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를 하다 발목을 다쳤다

유리몸은 서러워

by 시현


"반깁스 하셔야겠네요. 그리고 앞으로 또 다칠 거예요."



의사의 말이 끊임없이 내 귓가에서 맴돈다.

앞으로 또 다칠 거라니... 잔인하네.

아무리 해도 유리몸은 정말 유리몸이구나.


다른 건 다 그렇다 쳐도,

당장 이번 달 말에 엄마와 함께 나갈

두 번째 트레일 러닝 대회가 예정되어 있다.


이건 진짜 비상이다.





액션 연기 특기를 좀 더 다듬어보자는 마음으로

태권도장을 30년 만에 다시 찾아간 게

올해 4월 즈음이다.


아,

생각해 보니 트레일 러닝을 시작한 것과 비슷한 시기다.


액션 스쿨에서 프로필 영상 하나를 제작하기 위해

몇 개월간 열심히 합을 맞추어 연습을 하며,

몸을 단련해야겠다는 의지가 활활

불타오르던 때였나 보다.



집에서 멀지 않은 도장을 찾아

오전 성인반에 등록하여 주 3회 꾸준히 다녔다.


그리고 이제는 파란 띠까지 승급했고,

태극 6장까지는 어느 정도 외울 수 있었다.


내년 초에는 나도 태권도 유단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꿈은 컸다.





8월의 어느 아침,

며칠 동안 출장까지 가서 촬영하고 온

넷플릭스 영화의 티저가 드디어 공개되었다.


태권도장 갈 채비를 다 마치고

마지막으로 SNS를 한번 켰다가 발견한 것이다.


내가 어디 잠깐이라도 나오긴 나오려나?

어? 어 여기 내 손 나왔네!?



그 짧은 티저를 몇 번이고 돌려보며

나의 흔적을 찾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수업 10분 전.

지각이었다.


'아, 늦었는데 오늘은 그냥 가지 말까' 싶었지만,

곧 밤띠로의 승급 심사가 있을 예정이라

열심히 해야겠다 다짐하며 집을 나섰다.


그냥 그날 딱 눈감고 쉬었으면 괜찮았을까?



늦게 도착한 터라 몸도 제대로 풀지 못한 상태였다.

최근 필라테스도 안 하고,

상체 운동에 집중하느라 종아리 운동도 소홀했다.


주로 시간이 나는 한낮에는 덥다는 핑계로,

그리고 지쳐버리면 오후에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핑계로,

트레일 러닝도 거의 나가지 못했다.


그냥 뭐 아무튼 이것저것 모든 게 원인이었을 것이다.


상대방 없이 겨루기 스텝 연습을 가볍게 하는 중에

정말 말도 안 되게 백스텝을 밟다가 한순간


악!!!!

하고 오른쪽 발목을 잡고 그대로 뒤로 나뒹굴었다.





원래 난 발목이 웬만큼 옆으로 꺾여도

통증도 없고 다치지도 않았다.


발목 가동 범위가 타고나게 워낙 좋았다.


트레일 러닝 중에

옆으로 살짝 삐끗하며 꺾여도

금세 다시 멀쩡히 걸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백스텝 중에 꺾인 터라, 각도가 영 좋지 않았던 것이다.


관장님이 파스를 뿌려주셨다.

좀 괜찮은가 싶어서 일단 수업은 계속 들었다.

태권도 수업이 끝난 후,

바로 개인 레슨(내가 가르치는)이 있어서

세 시간 연달아 수업을 마치고 한의원에 갔다.

당연히 인대만 살짝 다쳤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담당하는 회원들이

관절이 꺾이는 사고를 당하면,

일단 영상 검사부터 하고 나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꼭 정형외과부터 다녀오라고 얘기한다.


근데 참, 내가 뭐에 홀렸던 걸까.


엑스레이도 초음파도 없이

일주일 넘게 한의원 치료만 받았다.

약침 치료도 병행해서인지 통증은 거의 없었지만,

복숭아뼈 주변 부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이건 좀 뭔가 이상했다.


몇 시간의 검색으로

믿을만해 보이는 주변 정형외과를 찾았고,

그곳에서 결국 그 이야기를 들었다.





"인대 부분 파열뿐만 아니라 미세골절도 있네요.

반깁스 하셔야겠어요.

그리고 선천적으로 인대가 과하게 유연해서

앞으로 또 다치기 쉬울 거예요."


최악이다.



이제 날도 선선해지는데,

너무 뛰고 싶은데,

엄마와 대회도 나가야 하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평소에 웹툰을 즐겨보는데,

생활툰 작가들이 소재가 떨어질 것을 걱정하다가

드라마틱한 일이 생기면 설령 좋지 않은 일일지라도

"소재가 생겼다"며 기뻐하는 걸 보며

웹툰 작가도 참 힘들겠다고 생각했는데.

브런치 연재 중인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기가 막힌 노릇이다.



반깁스를 하고 태권도는 강제 휴회.

그리고 간간히 타던 러닝머신은커녕,

실내 사이클도 타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지금 당장 중요한 건 뼈의 회복이다.


뼈가 제대로 붙지 않으면

이번 대회는 완전 무산이다.





일할 때는 업무의 특성상 반깁스를 할 수 없어서

가장 강한 강도의 발목 보호대를 샀고,

이동할 때는 항상 반깁스를 착용했다.


그러다 어느날은 너무 답답해서

반깁스를 한 채로 헬스장에 갔다.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코어 운동, 다리 들고 벤치 프레스, 풀업 머신 등

평소에 잘 안 하던 운동과

각종 변형 동작들로 뛰지 못하는 설움을 달랬다.



그리고 약속한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병원을 찾았다.


초음파를 다시 보았다.

두근두근… 제발 반깁스 좀 풀게 해 주세요.



"미세 골절도 인대 파열도 많이 좋아졌네요.

근데 반깁스는 일주일 더 해봅시다."


일주일이요? 일주일... 와... 일주일이라니


일주일 후 반깁스를 풀게 되면

이제 대회까지 또 일주일이 남는다.


그 7일 동안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과연 이 유리몸으로,

난 엄마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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