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의 트레일러닝 20km 첫 대회 출전 (하)

60대 엄마의 맨발 투혼

by 시현

대회 당일이 되었다.


스타트 라인에서 출발해야 하는 시간은 9시 20분.

계획대로 6시 즈음 일어나서,

루틴대로 드립 커피 한잔에 아침까지 잘 먹고

옷을 단단히 챙겨 입었다.


지난밤에 방수 스프레이를 잔뜩 뿌려둔 바람막이도

돌돌 말아서 트레일러닝 조끼 뒷주머니에 넣어두었다.


빵트레일런답게

중간 보급소 역할을 하는

CP(Check Point)가 많은 편이라,

에너지젤을 조금만 가져갈까 싶었지만

아냐 혹시 몰라! 하면서 엄마와 내 것을 각각 3개씩 챙겼다.


나중에 뛰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CP에서 제공하는 에너지젤은

인원수대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두 번째 그룹으로 출발한 엄마와 나는

구경도 못해봤다는 슬픈 사실...

결국 많이 챙겨가길 잘했다.





어제 문 닫기 직전인 약국을 찾아내서

엄마의 몸살 약을 사 왔지만,

몸살 기운이 그렇게 하룻밤만에 좋아질리는 없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어쩔 거야. 해봐야지.


시간적 여유가 있을 것 같아서,

티셔츠와 배번표를 받아서 다시 숙소에 들어왔다.


그래도 첫 대회인데 엄마랑 같이 티셔츠도 입고

배번표도 예쁘게 달고 싶었다.


이후 체크아웃을 위해 짐을 챙기고

엄마도 챙기고(?) 하다 보니

결국은 출발 시간이 거의 다 되어 현장에 도착했다.



놓칠 수 없는 인증사진을 가볍게 남기고,

출발선에 섰다.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있는 데다

비가 아직도 조금씩은 오고 있어서

정말 정신이 없었다.


몸살 기운에 그대로 비를 맞을 수는 없던 엄마는

출발선에서 우산도 쓰고 있었다...

"어라, 그러니까...

이게 나의 역사적인 첫 대회의 시작인가?"

하는 감상을 느낄 새도 없이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다.


3, 2, 1 출발!!





도로를 지나 산 입구에 들어서서

5분 정도 올라갔을까,


"딸, 잠깐만..."


정말 갑자기 엄마가 그야말로 퍼져버렸다.


역시 몸살에 비까지 맞으면서 대회에 나가는 건 무리였나.


그때 엄마가 매고 있는 등산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내가 대회 최적화를 위해 고심하여 고른 살로몬 트레일 러닝 조끼...

따위가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엄마랑 같이 가야 해!!!


엄마의 등산 가방을 기어코 뺏어서 둘러맸다.

꽤 묵직했다.

알고 보니 평소 등산 습관처럼 갈아입을 옷 같은 것들을 챙긴 것이다.


그렇게 나는 홀로 트레일런이 아닌 행군을 시작했다.




백팩을 나에게 넘긴 엄마는 이후

내가 챙겨 온 에너지젤을 흡입하고

자연의 정기를 받으면서,

갑자기 부스터가 달린 것처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첫 번째 CP에 도착하자 먹을 것들이 잔뜩 있었고,

삼삼오오 모여서 마치 이미 러닝을 끝내고

간식 타임을 가지는 듯한 사람들이 많았다.


'오, 우리도 잠깐 쉬어가나?'

엄마의 눈치를 살짝 봤으나,

오우… 아직 부스터가 작동 중이었다.

엄마는 잠깐도 멈출 의향이 전혀 없었다.


방울토마토 몇 알과 음료 하나만 챙기고

훌쩍 출발해 버리는 엄마가

나에게서 점점 멀어지자,


뭘 먹지 고르던 나는 겨우 샌드위치 하나를 집어 들고

우적우적 씹으면서 열심히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두 번째 CP에 가는 길목,

그 어디에서였던 것 같다.


열심히 모든 이들을 앞질러가던 엄마가

조금씩 지쳐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 몫의 에너지젤까지 다 소진했다.


그러다 정말 한순간

엄마는 발목을 아주 살짝 삐끗했다.


발목 골절은 아니었지만,

순간적으로 발바닥과 종아리가 긴장되었던 것 같다.


몇 미터 가다가 발목을 돌리고,

조금 또 가다가 주저앉아 종아리를 풀고,

자꾸 서는 횟수가 늘어가기 시작했다.


