하고 싶은 것처럼, 40대의 나도 집 하나 없지만 지금 31세의 나는 최고로 달큰한 꽃이니 만개한 지금을 두려워 말고 누리라고 할 게 뻔하다. 10년 후의 내가 싹이 곱게 핀 벚꽃잎을 또옥 똑, 바람에 하나씩 떨어뜨리며 말을 거는 기분이다.
팽글팽글 사정없이 바람에 실려 바닥에 톡 떨어지는 연분홍 벚꽃잎은 땅바닥에 낙하하는 순간마저 제가 예쁘다는 걸 알까.
나는 불안 가득 떠안고 미성숙한 채로 결혼이라는 걸 해보려는 내가 어여쁘다는 걸 알아주려고 한다.
무한한, 나의 팬이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