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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제 1회 PIFF를 치를 때..
(P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나중에 Busan - BIFF로 바뀌었는데,
내가 일했을 당시에는 PIFF였으므로..
여기에는 그 명칭으로 기록 하겠다.)
나는 기록영화제작소 보임을 그만두고 훌쩍-
떠나서, 두 달 간의 유럽 배낭 여행 중이었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97년.
영화 <넘버 3> 작업을 끝내고,
극장에서도 완전히 종영을 할 무렵.
대학 선배인 동미 언니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게 되었다.
혹시 한 서너달 정도.
부산영화제에서 일 안 해볼래?
한국 독립영화의 뿌리인 "서울영상집단"
출신이기도 했던, 동미 언니는..
영화제의 시작부터 함께 해서,
초청팀장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마침, 한국 초청을 담당할
단기 스탭을 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재밌을 것 같긴 한데..
회사에 한번 물어볼게요!
하고는 바로, 대표님께 상의를 드렸더니..
좋은 경험이 되겠네. 무조건 갔다 와!!
예썰~~~!!!!
그 길로, 짐을 싸서 부산으로 출발!!
정말 일사천리, PIFF 스탭으로 투입이 되었는데..
그게 얼마나 엄청난 고생길의 시작이었는지-
깨닫기 까지는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ㅋ
그 고생길의 서막은.. 다음 편을 기대하시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