겨우 도착한 두 번째 CP에서는

뿌리는 파스로 나름의 응급처치를 했지만,

그 파스마저 금세 동이 나서 충분하지 않았다.

(이후로도 메디컬 지원이 매우 부족했다.)


결국 세 번째 CP에 가기 전,

엄마는 신발을 벗고 주저앉았다.



내가 운동 강사 짬밥이 몇 년인데, 얼른 해결하고 같이 꼭 완주해야지!


가방과 조끼를 탈탈 털어서

이온음료와 에너지원이 될만한

단당류 간식을 엄마 입에 넣으면서,

발과 종아리 마사지를 계속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스텝 한 분이 올라오며 이 길에는 이제 우리가

마지막 주자라고 한다.


아, 나 이렇게 첫 대회에서 꼴등도 해보는구나.


이 정도 부상으로 그곳에서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일단 마지막 CP까지 천천히 이동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신발을 신으려고 발에 힘을 주면

바로 다시 쥐가 나서,

엄마는 결국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흙길, 자갈길, 돌길...


양손에 신발을 한 짝씩 들고,

엄마는 그 길을 맨발로 힘껏 걸어갔다.


그리고 나는,

여기 조심해. 천천히 가도 돼.

라고 차분히 얘기하면서

엄마의 뒤를 따랐다.


그 와중에 미소까지 보이는 여유




드디어 도착한 마지막 CP.


약속한 메디컬 지원...

이라고 해봤자 뿌리는 파스가 전부인데,

커뮤니케이션 오류로 준비가 되지 않았단다.


파스를 뿌려본 다음, 조금 휴식을 취하고

다시 출발하려고 했던 엄마는 잠시 고민 끝에


"딸, 이제 혼자 가! 맘껏 뛰어서 가!"라고 외치며

결국 중도포기를 하였다.


DNF(Did Not Finish)라고 부르는 이 중도포기는

CP에서 가능하며,

스텝에게 기록칩을 반납하고 정해진 방법으로

도착지점으로 갈 수 있게 된다.


마지막 CP에서 내려가는 방법은 곤돌라.

그렇게 엄마는 관광객처럼 곤돌라를 타러 갔고,

나는 남은 구간을 혼자 가게 되었다.


이제 엄마의 등산 가방은 엄마에게 다시 넘기고,

꽤나 가벼운 상태가 되어 마지막 구간을 달렸다.

손오공이 거북이 등껍질을 벗으면서 이런 느낌이었을까.


몸이 갑자기 가벼워져서일까, 다운힐이 대부분이어서일까.

출발한 지 네 시간이 훌쩍 넘었는데도

아직 체력이 남아있는 느낌이었다.


기록을 보면 최대 페이스가 5'04로 찍혀있는데

그게 아마 이때였나 보다.


열심히 달려오다 보니 꽤 여럿을 추월하며

이제 나는 더 이상 꼴찌가 아니게 되었다.


그렇게 마지막 구간을 지나,

엄마와 함께 들어오고 싶었던 결승선을 혼자 넘었다.


완주의 기쁨을 만끽할 새도 없이,

눈에 불을 켜고 엄마를 찾았다.

이제 괜찮나? 몸살 더 심해졌으면 어쩌지.


저 멀리 구석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혼자 쉬고 있는 엄마를 찾았다.


다행히 이제 쥐 난 것도 가라앉고,

오히려 아침보다 더 건강해진 모습이었다.


역시 산에 오니 병이 다 낫는다며 너스레를 떠는 엄마.

그래, 같이 완주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우리 별 탈 없이 끝났으니 즐기자.


참가들에게 나눠주는 간식을 받아,

인공 잔디밭에 앉아서 엄마와 함께 먹었다.


스키장에서 쓰는 제설기로 물을 뿌려주니,

워터밤이 따로 없었다.


그땐 여러모로 정신이 없어 잘 몰랐는데,

지금 떠올려보니 꽤나 낭만 넘치는 순간이다.





엄마와 나, 합쳐서 100세가 넘는 나이.

이제 더 이상 적지 않은 나이의 모녀이지만, 드디어

이라는 공통 취미가 맞아떨어진 순간이다.


나의 산행은 이제 시작이지만,

엄마의 산행은 점점 예전과 같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할 수 있는 한, 엄마와 함께 하는 소중한 순간들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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