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걷기가 두렵지 않다

자동 만보계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아!

by 시현


나는 발이 짝짝이다.


좌우 대칭이 정확하게 5:5로 맞는 사람이,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에 얼마나 있겠냐만은.

나는 2차 성징이 오기 전부터 유독 오른발에 말썽이 많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와 함께 배우기 시작한 수영은

두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오른발에 쥐가 나곤 했다.

그러면 나는 레인 한가운데 멈춰 서서

왼발로 깽깽이를 뛰며

오른발을 꾹 눌러 응급처치를 했다.


선생님한테 말해봐도 별 소용이 없었다.

하긴 그 시절에 관련 지식이 풍부한

동네 어린이 수영 강사가 얼마나 있었을까.


결국 배영까지만 배우고 난 수영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수영을 그만둔 다음에도 오른발은 여전히 말썽이었다.

특히 밤에 심했다.

잘 자다가도 갑자기 오른쪽 발가락이 서로 베베 꼬이면서 고통스럽게 잠에서 깨는 일이 많았고,

어떤 날은 종아리까지 쥐가 나기도 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안 사실이지만,

나는 오른발만 평발이었다.

아주 심하면 부모님이 눈치를 채셨을 텐데,

20대 초반에는 전문 병원에서 검사도 받아봤지만

그 정도가 아주 심하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증상은 분명했다.

관리하지 않으면 평생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

태어난 것은 사실이었다.


웃프지만, 내 발은 만보계로 통했다.


한참 여기저기 핫플을 찾아다니던 시절,

성수동에만 가면 왜 맛집들이

그렇게 다 멀리 떨어져 있는지...


걷다 보면 어느새 오른발과 종아리가 신호를 보내왔다.


야, 이제 만보 다 됐어. 그만 걸어!



뭔가 발이 피로한 게 느껴진다 싶을 때,

걸음수를 확인해 보면 여지없이 만보에 가까웠다.

그럼 이제 그날은 끝.


잠시 카페에 앉아있어도

회복이 금방 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일정은 강제 종료되었다.


성수역의 뛰지맙시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무렵,

자다가 쥐가 나서 깨는 일은 크게 줄어들었다.


아마도 카프레이즈를 포함한

각종 강도 높은 하체 운동이

내 발과 종아리를 단련시켜 주었기 때문이리라.


필라테스도 마찬가지였다.

웨이트 트레이닝에서 부족한 부분을

풋워크, 아킬레스 스트레치 등의

발목 움직임으로 어느 정도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발은 여전히 만보계였다.



특히 속상했던 건,

큰 비용과 시간을 들여 떠난 해외여행에서였다.


많이 걸은 만큼 많은 경험을 하게 되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발이 발목을 잡았다.


시간이 아까워서 조금 무리라도 하는 날이면,

아무리 마사지를 해도

다음날 회복이 충분히 되지 않아

일정을 즐겁게 소화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이제 진짜 더 이상 유산소 운동,

특히 러닝을 외면할 수 없는 타이밍이 날 찾아왔다.

뒤늦게라도 찾은 배우라는 꿈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기 위해서는

러닝을 해야 했다.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포장도로 달리기보다 더 흥미로운

트레일 러닝이라는 걸 만나고,

그야말로 나는 신세계를 경험했다.


일단 죄책감 없이

걷뛰(걷다 뛰다를 반복)하는 것이 가능했다.


누구도 오르막을 쉼 없이 뛰어올라갈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일반적인 러닝에 비해

기록의 경신보다는

완주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남들과 싸우고 경쟁하는 스포츠에 지쳐있던 터라

(테니스를 아주 열정적으로 치던 시기가 있었다)

남이 아닌 스스로와의 경쟁을 한다는 부분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평지가 아닌 울퉁불퉁한 지형을 달리니

잡생각을 할 겨를이 없이,

온전히 “지금” 내가 서있는 곳과

앞으로” 내가 딛고 나아가야 할 곳에만

집중을 할 수 있었다.


운동 강사 일과 겸해서

배우 일도 시작하게 되면서

마치 나의 자아가 여러 갈래로 분산되는 것 같은,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상태가

가끔 나를 찾아오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는데,


트레일 러닝을 하러 나가면 그 모든 것들은 의미가 없어졌다.


나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여기서 숨을 쉬고 있다.



그렇게 트레일 러닝과 금방 사랑에 빠졌다.

초반에는 이렇게 멘탈 관리 측면에서의 매력에 아주 깊이 빠져있었던 것 같다.


그동안 내 발이 어떻게 바뀌어가는지도 모른 채로!





바로 그 울퉁불퉁한 지형과

오르막과 내리막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부분이

나의 발을 적극적으로 깨우기 시작했다.


발바닥, 발가락, 발목, 나의 종아리는

산길에 차근차근 적응하면서

아주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통제된 상황에서 종아리 근육을 사용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건 정말 실전이기 때문이다.



이 신세계를 처음 온전히 체감하게 된 것은

강서 둘레길을 처음 뛰고 온 날인 걸로 기억한다.


뒷산에서 가볍게 뛰어다닌 지

대략 2주 정도 지났을 무렵,


좀 더 재밌게 새로운 곳을 가보고 싶어

강서 둘레길 여정을 계획했고, 총거리가 8km 정도였다.


이 정도 거리는 처음인데 괜찮나? 싶다가도

20km 대회도 신청했는데 이 정도는 가보자! 생각하며

용기 내서 홀로 씩씩하게 다녀왔다.


집에 돌아와 운동 앱을 확인해 보니 만 보 이상을 걸었다.


게다가 오고 가는 동안 따릉이를 이용했기 때문에

약 3시간을 쉬지 않고 유산소 운동을 한 셈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별로 피곤하지 않았다.


??? 이게... 뭐지...?



생각보다 많이 피곤하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사우나에 가서 쉴 필요가 없어진 나는,

집안일을 하고 장을 보고 저녁을 만들며

아주 알찬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만큼 걷고도 발이 멀쩡하다니


여태 “발이 피곤하다, 종아리가 아프다” 말하면,


“운동한다는 애가 왜 그래?”

“더 다니기 귀찮아서 핑계 대는 거 아냐?”


같은 오해를 사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내심

다들 이 정도는 아픈데 참고 다니는 건가? 내 마음가짐의 문제인가?

라는 생각까지 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기능이 개선되는 것을 느끼니,

그동안 러닝을 외면해 왔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아, 그때 트레일 러닝 딱 두 달만하고 이탈리아 다녀올걸.



이제는 성수동도,

아니 유럽 어디를 가도 두렵지가 않다.

오히려 트레킹 코스가 있는 여행지를 찾기도 한다.


그래서 내 발의 모양이 정상적으로 변했냐고?

선천적인 구조의 변화는

아무리 운동을 하더라도

웬만해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내 오른발이 증명해주고 있다.


여전히 왼발에 비해 두껍고, 아치는 무너져있다.

그리고 여전히 습관처럼 발이 편한 신발을 찾는다.





한계는 분명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내게 이런 오른발이 주어진 것처럼,

모두에게 “이미 주어진” 상황은 다 다를 것이다.

그건 어떻게 해서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그 한계를 인정하면,

그 안에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

그 성장은 결국

한계를 느끼고 주저앉아버리는 것과는 크게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트레일 러닝은 이렇게 또 나를 성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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