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꽈리 꽃
1-1
나는 그때 또 부활했다. 신 보다 더 많은 죽음과 부활을 반복했다. 죽음과 부활을 도와준 사람은 당연히 가족이다. 내가 그들에게는 아마도 종교적인 의미인 듯하다.
나의 손을 잡고, 나의 어깨를 흔들며, 나를 위해 눈물 흘리고 나를 위해 피를 나누었다. 내 속의 그들의 피가 섞인 것을 생각하니 속이 메스껍고 눈알이 뒤집혔다.
그렇다, 나는 이번에도 살아남았다.
20년 만에 나는 한국으로 돌아간다. 괴물 같은 얼굴의 나를 보고도 그들은 참 밝게도 웃었다. 승무원이 닫아 버린 창문 덮개를 스스로 올리며 말했다.
“손님, 곧 목적지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나는 말했다.
“그거 안 됐군”
승무원이 동그랗게 허리를 말고 고개를 내게 내밀며 말했다.
“네?”
예상했던 모습에 나는 재미가 없어졌다. 승무원은 분명 나의 시계를 내려 보았다. 그리고 다시 말을 걸었다.
“불편하신 게 있으시면…”
나의 눈두덩이 상처가 간질거렸다.
“없습니다.”
승무원이 다시 짧게 대답했지만 그 목소리는 내 귀에 닿지 않았다.
입국장에 다다르자 그들의 냄새, 한국의 냄새가 났다. 나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있는 남자가 내게 손짓했다. 남자의 목소리가 내 귀에 닿지 않았지만 나는 그를 뒤따랐다.
표현할 수 없는 고약한 그들의 냄새에 눈두덩이 상처가 자꾸 움찔거렸다.
“호텔까지는 한 시간이 넘는 거리입니다 잠시 눈을 붙이시죠”
“창문 좀 열어 주십시오”
기사는 말없이 뒷좌석 창문을 빠르게 내렸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냄새를 토해내듯 입을 크게 벌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새어버린 남자, 다행히 이 사람에게는 그들의 냄새가 배어 있지 않았다.
나는 기사의 뒤통수를 보며 물었다.
“언제까지 할 셈입니까?”
기사는 백 밀러로 나의 상처 난 눈두덩이를 흘긋했다.
“아직 할 만합니다.”
20년 만에 만난 이 남자는 표정 하나 늙지 않았다. 다만 머리카락은 숨길 수가 없는 노릇이다.
나는 또 그 말을 뱉었다.
“그것 참 안 됐군”
기사는 알 만하다,라는 표정을 지으며 아스팔트를 응시했다.
나는 다시 말했다.
“아직 할 만한데 기사 꼴이라니”
능구렁이 같은 기사는 나의 말에 머리카락 한 가닥, 움찔하지 않았다. 내 속에 섞인 그들의 피가 들끓어 기사의 뒤통수를 내리치고 싶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이곳에 온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은 것을”
나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마치 꽈리 꽃이 열매를 감싸 듯, 괴물 같은 얼굴을 수줍어하며 미소를 쏟아냈다.
1-2
내가 그녀를 처음 본 그날, 그녀의 반짝거리는 긴 머리카락, 눈동자 속에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액체를 머금고 있었고 새하얀 목덜미는 그녀가 침을 삼킬 때마다 마치 그곳에 심장이 들어있지는 않을까,라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모니터 속 그녀는 정말 살아 움직였으며 그곳을 뚫고 나와 내게 갈구했다. 그녀는 그때 정말 나를 사랑했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의 열다섯 살, 그 해 나의 뇌는 지금까지 멈추어 있다.
절대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 나는 거짓말을 입에 달고 얼굴에 달고 아니 나의 온몸 전체에 거짓을 바르고 또 발랐다.
