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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화랑 Jan 19. 2024

한가롭고 외로운 김에, 공원 찬가

(9) 혼자 벤치에 앉아 공원을 관찰하는 순간을 사랑하여 - 일랑

공원을 좋아하게 됐다. 

정확히는 공원 한 가운데 길목에 자리한 벤치에 앉아 지나치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토요일 오후와 저녁 그 사이의 내 시야가 좋다. 마이클 부블레의 노래를 재생시키고 보는 사람들이 걸어가는 모습. 

핸드폰을 보고 바삐 지나가는 여자라던지, 운동복을 입고 나와 두 손을 꼭 잡고 서로에게 힘주어 걷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 궁금한 것들 투성이다. 


저 사람들은 어쩌다, 
이 시간에,
여기까지 나와 내 삶을 반짝이게 만들어주는 걸까. 
무슨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상상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방금 이 더운 날씨에 긴 팔 운동복을 입고 뛰어다니는 아저씨 한 분에게는, 이 주변에 살며-평소에는 운동할 시간이 전혀 없이 바쁘고-운동 외의 다른 여유를 가질 수 없는 가장-그래서 뜀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정돈하는 헐떡거림-그리고 황급히 아빠 빨리와, 나 배고파!라는 칭얼거리는 일곱 살 딸래미의 전화를 받고 멋지게 숨을 고르던 조깅을 멈추고 진심을 다해 뛰어가는-사랑스러운 아버지-의 상상을 붙여보는 것이다.



재미있다. 모두 가을 하늘이 내게 주는 이야기들이다. 유모차에 탄 강아지의 마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여자(아마 딸이겠지)에 이끌려 산책하는 할아버지의 만족감같은 것들은 어쨌거나- 여유로움이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여유로움은 행인이 아닌, 내게서 나오는 것이리라. 

나는 가을이 다가오면 끝이 나고 말 때까지 집 밖에서 끊임없이 세상 산책을 즐기는 사람이라 다행이다. 토요일 저녁, 나는 장충동 한 공원에 앉아있다. 눈 앞의 사람들은 어디론가 걸어가고 차들은 나를 보지도 못하고 나무 사이로 사라진다. 


아, 살아 있어서 고마운 시간이다. 

지나가는 하얀 고양이가 말한다.


-넌 참 별 게 다 고맙다. 나 같은 고양이는 그런 것쯤 매일 보는 걸?


나는 고양이가 날 째려보는 찰나의 눈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리고는 가만히 웃는다. 그리고 대답한다.


[왜냐하면 나는 이 모든 게 쓸모없다고 지겨워하던 모든 시간들을 기억하거든. 그리고 그런 삶이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웠는지도.
고양아, 인간은 너처럼 똑똑하지 못해. 참으로 어리석단다. 
눈 앞에 있는 음식을 보고 너처럼 용감하게 목숨을 담보로 뛰어들지도 못하고
함께하고픈 이성이 눈 앞에 아른거려도 너처럼 대범하게 말을 걸지 못 해.
그래도 나는 멍청한 인간으로 살아야 하기에 조금이라도 널 보며 배워볼게.
자분자분 네 길을 밟아내는 네 발을!]

내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뭐래는 거냐며 콧방귀를 뀐 고양이가 도도한 발자국을 남기고는 사라진다. 나는 내려놓았던 가방을 다시 어깨에 멘다. 그리고는 엉덩이를 툭툭 턴다. 


자, 어디까지 왔더라.


네이버 지도가… 엇 여기다. 



나의 온전하고 외로워 완벽한 토요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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