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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봉 Dec 04. 2023

그대의 계절

5. 내 친구 은오


4일째


문이 굳게 닫힌 후, 은오의 마음도 굳게 닫힌 듯했다.

반복되는 연락에도 은오는 꼼짝하지 않았다.

한 가지 정확한 사실은 내가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이다.


테오에게 넋이 나가 있었던 나는 휴대전화를 확인할 수 없었고 은오의 수많은 부재중 전화를 그제야 확인했다. 내가 은오였어도 당연히 은오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은오의 심장에 생채기를 냈다.

아직 슬퍼할 게 남아 있을 것 같아 두렵다는 말은 정말이지 잔인했다.

내가 어떤 일에 처해 있어도 은오는 늘 내 편이었고 해결, 이라는 단어가 가까워지도록 날 이끌었다.


정말 나는 단단히 미쳤었다.


테오와의 시간을 잡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은오는 또다시 나를 이해하고 웃어 줄 것이라고 자신만만했다.

반나절의 시간이 하염없이 지나갔고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만약 영영 은오를 잃게 된다면, 테오를 곁에 둘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나의 인생이 달달할 수 있을 까, 은오가 없는 나의 인생을 생각하니 갑자기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계속 도리질을 했고 나오는 한숨에 땅이 백만 번은 꺼졌을 것만 같다.


밥을 먹는 내내, 들리는 나의 한숨에 테오가 말했다.


“무슨 일이에요?
 표정도 안 좋고, 한숨은 내쉬고…”


아무리 촉박한 시간 타령을 하며 애써 보려 해도 은오에 대한 미안한 감정은 계속해서 나를 지치게 했다.


나는 말했다.


“안 되겠어요 정말…
 이 시간이 정말 중요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아요”


테오는 알아들을 수 없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 테오

 내가 은오에게 실수를 했어요”


“아, 은오씨?”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테오가 말했다.


“친구잖아요?
 은오 씨도 지금 나려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예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대게 생각이 같거든요?
 사람들은 그것을 잘 모를 뿐…”


나는 테오의 말을 들은 순간 테오의 볼에 입맞춤을 하며 일어섰다.


“가야겠어요”


“으응?”


“지금 당장”


테오가 나의 손목을 끌었다.


“같이 가요”


아, 이 남자가 나를 잡는 이 느낌에 나처럼 감정이 같다,라는 생각을 또 한 번 인식하며 나는 행복에 겨웠다.


우리는 차를 빌려 타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이 시간 속에서도 테오와 함께 있다니, 나는 행운아라며 곱씹으며 낙엽이 날리는 도로를 계속 달렸다.


테오가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달콤하다.


♬something Beautiful – Robbie Williams♬



은오의 집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다행히 은오가 집에 있다는 뜻이다.

나는 서둘렀고 테오는 뒤에서 한걸음 벗어나 우리를 배려했다.


은오는 텃밭에 쭈그리고 앉아 국화를 심고 있었다.

빛이 은오를 내리쬐는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 은오를 부를 생각도 못하고 나는 넋을 놓고 보고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은오야…
 정말 미안해”


은오가 노란 국화를 들고 고개를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커다란 눈이 동그래지며 그 자리에 얼어붙은 그녀다.

 

다시 생각해 보니 미안하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조금 더 큰 소리로 다시 말했다.


“용서해 줘”


나는 코 끝이 찡해졌다.

울지 않으려고 정말 애를 쓰는 중이다.

은오가 내게 다가와 조용히 나를 안았다.

국화 향기 짙게 퍼졌다.


“은오야
 용서해 줘
 네 슬픔을 더 슬프게 했어”


은오가 말했다.


“쉬이, 쉿
 괜찮아”


그제야 테오가 우리의 모습을 사진기 속에 담는 소리가 들렸다.


“앗, 미안해요
 허락도 없이
 두 사람 너무 아름다워서…”


은오가 내게 국화를 내밀었다.


“자, 받아
 어쩐지 꽃을 사고 싶었어”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오는 어머니처럼 꼭 같이 내게 말했다.