그녀를 차지해야 했던 나는 가장 먼저 필요했던 아버지의 비밀 노트를 훔치는 것이었고, 깊은 밤 나는 그녀를 처음 보았던 컴퓨터 속으로 가기 위해 그 비밀 노트를 차지하고 말았다. 비밀 노트 속에는 내게 필요했던 모든 열쇠들이 가득 들어 있었고, 내가 그것을 훔쳤다는 것을 아버지가 알아차린다 해도 그는 내게 힘을 과시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굳게 믿었다.
왜냐면, 불안정한 아버지와 어머니 관계에 그 비밀 노트는 영원한 비밀이어야만 했다.
나는 아주 빠르게 노트의 열쇠를 모니터와 맞추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분 후,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의 입술이 무어라 말했지만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고 마치 곧 공중으로 공기가 되어 사라질 것 같은 그녀를 나는 꼭 붙잡아 두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의 비밀 노트는 역량을 발휘했다. 모니터 속의 그녀가 말하는 숫자가 커질 때마다 그녀의 목소리, 한 단어, 그리고 두 단어가 들리기 시작했고, 그녀의 새하얀 모든 것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에게 그녀는 환상도 꿈도 아닌 현실이었다.
온몸이 거짓으로 감싸고 있던 나는 학교도 가지 않았고 먹지도 않았으며 모두가 잠들어 있는 그 시간 아버지의 비밀 노트를 복사한 꾸러미를 품에 안고 매일 같이 그녀를 찾았다.
나는 정말 그녀를 사랑했다. 온전히 나만 바라봐 주는, 나를 천국으로 데려가 주는 그녀를 정말 사랑했다.
나의 엘프를.
나의 거짓말은 영원하지 않았다. 나의 모든 것이 갈기갈기 찢어질 일들이 기다렸다. 하지만 난 겁나지 않았다. 그녀와 함께 할 수 있다면 모멸감 정도도 나는 감사했다.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나를 쳐다보는 인간들의 시선은 마치 내가 사형수 라도 되는 것처럼 쉬쉬거리며 킁킁거렸다.
썩은 내라도 났을까?
담임선생은 내가 필요했기 때문에 나를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선생은 나와 눈을 마주하지 못했고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부모님이 오실 거야”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나는 한참을 구석진 곳에서 그 시간을 기다렸다.
아, 어떻게 된 일이지? 내게 힘을 행사할 수 없는 어머니가 아닌 내게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아버지가 담임과 얼굴을 맞닥뜨리고 있었다. 분명한 건 나는 오늘 아마도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담임은 내게 손짓을 했고 두꺼운 아버지의 손길에 잡혀 나는 갓 잡은 문어처럼 바닥에 질질 끌려가야만 했다.
그 처참한 시간, 아버지가 내게 그 힘을 행사하는 동안 그 누구도 나를 구해주지 않았다.
기사 아저씨는 마치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을 환영한다,라는 인사를 하는 것처럼 승용차 뒷좌석을 문을 활짝 열어젖힌 후, 움직임 없이 기다렸다. 아버지는 팔팔 끓는 물에 문어를 구겨 넣듯 나를 밀어 넣고 또 밀어 넣고 깨끗한 구둣발, 칼로 나를 짓이겼다.
그렇게 검은 문은 닫혔다.
박물관처럼 큰 우리 집은 아버지에게 이로운 점이 많을 것이다. 비밀 노트를 사용할 때는 물론이고 나를 사냥할 때는 더욱 그렇다.
아주 긴 아버지의 해외 출장 기간 동안 나는 그 긴 복도를 빠른 뜀으로 뛰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그 시간 동안 너무 황홀한 시간을 그녀와 보냈기 때문에 지금 이 정도의 사냥감 노릇을 한다는 건 별 일 아니라 생각했다. 아버지의 비밀 노트 덕에 난 지금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긴 복도에 나를 패대기쳤고 잘 익은 문어를 칼질하기 위해 손을 걷어 부치기 시작했다.
준비 땅
나는 뛰었다. 아버지의 걸음에 맞춰 뜀을 늦췄다, 조였다, 박자를 맞추어야 했다. 그리고 스스로 도착한 비밀의 방으로 나는 안착했다. 아버지가 문을 박차며 내게 다가왔다.
