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5월.
내 인생을 바꿔놓은 장본인이었던,
영주 언니가 돌아왔다!
마치, 내가 대학교 2학년 꼬맹이 였을 때.
대동제를 촬영하러 학교에 왔을 때처럼-
꼭 그런 모습으로! 2년 만에!! 말이다.
이번에도, 아르바이트로-
대동제를 촬영해주기 위해서, 였는데..
이제는, 우리가 총학생회 집행부였던 고로-
내가 영주 언니를 고용했던 것이라 하겠다. ㅋㅋ
그 2년 사이에.. 영주 언니는,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이라는-
국제 매춘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완성했고..
“푸른 영상” 으로부터 독립했으며..
1993년 6월에, “기록영화제작소 보임”
이라는.. 작은 회사를 설립했다고 했다.
(당시에는, 한국의 독립 다큐멘터리인
기록 영화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사전 검열 제도로 인한 심의 문제로,
대중들에게 영화를 보여주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웠던 시절이었기에..
그런 상황들을 극복하고, 어떻게든-
보여질 수 있는! 공식적으로 상영되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보이다’ 의 명사형인 "보임"이라고,
회사의 이름을 정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영주 언니는 앞으로-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2>
다큐멘터리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는데..
처음, 김학순 할머니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증언하는 뉴스를 보고,
그 모습이 내내.. 뇌리에 남아 있던 차에..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을 촬영할 때-
제주도에서 인터뷰를 했던, 한 매매춘 여성이..
“우리 엄마가 왜정 때,
만주에 계셨대. 정신대로...”
이 말에 엄청난 충격을 받으면서..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 대를 이어-
착취와 폭력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수많은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연작으로-
꼭!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 작품이, 나중에.. <낮은 목소리 :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2> 가 된다.)
그 때, 나는 총학생회에서-
재정 사업과 “여성국”을 담당하고 있었기에..
마침. 내가 기획하고 있던 다양한 사업들과,
영주 언니가 하려고 하는 영화 작업이-
너무나도 딱! 맞게, 잘 매칭이 되기도 해서..
이 때부터,
우리는 꿍짝-!! 이 제대로 맞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는 전혀 뜻하지 않은(?!) 길로..
조금씩-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게 되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