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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ul illang Mar 22. 2024

10대의 네가 꿈꾸던 모습, 너 맞아?

(26) 원탁의 기사, 그리고 이제야 끄덕이는 고개를 사랑하여 - 일랑

[어쩌면 내가 망설임 없이 힘껏 뽑아 들었던 미지의 꿈은 대단한 게 아니었을지도 몰라

어둠을 가르고 행진하던 어린날의 우리는 무엇을 그리도 굳게 믿었나


찬란하게 질주하던 용감한 젊음이여 반짝이던 행진은 추락마저도 빛이 되어 남으리

슬퍼 말아라 늙은 소년아 그대는 이미 하늘을 걷는 별이다]


원탁의 기사, 모브닝




일요일 집 앞 스타벅스 오후 4시 29분. 조금만 누워보려다 한 시간이나 낮잠을 잤다. 알 수 없는 기분 나쁜 꿈에 가위 눌리듯 잠이 깼고, 일요일마다 기분 내던 카페는 지난 주 폐업. 갈 곳 없는 내가 선택한 장소의 이유는- 누군가를 소개팅시켜줬더니 고맙다며 받은 기프티콘. 이런 내가, 오늘의 내가, 지금의 나를,


10대의 내가 꿈꾸며 바랐던 모습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파할까, 질문에서 도망칠까, 잠자코 끄덕일까.



그간 지녔던 개똥철학. [10년 후의 내 모습은 10년 전의 내가 결정한다.]


어디서 본 적도 없고, 일부러 만든 생각도 아니다. 그저 언젠가부터 태어날 때 뽑은 포춘쿠키의 한 줄처럼 지니게 되었다. 산부인과에서 모월 모시에 태어난 내게 자동 탑재시킨 건 아닐까. 598번째 아이라고? 그럼 이 생각을 집어넣도록 하지- 하고.


이 이야기를 왜 지금 하냐면- 이젠 저 문장, 버리겠다는 선언을 하려고. 오늘의 내가 조금이라도 불행하면 나는 곧잘 내 탓을 하곤 했다. 네가 지난 주에 부지런하지 못해서 그래- 지난 달에 좀 더 재테크에 관심을 가졌어야 했어, 지난 년도에 더 힘주어 이 곳 저 곳 화려하게 쏘다녔어야 했어, 지난 휴가에 늦잠자면 안 됐어.


 그러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평소보다 더 아린 날이 찾아오면, 어쩔 줄을 몰랐다. 어디 후회가 1년 주기에서 멈추겠어요- 끝까지 파고드는 자의 최종 후회 종착지는 ‘존재'다. 나의 탄생을 자책하는 시간들을 견뎌냈다. 그 따갑고 퍼부어지는 미움에 갇힌 나는 참으로 너덜너덜했다. 생명 자동 연장 장치를 단 좀비였다, 내가 느끼기엔 적어도 나는 참으로 못났다, 그 때.


근데- 그런 내가 예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나는 미친 속도로 떨어지고 있는데, 이미 추락해 여기저기 짓눌리고 뒷틀려 삶을 내팽개쳤는데. 직장에서도- 상담 센터에서도- 길을 가다가도- 새로운 모임에 나가도- 버겁게 숨 쉬는 나를 그 자체로 ‘예쁘다'하더라.

이렇게 열등감으로 똘똘 뭉쳤는데요? 이렇게 저 자신을 무거워하는데도요?

여러번 되물어도 모두들 끄덕였다. 그렇다고.



가소로웠다. 있는 힘껏 비웃어주었다.

날 잘 모르는 자들이야, 역시 내 망가짐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구나.

…아니었다. 아니더라. 밥 한끼 못 먹고 말라가는 나를 두고, 회사 사람들은 나 몰래 회의를 열어 저들끼리 순번을 정해 내 눈치를 보다가

“같이 저녁이나 먹고 들어가자.” 했다.

[오늘은 어떤 하루야? 그냥, 그냥 이유 없이 네가 궁금해서.]

새로 만난 가벼울 모임의 인연들. 모임날도 아닌데 이따금 날리는 관심.

[점심 먹을 곳 주변에 없는데, 같이 시켜서 먹을래요?] 어느 날의 도피처였던 북스테이 사장님의 마음도. 다 받아먹고 나니 알게 됐다.

나를 가만히 두지 않을 만큼 왜 사랑을 주지- 의구심이 피어낸 질문의 유일한 정답.
추락마저 아름다워 눈길이 가는 존재- 그게 나였던 거구나.


10년 전의 내가 무얼 잘못해서 지금의 내가 아픈 게 아니야.
어제의 너는 잘못한 게 없어.
네가 잘못한 게 있다면,
 [네가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 모르고 소중히 대하지 않은 것.]




나를 깎아내렸던 건, 나였다.

 잠시 찾아오는 어두움을 나는 걷어낼 줄 몰랐고, 모든 불행을 내 탓으로 돌렸다. 무례하게도, 내게.



공손히 예의를 갖춰 목례를 한다.

조금이나마 운동을 시작했다. 술자리를 일부러 만들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 일부러 감당 못할 매운 음식 먹는 걸 참았다. 세 잔 연거푸 들이마시던 커피를 한 잔으로 줄였다. 오늘부터 내 포춘쿠키 문장은 이거다. 모월 모시 모분에 태어난 자들에게도 이런 문구를 넣어 주기를.


[오늘의 나는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는 어제의 나일 뿐.]


10대의 내가 바랐던 것은 오직 나의 행복이었다. 내가 바라던 미래의 꿈꾸던 내가 되었냐고, 펑퍼짐한 교복 치마에 찔릴 듯한 앞머리를 틀어올리고 새벽까지 공부하는 그 때의 내가 오늘의 내게 묻는다면, 그렇게 잠도 못 자고 희생하던 청춘의 시간이 거기에서 꽃피었냐고 묻는다면,


끄덕일 것이다.


너는 이미 하늘을 나는 별이 됐어. 반짝이는 혜성이 됐단다.

매일매일 아득한 밤하늘을 여행하는 존재가 되었어.

그러니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살자. 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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