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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ul illang Dec 15. 2023

기지개, 세상에 펴는 청춘

(5) 청춘인 나의 작은 몸짓을 사랑하여 - 일랑

기지개, 세상에 펴는


기지개를 많이 편다. 옛날에는 자고 일어났을 때에만 하던 동작이었다. 그런데 자꾸만 기지개를 쭉 펴고 걷고 싶은 시간이 있다. 졸려서 잠 깨려고 하는 것 말고, 상쾌한 기분이 드는 동작. 드라마 주인공같은.

읏쌰-하고 소리내어 손을 하늘 위로 쭉 편다. 그리고 팔꿈치가 쭉 늘어나는 순간을 느낀다. 잠시 눈을 꼭 감고, 숨도 뱉어본다. 그리고 눈을 다시 반짝 뜨면, 이상하게 웃음이 난다.


이건 나의 기지개의 순간에 대한 이야기.


오늘의 기지개는 이거였다.

매 번 가는 상담 선생님과의 약속- 어떤 말을 먼저 할지 하루종일 문을 박차고 여는 상상을 계속 했다. 뱉어내고 싶은 삶의 이야기가 있었다.

늘 내겐 사건이 생기고, 그걸 담을 그릇이 투명하다.
그래서 늘 어떻게 품어내야 하는지 아리송하다.

그럴 때에는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씩 뵙는 선생님께 꼭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 다짐한다. 오늘은 특히 청춘 사업으로 머리가 띵하니 아픈 날이었다. 나도 모르게 기대했던 사람이 사실은 내 생각보다 별로인 사람이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 사람에게 끌렸던 건지 모르겠다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자제력을 잃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호감을 품어버렸다, 그리고 또 나를 희생하면서 그 사람에게 맞춰주려고 했다는 자책감을 토로했다. 그래서 며칠동안 자다가도 벌떡벌떡 깨고 계속 핸드폰 화면만 쳐다봤다고도 했다. 침대를 팡팡 주먹으로 내리치고 이불을 걷어차며 말똥말똥 뜬 눈으로 밤을 좀 지새웠다고. 나 그래서 오늘 퀭하다고 고했다. 아빠다리를 하고 소파에 앉아 쿠션을 또 때리려고 하는 나를 보고 상담 선생님이 웃었다. 나는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이렇게 매 주 다른 주제로 머리를 쥐어뜯는 상담자, 저 말고 또 있어요? 전 제 인생이 너무, 매 번, 늘 무언가가 일어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 말고, 나만요.]


그랬더니 상담 선생님 왈.


[그래서 사랑스러워요. 이렇게 매 번 다른 일로 열심히 살아가는 일랑님이,
너무 기특해. 예쁘고요. 청춘이야- 정말.]

나는 그러게요, 청춘이네요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거웠던 내 삶이 갑자기 청춘이라는 두 글자를 입히자 산뜻해졌다. 맞다, 다채로운 내 일주일은 누구보다 청춘이야- 생각하니 즐거웠다. 나라서, 지금이라서 겪는 특별한 경험들이니까. 나만의 청춘이 사랑스럽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으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생각이 단순해진다.

그만 생각해도 된다. 청춘은 그래도 되니까.


내 마음을 토해내고 건물 밖을 나왔다. 꼭 안아준 선생님 품 덕분에 아직 따뜻한 몸에 차가운 공기가 닿았다. 갑자기 기지개가 펴고 싶었다. 그래서 손을 쭉 뻗었다. 잠시 읏쌰- 힘을 주어 숨을 멈췄다가 후- 하고 뱉어냈다. 겨울 저녁 공기가 나를 맞이했다. 나도 그에 맞추어 가득 마음을 담았다. 그리고 손을 내렸다. 노곤한 웃음이 나왔다. 한 시간동안 계속 이야기를 했는데, 배고프지 않았다. 기분이 무척- 무척이나 좋았다. 그래서 드럼 비트가 강렬한, 밝은 밴드 노래 하나를 평소보다 크게 틀었다. 귀에 에어팟을 꽂고 하늘을 봤다. 12월의 밤하늘은 저녁 6시어도 깜깜하다. 배가 고프지 않으면 고프지 않은대로 집에 가자, 결심했다. 나도 모르게 큰 걸음으로 신나게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집까지 가는 길이 즐거웠다.

내가, 주인공이 된 기분.   

기지개를 펴고 하늘을 봤다가 손을 내렸더니, 오늘의 지금 이 시간이 날 맞이해줬다.


나도 같이 인사하는 기분이다. 기지개를 펴면서- 내리면서- 나 이제 세상에 스며들게. 잘 봐, 하늘아! 하고.

기지개는 내게 세상에 날 담뿍 담아달라 말하는 선전포고다.


이 사람, 등장!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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