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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ul illang Dec 11. 2023

온 세상이 다 자기 편을 들고 있네

(2)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사랑하는 중 - 일랑

온 세상이 다 자기 편을 들고 있네


[얼굴이 창백하다, 무슨 일 있어?]

지나가며 한 마디씩 했다. 

힘이 없었다. 

출근하며 품 안에 꼭 안고 잠들었던 핸드폰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어디 있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찾아보라 부탁해도 도무지 나오질 않았다. 내가 죄 갔던 곳을 훑어보고서, 그리고 가방을 한 3번쯤 더 열어보고서 깨달았다. 인정했다. 핸드폰, 버스에 놓고 내렸다고. 지끈지끈 머리가 아파왔다. 삶을 살아내기 힘든 사람은 정신을 놓고 다니지. 그래서 이런 웃긴 일도 벌이고 다니고. 제 풀에 제가 지쳐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는, 다시금 불안증이 도진 사람의 마음이란 온통 시꺼맸다. 까맣다. 마음의 뾰족한 심들이 얼기설기, 하지만 거세게 나를 잔뜩 긁어댔다. 

안 그래도 숨 쉬고 출근한 것만 해도 대단한 사람에게 이 무슨 횡포야, 세상아.
 넋두리는 갈 곳 없을 때 꼭 세상을 탓하게 된다.


한숨을 푹 쉬며 부장님 앞에 서니, 걱정되셨나 보다. 내게 무슨 일 있냐며 안부를 물었고 나는 간단히 말했다. 핸드폰을 버스에 놓고 내렸다고. 그리고는 덧붙였다. 출장이라 오늘 전체 회의에 참석을 못 하게 되어 대단히 죄송하다고. 내 어깨를 토닥이는 다정한 손길도 오늘은 제겐 힘이 없네요, 자조하던 차.


[자기, 잘 됐다. 오늘 가는 출장지 위치 말야.
핸드폰 찾으러 가야 하는 차고지 바로 앞 아냐? 00운수 맞지?
거기 바로 건너편이잖아. 너무 잘 됐다.]


으어,에-? 힘없이 내가 대꾸했고, 그녀는 검지를 휙 들어보였다. 숫자 1을 알려주겠다는 선생님 마냥.


[아이고, 잘됐네. 온 세상이 다 자기 편을 들고 있잖아, 지금.]

명백한 하나의 진실일까. 왜 그녀는 검지 하나를 내게 굳이 콕 들어 알려주었을까. 이유를 모르겠지만서도 그 말이 내게 이유가 되어버렸다. 덕분에. 그러고보니, 온 세상이 다 내 편을 들고 있는 것도 같다, 특히 오늘 정신을 다른 데 팔고 온 날에는 더욱. 이건 또 다른 나의 실수가 내 편이 되었던 그로부터 30분 후 이야기. 


회사 돈으로 물건 몇 개를 사야 했고, 그래서 물건을 사겠다는 계획서를 올렸다. 결재가 난 계획서를 들고 회계 담당 직원분께 갔다. 급한 물건이니 바로 구매 부탁드린다고. 옆에서 장바구니를 함께 구경하고 있노라니, 아뿔싸. 무언가 돈이 이상하다. 깜짝 놀라 하나씩 목록을 지워가며 돈을 비교해보았다. 내 실수가 맞았다. 제대로 했으면 큰일날 뻔 했다. 실수하지 않았다면 배송비를 빼먹은 내 계획서는 반려당했을테고, 난 급한 물건을 제 때 못 샀을 터. 이상하게도 내 손이 1개 대신 2개를 쿡 집은 덕분에 수량을 빼고 차액으로 배송비를 여유롭게 결제할 수 있게 됐다. 제대로 생각했다가 돈이 모자를 뻔 했다. 물론 완전히 똑바로 잘 생각했다면 처음부터 이런 일은 없었을 테지만, 누구나 직장에서 실수는 하는 법이고 그게 하필 오늘같은 날이라는 게 내겐 중요했다. 정신을 놓고 벌인 실수가 또 나를 살렸다. 연달아 겪으니 마음에 글자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온 세상이, 넋이 나간 날 돌봐 주고 있다.]
[세상이 내 편인 사람일 수 있다, 내가.]
[이렇게 우울하고 불안해서 실수 투성이인 나를, 오늘의 세상이.]


주변을 다시금 둘러보았다. 세상이 내 편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더니- 갑자기 하늘이- 예뻐보이지는 않았다. 드라마 속이나 동화 속처럼 마법같이 긍정적인 마음이 샘솟지는 않았다. 맞다, 이건 현실이니까. 지금은 만화 속 캐릭터 캔디 아니고 그냥 나니까. 나. 그런데도 힘없는 웃음이 지어졌다. 맹세코 아름다운 글의 마무리 때문이 아니라 자부한다. 핸드폰을 찾고 도착한 출장은 업무 관련 연수였고, 연수 제목은 [비우는 것으로 나를 지키다]였다. 출장 연수 강사님이 끝에 말씀하셨다.


“쉼표가 있을 때 반올림이 옵니다. 쉼 있는 시간과 마음에서 성장이 온다는 걸 기억하시기를.”


며칠정도 더 넋이 나가 불안한 마음을 안은 채로 널부러져도 괜찮을지도 모륻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좀비같이 숨 붙어 휘청이며 회사를 걸어다니는 나를 보여줘도 괜찮다고, 눈 좀 덜 뜨고 업무에 가끔 구멍내도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숨통. 

그래도 괜찮은 이유는,


하루 이틀 정도는 세상이 내 편인 사람이니까.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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