“밥, 안 먹었지?
 뭐 먹고 싶어?
 맛있는 것 해 먹자”


은오가 나의 발개진 코를 비틀었다.


“헤헤”


“테오씨? 라고 했죠?”


“네, 인사가 늦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


분홍색 노란색 국화가 화단에 가득하다.

우리는 함께 초록색 대문 집으로 들어갔다.


하루 종일 맞은 볕 덕에 집 안은 따뜻했고 마치 한겨울 군 고구마를 들고 있는 은오의 어머니가 웃으며 나를 맞아 주실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추억을 은오가 수십 번, 수백 번 느꼈을 감정이었을 거라 생각하니 아랫배가 아릿했다.

이 감정을 평생 가져가야 한다는 것을 나는 왜 깨닫지 못했을까, 죽음에 대한 섣부른 이해는 이해가 돼도 이해가 된다고 말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은오의 말처럼 죽음의 길에 이른 사람에 대한 슬픔과 결핍은 삶 속에 젖어 함께 가는 것이다.


은오는 웃으며 앞치마를 둘렀다. 그리고 내게 잔소리를 시작했다.


“으이구
 얼굴이 엉망이야
 혼자 일수록 잘 챙겨야 하는데…”


나는 은오의 긴 잔소리가 정겨워 계속 배시시 웃었다.



우리 셋은 오늘 정말 완벽한 날을 보냈다.


그 어떤 날들 보다 더 밝게 웃는 은오를 마주했다.

테오의 끊임없는 이야기는 우리를 끊임없이 웃게 만들었다.

시간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하루가 꼬박 지나간 시간이었다.


늦은 시간과 음주로 우리는 모두 하룻밤을 은오의 집에 머물기로 했다.

은오와 나는 늘 그랬듯이 2층 방에 머물렀고 테오는 1층 손님방을 사용하기로 했다.

거실 소파에서 머물겠다는 테오의 예의를 은오는 단호하게 꺾어 버렸다.


은오와 나는 아주 오랜만에 밤하늘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릴 적 수많은 시간을 보냈던 은오의 방 창문이 새삼 참, 작게 느껴졌다.


“있잖아?
 이 창문이 이렇게 작았었나?
 이상해, 그땐 그렇게 커 보이더니…”


은오가 말했다.


“우리가 커 버린 거지
 그땐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모든 것이 다 거대해 보였어”


“응, 그런가
 와, 은오야 하늘 좀 봐
 별이 후드득 떨어질 것 같아
 굉장한 걸?”


은오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내일 날씨 정말 좋겠다
 그지?”


우린 창가에 기대어 오랫동안 밤하늘을 올려보았다.


“은오야”


“응”


“열두 시가 지났어
 이제 5일째야”


은오가 멀뚱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 사람 말이야
 영국으로 가는 거”


“아…”


“나, 따라갈까?”


은오가 놀라며 물었다


“어?
 따라가?
 진심이야?”


나는 입을 쭉 내밀며 말했다.


“뭐, 못할 것도 없지”


“일은?”


“내 일이야, 뭐…
 프리랜서인 걸”


“흐음
 근데 테오씨 입장은?
 얘기, 나눈 거야?”


나는 두 팔을 모아 팔짱을 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
 아니, 아, 무작정 따라가는 건
 모양도 참 안 좋긴 하다?”


은오가 베갯잇을 새로 갈아 끼우며 말했다.


“왜 그렇게 급해?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이럴 때일수록 천천히 생각해 보고…”


나는 은오의 말을 잘랐다.


“그게 참, 생각해 보면마주하고 있는 시간도 아까워
 나도 이게 내 모습인가 싶다
 뭔지 모르겠지만
 좀 불안해
 사실 테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실하지가 않아”


은오는 다시 놀랐다


“뭐?”


“응, 지금 그런 상황이야”


은오가 나의 코를 비틀기 위해 다가오는 것이 틀림없다.

나는 빠르게 도망치듯 이불을 덮어쓰며 소리쳤다.


