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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ul illang Feb 05. 2024

불안정한 나의 20대를 감싸안는 시도

(15) 불안정한 분자였던 나의 20대를 사랑하여 - 일랑

고맙게도 나를 좋아해주는 친구가 말했다.

-너는, 한껏 안정된 분자구조 속에 이상하게도 불안정하게 똑 떨어진 분자같아.



웃었다. 생각해보니 맞네.


 그 모든 안정성을 내던진 만큼, 내가 얻은 경험이라는 게 그만큼 소중했던 건가. 가끔 코난 오브라이언의 우스갯소리를 떠올린다.



-니체는 [너를 죽이지 못할 고통은 너를 강하게 만들 뿐]이라지만 저는 말합니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은 정말 네가 죽을 수도 있다.]고.



남들이 보기에 행복해야만 할 것 같은 온실 속 화초의 삶, 나는 왜 내려놓고만 싶었을까. 그렇게 부모님이 공들여 만든 공주님의 자리- 왜 마음 다치고 온 몸 부서져가며,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고 그제서야, 죽기 직전의 영혼이 되어서야, 제 삶이 얼마나 귀한지 깨달은걸까.



후회하냐고 묻냐면, 답은 [잘 모르겠다.]이다. 가지 않은 삶의 미련은 누구나 있고, 나또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까지 나를 부정할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면- 섣불리 그 버튼 누르기가 어렵기도 하다. 자기 방어막인가 싶기도 한데, 이유 없이 기분이 그렇다. 그냥, 그렇다고 돌아가기엔, 싫어.



그간 내 경험을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지 않다. 청춘의 이름 안에 아파야만 했던 파도가 참으로- 내 본래 운명보다 더 가혹했음을 알아서. 그 모든 걸 웃으며 바라보는, 내 마음따위 전혀 모를, 몇십 년 더 나이 든 자들의 눈길이 싫어서. 스무 살부터의 내 삶을 내밀기 미안하다. 아무리 온갖 역경을 통하여 얼마나 내가 단단하고 멋진 사람이 됐던 간에.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불안정 분자에게 풍기는 냄새가 단정하다는 사람들이 꽤 많다. 놀랍다. 날 잘 몰라 하는 소리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고등학교 친구들도 그러는 걸. 내 삶을 누구보다 깊숙이 관전한 다이빙 선수들인데.



[넌, 그런 느낌이야. 잘 배우고 가정교육 잘 받은 사람의 단정함. 네가 주는 다정함이 그래. 사랑하고 사랑받으려고 우린 애써서 노력하는데, 너는 그걸 타고난 듯이 하고 있어. 당연하다는 듯한 네 태도가 참 좋아. 그래서 네 옆에 있으면 내가 마음이 편해.]



진흙탕에 굴렀는데- 분명 내 시간들의 사건사고들은 누군가 평생 겪지 않을 것들의 총집합소였는데, 왜 그런거지. 그런 고통과 경악의 경험 자체가 날 만들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저,



나임을 찾아가는 모든 순간을 잘 기억하는 사람이라 그런가 보다- 결론내린다.



결론도 섣부르지만, 이건 하나의 시도다. 내 그간의 20대를 쓰다듬으려는 손짓. 내가 나로 살기 위한 모든 시도, 그리하여 발견한 자존감. 스스로를 사랑하려는 모든 시간들. 결국 해낸 나까지.



그러니 나인 채로 서 있는 사람들을, 나도 이제부터 단정하다고 하겠다. 삶에 있는대로 휘둘리고 엎어져 울면서 자신을 꼭 끌어안을 줄 아는 영혼이 있다면- 다정하다고 하겠다. 있는 대로 휩쓸려도 괜찮은 사람들- 불안정 분자여도 마음 한 켠 늘 따스하려고 움직이는 사람들과 함께하겠다.



그러다 보면, 이 통통거림도 언젠가 자잘한 진동으로 바뀔 테지.


나도 모르는 새- 옆에 붙은 사랑들이 말해줄 테지.


-이것 봐! 우리 옆에 잘 붙어있네? 너도 이제 멋진 안정 구조가 되었어!



그럼 좀 기대어 쉬어야겠다. 칭얼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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