아버지는 바닥에 수많은 사진을 집어던지며 말했다.
“자세히 봐”
바닥에 던져진 수많은 나의 모습들, 그 순간 처음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올려 보았다. 우리의 규칙을 내가 깨트린 셈이다. 아버지가 사냥을 할 때는 절대 그의 얼굴을 봐서는 안 되는 일이다.
아버지가 토해내듯 말했다.
“개자식”
깨끗한 구둣발이 나의 옆구리를 짓눌렀다.
“미친 새끼 죽어버려 죽어”
그리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제일 먼저 손가락으로 감촉을 확인한다. 긴 복도 끝 구석진 방의 차가운 시멘트 바닥인지 보통의 시간이 머무는 바닥인지 꼭, 확인해야만 했다.
차갑지 않았다.
바스락거리는 감촉에 안도하며 눈을 떴다. 제발 눈에 보이는 생명체는 아무도 없길 바라며 눈을 떴다.
“젠장”
어머니가 내 손을 잡았다.
“인아…”
나는 고개를 획, 돌렸다.
“인아, 괜찮니?”
어머니는 늘 말도 안 되는 것을 내게 물었다. 구둣발이 행사한 것을 알고도 그렇게 물었다. 어머니의 징징거리는 소리와 말도 안 되는 눈동자 속에 물이 떨어지기 전에 나는 대답해야 했다.
“전 괜찮아요”
등 뒤로 어머니가 움직일 때마다 나는 오렌지 향수 냄새가 코 안에 가득히 박혔다. 그리고 바스락, 소리가 들린다. 보지 않아도 어머니의 행동이 나의 눈 속에 그려졌다.
나는 잘 알고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날 때마다 나의 어머니는 내게 직접 설명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어머니 옆을 찰거머리 같이 따라다니는 저 여자가 내게 입을 열 것이다.
어머니가 내 등에게 말했다.
“그래, 넌 괜찮을 거야”
그리고 잠시 후, 문이 닫히며 오렌지 향수 냄새의 잔향만 남았다.
짙은 보라색이 떠오르는 여자, 정난희가 말했다.
“결론 먼저 말할 게
우선, 일주일 후 인이 넌 프랑스로 갈 거야
그리고 이제부터 네 이름은 유 인이 아니라 유한주야.”
정난희가 두꺼운 공책을 뒤적거리며 안경을 치켜올렸다.
“질문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 혹독한 결과였다.
나는 그녀를 물어야 했다.
“그 여자는 어떻게 됐어요?”
정난희가 미간을 찌푸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 유한주?
너 아직 모르겠어?
그 여자는 너를 이용한 거야
그렇게 수백, 아니 수천만을 벌었을 거야
네 동영상이 대한민국 바닥에 돌아다니고 있어
나는 그걸 막아야 하고,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니?”
나는 그제야 아버지가 시멘트 바닥에 흩뿌린 사진들을 떠올렸다. 눈을 뜨지 못한 채 입을 헤, 하고 벌리고 있는 나 자신, 아버지가 병신 새끼라고 소리쳤던 그 병신 새끼의 모습이 생각났다.
반 나체의 나의 모습, 그녀와 사랑에 빠졌던 나의 모습을.
정난희가 노트북을 펼치며 설명했다.
“자, 잘 봐 그 여자는 사라졌어
널 아주 비싸게 팔아먹고.”
숨이 막혔다.
아버지의 비밀 노트를 사용해서 그녀를 만난다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은 진작에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를 팔아먹은 그녀라니, 말이 되지 않는다.
분명 그녀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컴퓨터 속에는 분명 우리 둘 뿐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나를 배신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난희가 말했다.
“이 여자, 지금 수배 중이야, 알아보니 전과 아주 화려하더군
다행이라 생각해, 넌 피해자니까”
나는 소리쳤다.
“나가 나가버려”
정난희가 앙칼지게 답했다.
“안 그래도 준비 중이야”
정난희는 빠르게 방을 나갔다. 휙, 하는 소리도 나지 않게.
