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간의 야매 재활일지
반깁스를 하고 일주일이 더 지났다.
병원 예약 날,
오른쪽 신발 한 짝을 달랑 들고 초음파실로 들어갔다.
"아, 오늘 깁스 풀 거 같아서 신발 가지고 오셨나봐요?"
"오늘 풀어야 해요."
단호하다 못해 결연한 내 말투에 순간 정적.
"... 앗, 하하하하"
그렇게 간호사 분과 함께 웃으며 기다리니,
의사 선생님이 등장했다.
"미세골절은 확실히 지난주보다도 좋아졌는데,
아주 약간 남아있긴 하네요.
인대도 확실히 좋아진 게 보여요.”
아… 그럼 어떻게?
나는 긴장되는 마른침을 삼켰다.
“깁스는 일단 풀죠.
대신 보호대는 최소 일주일 정도는 더 하고,
달리기는 한 달 이상 안 하는 게 좋겠어요.
재활 운동은 일단 아주 가볍게 아침저녁으로 발목 움직이기 정도만 하시고요.”
일단 드디어 깁스를 푼다는 사실에 기뻤다.
달리기... 는 금지당했으나,
나는 왕초보 트레일러너잖아!
상승고도가 높은 대회 코스에서는 뛸 일이 사실 거의 없으니, 괜찮지 않나?
아스팔트보다 폭신하기도 하잖아!
라며 일단 걱정보단 기쁨을 만끽했다.
그렇게 드디어 시작된 나만의 야매 재활,
일주일 이야기
금요일, 깁스 푼 당일
당장 뛰러 밖에 나가기가 어쩐지 좀 무서웠다.
그대로 하고 다니던 단단한 잠스트 보호대를 하고 다녔다.
평소처럼 일정을 소화하고,
틈이 날 때 헬스장에 가서 그동안 못했던 웨이트를 실컷 했다.
상체 운동을 할 때도
하체의 서포트가 필요하기 때문에,
혹시 몰라 2주간 아주 가벼운 운동만 했었다.
얼마나 답답했던지...
어깨 운동을 못해서 조바심이 났기 때문에,
한 시간 동안 어깨 운동만 했다.
웨이트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일단 즐거웠다.
자기 전에 누워서 천천히 발목을 움직여봤다.
통증이 심하진 않지만 뭔가 뻑뻑하다.
2주간 거의 움직이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겠지.
토요일, 대회까지 딱 일주일 전
단단한 보호대를 여전히 하고 일을 했다.
그리고 또 헬스장 방문.
사실 이날은 날씨가 좋아서 뒷산에라도 잠깐 가고 싶었지만,
어느새 여름이 끝나버려서 해도 짧아졌기 때문에
오후 5시를 조금 넘기니 나가기가 꺼려졌다.
야트막한 뒷산이라고 해도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면 굉장히 어둑해지더라.
몸 사려야지.
헬스장에서 등, 가슴 운동을 하고
사이클도 30분 살살 탔다.
계속 발목의 느낌을 체크해 보는데 나쁘지 않다.
이대로 차근차근, 좋았어.
일요일
일을 마치고 저녁 약속이 있어 중간 시간에 가볍게 집 앞 산책.
이때부터 부드러운 에이더 보호대로 바꿨다.
에이더 보호대는 단단한 플라스틱 없이 탄성이 좋은 밴드로 되어 있다.
뼈는 어느 정도 붙었으니,
이제는 가벼운 보호대만 하고 발목을 써봐야겠다.
산책길 중간에 계단이 있는데,
내려가면서 발목이 아래로 꺾이면 당기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통증은 아니다.
역시 한동안 쓰지 않아서 그런 거겠지 생각한다.
운동은 못했지만 하루 종일 만 보 가까이 걸었다.
그래도 발이 아프지는 않다. 좋은 징조이다.
월요일
갑작스러운 반깁스로 미뤄뒀던 드럼 레슨을 시작했다.
오른발로 베이스 페달을 밟는데, 힘이 잘 들어갈 리가 없다.
어차피 이것도 왕초보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라
살살 재활운동 하듯 밟는다.
여전히 보호대를 하고 있으니, 부자연스러운 느낌이다.
