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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봉 Nov 20. 2023

그대의 계절

3. 감기약과 스카치 캔디



2일째



그는 사진작가다. 그리고 한국 사람이지만 영국 사람이다.


우리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가 머물고 있는 곳과 나와의 거리는 대중교통으로 40분 정도가 소요된다. 그리고 환승까지 한다면 우리는 길바닥에서 시간을 버리게 된다.

서둘러야 했다.


아직 겨울도 찾아오지 않은 날씨에 나의 몸은 꽁꽁 얼어붙었다.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오한과 근육통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안돼”


나는 네 발로 방바닥을 기어 화장실로 향했다.

온몸이 불덩이인데 뜨거움을 인식 못한 내 몸은 바들바들 떨었다. 아무래도 은오와의 시간을 보낸 후 긴장이 풀렸던 탓일 것이다.


서랍 안을 뒤지며 해열제를 찾았다.


“젠장”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 남자, 테오에게 온 전화라고 난 확신했다.

발신자를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네 어디예요?”


은오의 목소리다.


“응? 누구 만나기로 했어?”


왜일까, 나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정말이지 통증도 느꼈던 것 같다.


“아, 아니 그…
 택배가 올 게 있어서”


나의 거짓말은 어제 보다 더 완벽했다.


“아, 그래?
 어제 왜 전화 안 했어?
 기다리다가 잠들었어, 혹시 전화했을 까봐
 놀라서 깼는데…”


죄책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은오야, 내가 몸이 좋지 않아”


“응? 어디 아파?
 어디가?”


“다…”


나는 울음이 입 안에서 튀어 나가는 것을 애써 눌렀다.

이것은 내 몸뚱이 때문에 튀어나올 울음이 아니었다.


“병원 가, 얼른
 택시 먼저 불러, 응?”


나는 입을 막고 울었다.

아, 이게 이럴 만한 일 인가. 나의 감정은 은행에서부터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어머니를 보낸 후, 혼자 보냈을 은오의 첫날밤, 그 하루 동안 나는 은오의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름도 멋들어진 테오와 맛있는 저녁을 먹고 근사한 와인 잔을 부딪치며 깔깔거렸고 짙은 갈색 피부와 짙은 눈동자를 보며 탐닉하고 행복한 웃음을 뱉고 또 뱉었다.


눈물이 터져 나왔지만 소리 낼 수 없었다.

자격이 없지 않은가, 나를 걱정하며 지금이라도 달려와 줄 은오가 아닌가.

은오가 말했다.


“우선 병원으로 가 있어
 내가 올라갈게
 지금은 차도 밀리지 않을 시간이야
 응? 얼른”


그때 문자가 왔다. 테오가 여러 번 전화를 한 모양이다.


“은오야, 병원 갈게
 그냥 가벼운 몸살이야 걱정 마
 알았지?”


은오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괜찮겠어?”


“응, 그럼
 병원 다녀와서 전화할게”


다시 은오가 한숨을 내쉬었다.


“흐음, 그럼 알았어
 얼른 다녀와 알았지?
 연락해”


“응”


나는 수건인지 걸레인지 모를 것으로 얼굴을 닦았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은 붓기 시작했다.


서둘러 테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나려씨, 걱정했어요”


“미안해요, 통화하고 있었어요”


“다행입니다
 나 지금 가는 중이 에요”


나의 체력이 원망스러웠다.


“저기 미안해요
 큰 일은 아니고, 제가 지금 좀 몸이 좋지 않아요
 그래서…”


테오는 소리치듯 놀라 말했다.


“아, 이런 아 이런…”


“괜찮아요 정말
 병원을 가야겠어요
 그래서…”


결국 완벽하게 빛나야 했던 오늘, 나는 병원에서 그를 만나야 했다.



테오는 아주 고집이 센 남자다.


결국 테오의 고집 덕에 나의 지저분한 방과 개수대를 보여주게 되었다.

아, 화장실은 언제 청소했었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난 마치 인생을 포기한 사람처럼 테오에게 질질 끌려 들어갔다.

아직 내려가지 않은 열과 근육통 덕에 움직이는 건 무리다.


테오는 마치 은오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나를 대했다.


약 기운에 점점 몸이 나른하고 눈꺼풀이 감기기 시작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테오씨, 미안해요
 내가 하루를 망쳤어요”


테오가 곁에 다가와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술에 대고 말했다.


“쉬이 잇, 쉬어야 해요
 그래야 정말 내 하루를 망치지 않게 되는 거예요
 눈 감아요”


나는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읊었다.


‘달콤하다 쌉쌀하다 싱그럽다 아, 따뜻하다 사랑에 빠졌다 이 지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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