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경 할머니의 투병을 기록하다!

by 황마담


우리가 사랑했던 강덕경 할머니가

'폐암 말기' 선고를 받으셨던 당시에..


서울 아산병원에서는, 너무나 감사하게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의료 지원을 해주고 있었기에..


강덕경 할머니도 다행히!! 아산 병원에,

입원을 해서, 항암 치료를 받게 되셨고..


(우리의 촬영까지 고려해서 였는지..
2인실을 단독으로 사용하게 해주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할머니의 투병을 기록하기 위한 “촬영” 뿐 아니라-

보호자가 없는 할머니를 “간병” 하기 위해서..


스탭 전원이 미리 짜둔 시간표에 따라,

로테이션으로 24시간 내내-

할머니의 병실을 지키게 되었다.


(나눔의 집이나 외부로 촬영을 갈 때에도,
꼭! 한 명은 할머니의 병실에 남아 있었다.)


그 때,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가까이서

말기 암 환자를 간병하는 것은 "처음" 이었는데..


그래서, 가끔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어쩔 줄 몰라서, 엄청나게 당황만 했던 일들과,

좌충우돌. 실수도 많았던.. 기억이 난다.


(그 덕에, 집에 있더라도..
거의 24시간 근무 체제나 마찬가지였다.
언제, 무슨 연락이 올지 몰랐으니까;;;)


그러면 또 할머니는,

우리에게 많이도 미안하셨던지..


고통스러웠던 상황을 희화화(?!) 하시면서,

웃음을 주기까지 하셨던.. 기억도 난다.





강덕경 할머니는 투병을 하시면서도-

바깥에 있는 다른 할머니들의 소식과,

수요 시위 소식 등을 무척이나 궁금해 하셨는데..


가끔, 다른 할머니들이 병문안을 오시기라도 하면,

전혀 아픈 기색 없이-

밝고 꼿꼿하게! 웃으면서 맞으셨고..


위안소에서부터 지금까지,
그 지독하고 모진 세월도 다 버티고 살아냈는데..
일본 정부의 제대로 된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기 전까지는, 절대로 안 죽을 거라고!
이까짓 암 따위, 반드시 싸워서 이겨내시겠다고!!


그렇게.. 호언장담까지 하기도 하셨다.




하지만, 누구보다 강인했던(!!) 할머니라도,

그 작고 여린 체구로 암과의 사투에서

버텨내는 것조차, 역부족에 무리였으니..


나중에는 식사도 거의 못 하시고,

정신을 차리지도 못하실 때가 많았는데..


(그 와중에도, 우리 엄마가 묽게 끓여주신,
"닭죽"을 너무 좋아하셔서.. 어떻게든,
그거라도 좀 드시게 하고 싶은 마음에-
엄마를 졸라서, 매일 같이 닭죽을 공수해
날랐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점점..

서서히 무너져가는 할머니의 모습을,

가까이서-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우리는..


너무 마음이 아프고 힘들어서,

때로는, 도망치고 싶은 마음까지 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절대! 멈출 수는 없었다.


“할머니의 최후를 끝까지 기록하는 것!”


그것이 할머니의 “마지막 명령” 이었고,

우리는 그저, “충성!” 하고 따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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