나는 아버지가 없는 틈을 타 다시 그녀의 집, 컴퓨터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를 찾았다. 그녀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고 시간이 갈수록 정난희의 밉살스러운 그 말들이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나,라는 존재가 기사 거리가 되어 끊임없이 사람들에 의해 어린 영혼이 조각나고 있었다.
꽃도 피지 못한 열다섯 살의 몰락? 이라니 사람들은 이렇게 설명했다.
그리고 며칠 후, 검은 천으로 얼굴을 돌돌 말아 쥔 그녀가 텔레비전에 나왔다. 그녀의 손목에는 보이지 않는 수갑이 채워진 체, 보이지 않는 얼굴이 기자에게 말했다.
“그 사람들이 원했던 거지”
순간 주위에서 온갖 욕을 퍼붓거나 야유하는 소리가 퍼졌다.
앗
그녀의 목소리다. 그녀가 맞다.
나의 엘프
1-4
나는 스스로 사냥을 당하기로 했다.
뛰고 부딪히고 굴렀다. 그렇게 구석진 방,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안착했다. 고통이 따를 것이라는 건 굉장한 공포다. 방법이 필요했다.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난 늙어서 죽지 않을 거야
예쁘게 고통 없이 죽을 거야”
내가 말했다
“어떻게?”
“목을 예쁘게 매달아야지, 그리고 확실하게 그어야 해”
구석진 방 커튼은 구세주였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말 그대로 목을 예쁘게 매달았고 손목도 확실하게 그었다. 뜨거운 물줄기가 손을 타고 발등에서 뚝, 뚝 떨어졌다.
점점 더 조여 오는 목을 감싼 벨벳의 느낌이 아득해진다.
나체로 나동그라진 입을 헤, 하고 벌리고 있던 사진 속 나, 적어도 그때만큼 나는 행복했다.
아버지가 말하는 병신 새끼였을지라도.
이 일로 프랑스 일정은 계속 뒤로 미뤄졌다. 하나 깨달은 건, 목을 예쁘게 매단다는 것은 불확실성이 많다. 확실하게 긋는 법을 써 보아도 그것 또한 굉장히 불확실했다.
그것이 아니라면 나의 생명력이 더 확실성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아버지에게 사냥을 당했다가 다시 부활하는 것처럼?
눈을 뜨기 전 바닥의 감촉을 느끼면 나는 또 바스락거리는 그곳 위에 누워 나의 바뀐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젠 이것도 지겨워지기 시작했고 불확실성을 위해 다시 예쁘게 목을 매달지 않기로 했다.
나는 꽤 잘 생긴 외모다. 정난희가 늘 그렇게 말했다.
“넌 왜 얼굴값을 못하는 거야?
그 잘생긴 얼굴은 네 아버지의 어마어마한 재력과 같다는 거 모르니?”
확실하게 긋지 못했던 나의 실수로 나는 손에 칼을 들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그만 아버지의 재력과도 같은 나의 얼굴에 상처를 남겼다.
나는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 그렇게 어머니에게 세뇌를 당해왔다. 그래서일까? 정말 꼭 같았다.
그 완벽한 같음에 아직도 아버지에게 사랑을 구걸하는 어머니는 나의 눈썹 위에 칼자국이 남았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어머니의 눈동자 속에서 흐르는 물, 덕에 나는 어머니의 의지로 성형수술을 했다.
눈썹 위의 긴 칼자국은 완벽하게 사라지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만족하는 수준에 이르러 그녀가 말하는 간단한 세 번의 수술로 끝이 났다. 그렇게 내 눈썹은 제2의 감정이 드러나는 곳이 되었다.
완벽하게 그들이 만들어 놓은 유한주.
세상과 그들에게 먹혀버린 유 인은 이제 없다.
나는 이제 유한주가 되어 살아야 한다.
유한주는 열여섯 되는 해, 눈이 펑펑 오늘날, 그렇게 프랑스행 비행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