“뭐 어쩔 수 없어
 내가 좋은데 어떻게…
 지금 잡지 않으면
 영원히 놓칠 것 같은 예감이야
 으아아악 몰라 몰라”


은오가 이불 위로 내 엉덩이를 때리며 잔소리했다.


“그래도 브레이크가 필요해
 너무 그렇게 다가가면
 남자는 진짜 도망가버린다?”


“쳇, 우리 예전처럼 작전을 짜야할까?”


은오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좋았어, 기다려봐
 맥주 가져올게


“우후, 오케이”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체 얼굴만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은오의 방은 늘 이렇게 바닥이 따끈했다.


나는 한 달에 한번 마술에 걸릴 때마다 은오의 방을 찾아 아랫배를 데고 누워 온종일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렇게 잠에 빠져 있다 보면 어머니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지금 안 내려오면 너희 둘 밥 없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은오와 나는 누가 더 먼저 도착할까, 내기라도 하듯 엄청난 속도로 나무 계단을 우당탕 내려가곤 했다.


아, 그립다 어머니가.

나의 삶 속에도 어머니가 남긴 장면에 이렇게 젖어들고 있었다.


우린 맥주 캔이 몇 개가 비워지는지 생각도 하지 않고 늦은 시간까지 수다를 떨며 잠이 들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포근함에 나의 모든 긴장이 녹아들었다.

굉장히 달콤한 잠을 잤던 모양이다.


해가 나의 얼굴로 들이밀며 일어나라고 재촉한다.


나는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흠흠흠”


은오가 들기름에 북어를 달달 볶아 해장국을 끓인 모양이다.

나는 벌떡 일어나 눈곱을 떼어내고 머리칼을 빗어 내렸다.

테오를 마주했을 때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작은 창문을 열었다. 공기가 달콤하다.


은오가 작은 그녀만의 화원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큰 소리로 은오를 부르려다 테오가 눈에 들어왔다.


조금 이상한 광경이다.

 테오는 은오를 부르지도 않고 마치 고양이처럼 조심스럽게 걸음을 걸으며 은오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사진을 찍었다.


그는 아예 탁자에 앉아 턱을 괴고 있었다.


잠시 나의 심장이 멈춘 것만 같았다.

숨이 막혔다.


은오와 테오와의 간격은 그 어떤 것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듯 잠시 멈추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반갑게 은오의 이름을 부를 수도, 테오의 이름을 부를 수도 없었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음에도 모른 척, 비겁하게 아닌 듯 행동해야 했다.

불길함에 다시 심장이 아팠다.


잠시 후, 은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을 인기척 없이 보고 있던 테오를 발견하고 흠칫 놀란 목소리다.


“아앗
 테오씨?”


테오는 계속 그 자리에 앉아 턱을 괴고 대답했다.


"작은 정원이 은오씨 같네요"


그 모습은 마치 로맨스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지 않은 가.


나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이 상황을 끊어 내고 싶었다. 또한 내 친구, 은오도 바라는 바 일 것이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테오, 테오
 잘 잤어요?
 여기에요 여기”


순간 태양이 나의 눈을 가렸고 아주 잠시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장면은 까맣게 붉게,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눈앞에 그들이 보이길 바라며 잠옷 바람으로 나는 계단을 쿵쾅거리며 내려갔다.

그 사이 주방으로 들어온 은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친다, 나려야”


은오와 마주 앉아 있는 테오, 그들은 하얗고 매끈한 찻잔을 앞에 두고 있었다.


은오가 벌떡 일어나 나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아, 너 진짜
 잠옷”


멍청한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며 테오의 시선을 피해 다시 쿵쾅거리며 계단을 올라섰다.


은오가 소리쳤다.


“다친다니까?”


나의 등 뒤로 은오와 테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내 심장의 이 뜨거운 불길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나는 호흡이 가빴고 화로 가득 찬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왔다.


분명 보았다.


은오를 바라보던 테오의 눈빛은 내게 주던 보통이 눈빛과는 다른 것이었다.

굉장히 밝은 빛을 눈동자에서 뿜고 있었고, 꽃을 들고 있던 은오의 모습은 더 빛이 났다.


테오에게 주인공은 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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