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할머니의 이야기와 남기신 그림들!

by 황마담
故 김순덕 할머니 (1921~2004)




김순덕 할머니는, 경남 의령 출신으로-


아버지가 일본 순사에게 모진 매를 맞고 와서,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오빠 둘, 언니, 여동생까지-

모두 다섯 명의 자식을 홀로 건사하며,

어려운 생활을 꾸려나가던 중..


“일본 공장에서 일할 여공을 모집한다.”

라는, 조선인 남자의 말에 속아..


17세에, 언니와 여동생을 대신해서-

공장에 돈 벌러, 일본 나가사키로 넘어간 뒤..

다시, 중국 난징(南京) 으로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강요 당했다고 한다.




도망을 치고 싶어도,

낯선 나라에서, 어디가 어딘지를 몰라서-

도저히 도망을 칠 수가 없었고..


위안부 생활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강물에 뛰어들려고도 하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보려고도 했지만,

차마- 실행을 하지는 못했던 할머니는..


3년간 위안부로 있다가, 20살에..

한 일본 군인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


다행히,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막상 집에 와보니, 사는 것도 너무 가난하고..


왠지, 이웃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수군거리는 것만 같은 느낌에, 속앓이만 하다가..


서울로 올라와서,

식모살이와 가방 공장 등에서 일을 하던 중에..


철도청 노동자였던 남편과 만나,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고 살았는데..

딸은 6.25 때 잃었고, 남편마저도 숨진 뒤-

위안부 생활에서 얻게 된 방광염, 자궁병,

정신 불안 등.. 많은 병으로 고통을 겪으시다가..


93년에, 수요 시위에 합류 하시면서..

나눔의 집으로 오게 되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지난 50여 년간-
가족 모두에게도 꽁꽁- 비밀로 해왔던,
위안부였다는.. 과거를 밝히는 과정에서..
자식들이 크게 실망을 하는 바람에.. 또 다른,
가족사적인 아픔을 겪기도 하셨다. ㅠㅠ)





김순덕 할머니는, 나눔의 집에서 사시는 동안-

텃밭을 가꾸는 ‘농장 반장’ 이기도 하셨는데..


다시는, 당신들이 겪었던 치욕스러운-

과거가 되풀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에서,

수요시위에도 지속적으로 나가시고..


가슴 아픈 증언과 그림 전시 등도,

아주 적극적으로! 활발하게!! 하셨는데..

2004년 6월 30일에,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신 뒤.. 끝내- 일어나지 못하셨다.





김순덕 할머니가 남기신 그림은..
다음과 같다.


<끌려가는 날>




<못다 핀 꽃>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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