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2월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보금자리인,
"나눔의 집" 이 경기도 광주의 퇴촌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처음, 퇴촌으로 이사를 했을 때-
솔직히 나는, 너무 화가 나고 슬펐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의 후원으로,
새로운 건물을 신축하게 되면서-
할머니들이 세를 사는 설움(?!) 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었지만..
그때만 해도,
퇴촌은 너무 외딴 시골이었던 데다가..
(인근에, 정말 아무 것도 없어서..
완전 허허벌판에, 첩첩산중의 느낌이었다;;;)
공사가 완전히 끝나지도 않았던 상황에,
교통도 너무 불편했기에..
(우리가 차가 없었기에 더욱 그러했으리라;;;)
그런 산골 오지에-
할머니들을 따로 격리 시키는 것 같은,
묘한 느낌(?!) 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머지않아-
나의 이런 염려가 얼마나 짧은 생각이었는지를..
우리의 강인한! 할머니들은,
스스로 멋지게 증명!! 해내고 마셨으니..
그 곳에서 할머니들은..
텃밭을 만들어서 채소를 심고, 닭을 치며,
평화로운 전원생활을 즐기셨던 것이다^^
비록 <낮은 목소리2> 작업이,
강덕경 할머니 때문에 다시 시작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다른 할머니들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새로 이사한 퇴촌의 “나눔의 집”에서,
할머니들이 스스로 농사를 짓고, 추수를 하고..
재배한 농작물로 음식을 만들어 드시면서,
서로 다독이고, 때로는 투닥거리는-
소소한 일상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일상을 통해, 상처를 딛고 담담하게 살아가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데..
(할머니들도, 당신들이 후원금을 받아서
편안하게만(?!)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농사하는 모습을,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셨다.)
세상의 여느 할머니들과 다르지 않은,
그런 일상의 모습 속에서도..
역사의 아픈 흔적과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은,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할머니들의 슬픔은, 그 격렬함을 거둔 대신..
습관적으로, "일상화" 되어버린 것이었다.
<낮은 목소리1>에 비해,
<낮은 목소리2>에서는..
모든 할머니들이 훨씬 적극적으로!!
영화 작업에 참여를 하셨는데..
전작을 통해, 당신들의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었던 쾌감과!!
영화라는 매체의 힘을,
이미 한번 경험한 덕분이었는지..
할머니들은 영화의 내용과 방향에 대해..
아주 적극적으로! 당신들의 의견을 개진하셨고!!
또 한편으로는, 할머니들 스스로가-
카메라를 완전히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들과 친숙해지시면서..
마치 당시의 카메라가, 지금의 sns 처럼..
생전 경험해보지 못했던 ‘해방구’ 가 된 것처럼..
그렇게, 아주 수다스러운 여학생들 마냥-
할머니들이 당신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드러내게 되었던 것이다.
한번은, 할머니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시냐고.."
그 때 할머니들의 대답은,
듣는 우리의 눈시울을 젖게 만들었는데..
할머니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평범하고 소박한 여인네의 삶을 꿈꾸면서도..
의외로, 나라를 지키는 군인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하셨다.
이는, 나라가 힘이 없을 때-
그 나라의 국민이 어떻게 유린되는지를..
누구보다 처절하게 경험했기에,
그래서 나올 수 있는 대답이었으리라...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