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면조 대신 먹는 것
올해도 미국에서 가장 큰 명절인 추수감사절이 다가온다. 추수감사절은 한국의 추석과 같이 가족들과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는 날이다. 칠면조와 햄, 그레이비가 얹어진 으깬 감자, 크렌베리 소스, 옥수수, 호박파이, 얌 (고구마) 등이 추수감사절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이 음식들은 실제로 초기 추수감사절 때부터 먹어오던 음식으로 대표적인 미국을 상징한다고 한다.
초기 추수감사절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떠나온 초기 이주민들이 인디언들로부터 배운 경작법으로 옥수수를 재배하기 시작해 큰 수확을 걸은데 대한 기쁨과 감사로 시작되었다. 이때 자신들에게 농사를 가르쳐 준 인디언들을 초대해 추수한 곡식과 과일 야생 짐승을 잡아 축제를 했는데 이것이 시작이 되어 오늘날까지 가족과 감사를 나누는 추수감사절(이하 Thanks giving Day, 땡스기빙데이)이 이어져오고 있다.
멀리 있는 가족들이 모여서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안부를 나누는 최대 명절이기에 대부분 학생과 직장들도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는 날이기도 하다. 나는 가족들이 모두 한국에 있기에 조금 쓸쓸하기도 한 명절이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땡스기빙데이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교회에서 땡스기빙데이 음식을 마련해 주시니 딱히 음식면에서는 서운할 게 없는 날이긴 하다.
미국에 왔을 초기에는 생경한 문화가 신기하기도 했고, 혼자 있는 나를 여기저기에서 초대해 주셔서 미국 전통 추수감사절 음식을 얻어먹곤 했다. 그러다 땡스기빙데이를 보내는 횟수가 늘어감에 따라 딱히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문화 때문에 꼭 먹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어졌다.
나처럼 칠면조 구이를 많이 즐기지 않는 한국분들은 서로 칠면조를 이용한 다른 요리법들을 나누시곤 하는데 미역국을 끓이시기도 하고 죽을 끓이시기도 한단다. 요즘에는 칠면조 대신 칠면조와 가장 비슷한 치킨을 먹는 집도 많다. 그래서인지 한국 치킨집 전화가 불이 나는 날이기도 하다.
신혼 초기, 나도 칠면조보다는 치킨이라 치킨을 먹으면 되겠다 싶었다. 문제는 우리 집 남자가 치킨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한국에서도 가장 많은 가게가 치킨집이라 할 정도로 치킨을 좋아하는 치킨의 민족이 한국인인 줄 알았는데 어딜 가나 꼭 튀는 애 하나 있듯이 우리 집 남자는 치킨을 싫어한다. 어릴 적 소개팅하거나 데이트할 때 치킨을 먹자 한 여자는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정도였다고 하니 나도 한동안 치킨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제 결혼도 했고, 1년에 한 번이니 괜찮지 않을까? 나는 조심스레 물어본다.
“칠면조는 별로고 그래도 땡스기빙데이인데 한국인답게 치킨 어때?” 남편은 떨떠름한 표정이다가 이내 자신 때문에 치킨을 못 먹는 내가 불쌍했는지 “어느 치킨집?”하고 묻는다. 그리곤 처갓집, 바비큐치킨, 페리카나 등 전화를 돌린다. 계속 통화 중이란다.
‘먹기 싫어서 전화 연결 안 되는 척하는 거 아니야?’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아무래도 연결이 안 돼. 가서 주문하고 올게” 남편이 나간다.
한참을 지나도 오지 않던 남편이 한아름 장을 봐왔다. ‘그럼 그렇지, 올해도 그냥 작년처럼 라면이나 먹고 말자는 건가 싶었다. (그 전해 땡스기빙데이에는 여행을 갔다가 모든 레스토랑이 문을 닫아 편의점 라면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뭐야?” 내가 묻는다.
남편은 "사람 많아서 한참 기다려야 해. 일단 기다려봐”라고 한다.
잠시 후 기름냄새와 함께 타닥타닥 빗소리가 들린다. 알고 보니 남편이 직접 닭을 사 와서 치킨을 튀긴 것. 튀김옷을 입히고 바삭한 닭을 튀긴 것도 모자라 맛있는 양념으로 양념 치킨이 나왔다.
"자~ 먹어봐"
세상 맛있어 보이는 비주얼이다. 나는 얼른 시원한 맥주를 꺼내와 싸~악 비웠다. 첫 치킨을 시작으로 남편은 땡스기빙데이가 되면 튀김기를 꺼낸다. 마늘 치킨, 간장 치킨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나는 지금도 처갓집, 굽네, 이영자 치킨 등 유명한 어떤 치킨과 비교해 봐도 우리 남편 치킨이 가장 맛있다.
진수성찬 칠면조와 그레이비가 있는 전통 땡스기빙데이 디너가 없어도 남편이 해 준 치킨을 먹으니 이만하면 멋진 한국식 땡스기빙데이다. 올해는 어떤 새로운 치킨을 맛보게 될지 기다려지는 땡스기빙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