아니면 그냥 드럼을 오랜만에 쳐서 그런 건가.
점심 식사 후 일이 낮부터 몰아치는 날이어서
오늘도 운동은 패스.
퇴근하고 보니 발이 부어있는 것 같다.
발목을 쿠션에 올려두고 열심히 움직이다가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화요일
드디어!!
정말 오랜만에 점심시간에 짬을 내서 뒷산에 갔다.
둘레길을 3km 정도 천천히 걸었다.
지난번 산책 때 느껴진 발목 당김이 아직 있다.
특히 내려갈 때 주의해야겠다.
평소보다도 더 바닥을 유심히 보고 다니니,
여태까지 봤던 느낌이랑 사뭇 다른 무언가가 있다.
아, 밤송이!
뾰족뾰족 가시가 돋은 밤송이들이 잔뜩 떨어져 있다.
알맹이가 있나 살짝 발로 건드려보면서,
그 사이에 바뀐 계절을 실감한다.
고양이, 처음 보는 작고 귀여운 새, 청설모 등
귀여운 동물 친구들도 잔뜩 마주쳤다.
40분 정도 걷고 돌아오니,
기분도 좋고 발목도 좋았다.
저녁에 다시 일을 시작하려는데,
고질병이었던 왼쪽 허리가 아프다.
뛰지도 않고 걷기만 했는데!
발이 정상은 아닌 상태이니,
고관절 스트레칭과 워밍업을 더 잘하고 운동을 시작해야겠다.
수요일 그리고 목요일
수요일은 비가 왔다.
뛰고 싶었지만 헬스장에만 다녀왔다.
그다음 날은 날씨는 좋았지만,
일이 많아져서인지 컨디션이 좋지 않다.
운동을 쉬며 낮잠을 잤다.
휴식도 중요한 거야 암.
대신 빼놓지 않고 한 것은, 발목 움직이기.
누워서 쿠션에 오른쪽 다리를 올려두고,
발목을 까딱까딱 다양한 각도로 천천히 움직인다.
하루에 최소 50번. 이것만은 꼭 지킨다.
금요일, 대회 전날
시간 여유가 있어서 오전에 드럼 연습을 갔다.
보호대를 푼 상태에서의
베이스 페달을 밟는 감각이 궁금해서
결국 생 발목(?)으로 연습을 했다.
처음으로 하는 재활이 드럼 페달 밟기라니
뭔가 웃긴 상황에 혼자 실소가 터졌다.
그래도 오히려 감각이 살아나는 느낌이라 좋았다.
드럼 연습 후 곧바로 뒷산 달리기 가볍게 40분.
다시 에이더 보호대를 하고 갔다.
혹시 모르니까 끝까지 조심해야 한다.
아주 가벼운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라
어렵지 않은 길이지만,
평소보다는 조금 느리게 뛰었다.
가을 냄새와 시원하고 맑은 공기를 즐기며
오랜만에 뛰니 기분이 좋았다.
발목도 괜찮을까?
뛰는 동안엔 사실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살짝 뻐근하다.
대회 전날 뛴 거 잘한 일인가? 지금 내 상태에서?
약간은 걱정이 됐지만, 뭐 어쩌겠어.
그리고 대회장 근처 숙소까지
두 시간 반 정도 운전을 해서 이동했다.
오는 길에 약간 막히는 길이 있었는데
종아리 앞 근육(전경골근)에 쥐가 났다.
예전엔 꽤 있던 일이지만,
트레일러닝 시작하고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숙소에 와서 누워있으니 발목의 느낌이 좋진 않다.
오늘 푹 자고 일어나면 괜찮겠지.
저렴하게 구한 숙소라 엄마와 둘이 쓰기에
조금 좁긴 했지만,
어디서든 잘 자는 나니까.
일단 그렇게 잠을 청했다.
잠귀가 밝은 터라 밖에서 자면 늘 챙겨 오는
귀마개를 하고 금방 잠이 들었다.
그리고 한 30분쯤 지났을까.
“쿠어어엉! 드르르...”
??? 엥 이게 무슨 소리지?
귀마개를 뚫고 들어오는 천둥소리에 잠이 깼다.
이상하다. 비 예보는 없었는데... 아, 잠깐, 혹시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