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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업가 정담 Aug 21. 2024

500:1 경쟁률 뚫고 사표 낸 사연

 Chapter 2. The Ambitious Boy #2

전편에서 밝혔던 화려한(?) 인턴생활을 영위하던 중에 정규직 취업 기회가 왔다. 


경력직만 뽑던 한국지사가 최초로 신입사원을 뽑기로 한 것이다. 내친김에 정규직 채용에도 지원했고 부사장님을 끌고 갔던 인턴이라 그런지 운 좋게도 내 인턴 배지는 정규직 배지로 전환됐다. 


언제나 그렇지만 그때도 4학년들은 취업에 대한 고민이 컸던 시기였다. 그런데 나는 대학교 졸업장을 받기 전에 얼떨결에 취업을 하면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취업시즌을 넘겨 버렸다. 덕분에 기말 시험을 못 봐서 졸업을 못 할 뻔했지만. 



취업을 준비하던 주변 친구들은 한없이 나를 부러워했다. 그냥 기업도 아니고 무려 '외국계' 딱지가 붙은 기업에 졸업도 하기 전에 취업을 했다는 이유였다(당시에는 글로벌이라는 표현보다 외국계라는 표현을 썼고 뭔가 프리미엄의 느낌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주변 친구들에게 젊은 꼰대처럼 이렇게 말했다. 


"취업한다고 끝나는 거 아니야, 그때부터 시작이야. 그러니까 시작 조금 늦게 한다고 조바심 내지 마"


나도 신참이었던 주제에 잘도 조언을 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봐도 사회생활 몇 년 늦게 시작한다고 인생이 뒤쳐질 건 전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내 인생이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방향 설정이 훨씬 중요했다. 




신입사원으로 탈바꿈하니 조금씩 맡은 업무의 난이도가 높아졌다. 다른 지역 오피스들과의 컨퍼런스콜에 참석할 일도 많아졌고(같은 영어인데 발음과 억양이 그렇게 다른 걸 이때 처음 알았다), 시장을 분석하거나 인사이트도 뽑아내야 했다. 경쟁사 대비 우리 제품의 강점도 효과적으로 포장하는 것도 내 역할이었다. 


의욕도 넘치고 패기도 넘쳤던 나는 모든 일이든 최고의 결과를 내고 싶어 뛰어다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을 하면 할수록 인턴시절에 느꼈던 성취감이 희미하게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뭔가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내 것이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았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항상 나를 따라다녔다. 


높은 성과와 성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과제의 수행과 성취의 사이클이 반복되어야 한다. 이 당시 나는 무엇을 성취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 채 열심히 한다는 미명 하에 에너지만 쓰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열심히 뛰고 있는 그런 느낌. 




학창 시절 나는 마케팅이 하고 싶었다. 꿈에 그리던 마케팅팀에서 일을 하게 되었지만 치약이나 세제 같은 소비재 마케팅을 꿈꿨던 문과생에게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는 너무나 낯선 분야였다. 엔지니어들이 CPU의 Clock Speed가 어떻고  Core가 어떻고 할 때마다 내 초롱초롱한 눈에 맺힌 것은 물음표뿐이었고 난 외계어를 듣는 느낌이었다. 컴퓨터를 샀을 때 윈도가 깔려 있지 않으면 상당히 힘들어했던 나인데.  


결국 인턴 이후 뚜렷한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던 나는 이 길이 내 길이 맞나 라는 잔혹한 질문에 맞닥뜨리게 됐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을 때 술을 먹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이때 알았다. 이 시기에 가진 부서회식에서 술을 절제하지 못해서 인생 최악으로 필름이 끊기는 사고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귀갓길 길바닥에 혼자 쓰러져 자다가 지갑과 시계를 몽땅 도둑맞았다고 하면 설명이 충분할 듯싶다. 


앞날에 대한 고민이 주는 스트레스의 무게가 이십 대 청춘에겐 어지간히 무거웠던 듯싶다.     




결국 나는 몇 달의 고민 끝에 취업 1년 만에 사표를 썼다. IT는 내가 잘 아는 분야가 아니었고 그 당시엔 잘 알고 싶은 분야도 아니었기 때문에(하지만 지금 과거로 돌아가면 진심으로 개발 공부하고 싶다) 뚜렷한 성과도 내지 못했고 성취감도 느낄 수 없었다. 


내가 일했던 포지션에 접수됐던 서류가 500장이라고 들었는데 지원했던 다른 사람들의 자리를 뺏은 것 같아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내가 그분들보다 잘 나서가 아니라 인턴으로 일하면서 찍은 눈도장 때문에 내가 선택된 것뿐일 텐데. 


인턴생활 이후 다시 한번 어렴풋이 깨달은 것은 스스로의 '성취감'이 모든 일의 원동력이 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냐 없냐가 항상 결정을 내릴 때 중요한 근거가 된다. 



취업하면 끝이 아니라 그때부터 시작이라는 조언은 사실 나 자신을 위한 게 아니었을까. 


갈 곳이 정해진 것이 아니고 던진 사표는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난 모든 걸 원점으로 돌리고 다시 취업 스터디를 하기 위해서 학교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의 새로운 모험의 목적지는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금융업으로 정했다. 2007~2008년 당시 국내 뮤추얼펀드 붐과 함께 잠깐 유행했던 '금융수출'이라는 단어에 꽂혔기 때문이다.  


이 때 결정한 나의 선택이 이후 10년의 직장생활을 좌우하게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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