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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북스테이에서 맞이하니 좋더라. 희망과 우울증

(4) 마음을 받고 싶었던, 어린 나를 치료해 줘! 서울 호모북커스.

by 라화랑

일기를 썼다. 누군가가 내게 묻는 듯한 이야기 말투의 일기. 화랑이가 화랑이에게 말을 건네는 일기.


어떻게 힘든 걸 이겨냈어요?


이겨낸 적 없어요. 도망갔어요. 책방으로.

책들은 저랑 같이 슬퍼해줬어요.

이야기 속의 작가들은 언젠가 저만큼 슬픈 적이 있었던 사람들처럼, 제가 묻지도 않았지만 대답이 필요했던 이야기들을 들려줬어요.


책방 사장님들이 희망을 줬어요.

습관적인 친절로요.

사무치게 외로운데 아무도 날 모를거라 생각했던 날에는

"엇, 혹시 그 때 그 분?"하며 딱 한번 본 불량 책방 이용자를 기억해주었어요.


먹기 싫은데

약 때문에 억지로 혼자 밥을 먹고 돌아온 날 밤에는

디저트도 먹으라며

책상 위에 곱게 배를 깎아 올려놓아준

공유서재 대표님도 있었고요.


직장에서는 다들 걱정해줬어요.

연락을 해도 될까, 내 마음을 가장 눈여겨보면서

지금까지 몰라줘서 미안하다고 자신들이 더 아파해줬어요.


그래서 알았어요.

내가 필요한 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세상 속에서 따뜻하고 친절하게 살아가는 거라는 걸 말예요.

그래서 이겨내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아픈 채로 기대어 살아보려고요.



다음날 아침, 역시나 일찍 눈이 떠졌다. 11시 전까지 짐을 비워달라는 말을 충실히 이행하려 부지런을 떨었다. 준 과일에 뭐라도 드리고 싶어 가방을 뒤졌으나 달리 나온 것이 없어 포스트잇에 편지를 적었다.

[대표님께


착하고 바르게 살다보면 사람은 이렇게 행복해질 수도 있고 사랑받을 수도 있다는 증명 같았다 - 오후도 서점 꿈 이야기 놓습니다.


제게는 호모북커스와의 3일이 그랬어요. 숨은 곳이 도피처인줄 알았는데, 사랑의 장소였습니다. 사람과 세상이 무섭다며 숨었지만, 사실은 착하고 따뜻한 사람들 속에서 누구보다 함께이고 싶었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바랐던 착한 사람들이 없는 줄 알고 실망했을 무렵, 호모북커스와 함께하며 무수히 제게 함께하자 손 내미는 사람들을 깨달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살게요. 화랑 드림.]




…이렇게 아름답게 화랑이는 잘 성장하고 극복하여 웃는 얼굴로 집에 들어갔습니다- 하면 참 좋으련만, 인생은 제 맘대로 아름답게 마무리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나는 내일이 있고, 당장 오후에 누군가를 만나야 할 약속이 있다. 나의 직업과 나이, 상황을 모르는 느슨한 연대의 성인들에게 우울증을 어떻게 터놓을지- 말지- 사실은 그것보다 내 심장 두근거림이 멀쩡할런지부터 불가사의하다.


하지만 글씨로 쓰는 일기는 여기서 마친다.


그건 내가 유일하다시피 스스로 끝맺을 수 있으니까.



-5월 30일에서부터 6월 2일 오전까지의 기록. 수기. 끝.






안녕하세요, 어느덧 몰래 다가와

슬쩍 코를 때리고 사라지려고 하는 가을을 붙잡고만 싶은

10월 첫 주의 화랑입니다.


다음 행선지는 - 6월 중순의 안동입니다.

제가 북스테이 이야기를 글로 쓴 것 중, 가장 애정하는 마음의 조각들이 모여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바쁘지 않으시다면,

혹은 바쁘시겠지만 괜찮으시다면

6월 초/중순의, 희망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희망의 씨앗을 스스로 심고 뿌듯해하는

6월 중순의 여자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평안한 마음으로 하루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허전하면 허전한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온 몸으로 맞이하는

감정에 충실한 나날들 되시기를

저 멀리서 사라져가는 가을 공기에 띄워보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년 10월 6일, 쌀쌀한 온도차에 훌찌럭거리는 화랑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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