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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봉 Dec 18. 2023

그대의 계절

7. 테오


테오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정확히 7년 전 그녀를 처음 보았다. 

더위에 지쳐 공원 잔디밭에서 땀을 식히는 중이었다. 


인식표가 없는 떠돌이 강아지와 자신과 비슷한 머리카락 색을 띠고 있는 그녀가 함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가방 안에서 투명 봉투를 꺼내더니 플라스틱 그릇에 그것을 담아냈다. 


그 봉투 속에는 갈색 알갱이가 가득했다. 


테오는 궁금증을 풀고 말겠다는 자세를 취하며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알갱이가 담긴 그릇을 흔들며 소리를 내는 순간 갑자기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와 보이지 않았던 강아지들이 몰려들었다.


테오는 마치 영화 속에서 볼 수 있을 듯한 장면에 사진기를 들었고 그 모습을 계속 관찰했다. 


네 마리의 강아지들은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사료를 먹고 그녀의 물까지 바닥을 낸 후, 유유히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그녀의 이마 위에 땀이 범벅이 되어 머리카락이 늘러 붙어있었다. 

땀을 닦아내며 강아지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녀가 미소 짓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그때 그녀와 눈이 마주쳤고 아주 빠르게 그녀가 다가왔다. 


테오는 놀라 일어서지도 못한 채 고개를 들고 앞에 꼿꼿하게 서 있는 그녀를 올려 보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고라도 할 셈인가요?”


테오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당신이 키우는 아이들인가요?”


“맞다고 하면 신고할 건가요?”


테오는 그 따위에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말투로 전혀 다른 질문을 했다.


“런던에 살아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고 아주 무례하게 테오의 사진기를 덥석 낚아챘다.

그제야 테오는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뭐 하는 짓이에요?”


그녀는 사진기에 담긴 자신의 모습을 보며 더 큰 소리를 쳤다.


“당신이야 말로 뭐 하는 짓이지?
 나를 찍었잖아요?
 말도 안 돼
 또, 강아지를 유기한 사람으로
 만들려는 건가요?
 그때도 당신이 신고한 건가요?”


그녀는 사진기 속의 자신을 모습을 삭제하려 들었다. 


“무슨 짓이에요?
 정말 무례하군요?”


“나를 찍은 당신은
 참 신사적이군요?”


테오가 그녀처럼 자신의 사진기를 다시 습득했다. 그리고 재빨리 사진기를 하늘 위로 높이 들어 올렸다. 

180미터가 넘는 테오의 팔을 162미터가 조금 안 되는 그녀가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녀가 바뀐 태도로 애절하게 말했다.


“아, 부탁이에요
 신고만 하지 말아요
 저 아이들은 굶주렸고 누군가에게 버림을 당했어요
 내가 유기한 게 아니에요
 부탁해요, 제발”


테오의 입가에 미소가 퍼졌다. 


“한번 더 신고가 들어가면
 난 공부도 마치지 못하고 돌아가야 해요”


테오가 말했다.


“어디로?”


“한국”


테오의 눈이 커다래졌고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흠, 그렇다면 좋아요
 딱 한 시간 커피 어때요?
 물론 내가 살게요”


그녀는 의아해하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며 대답했다.


“네?
 이게 무슨…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이해가 안 되는군”


테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라는 듯 재촉했다.


“오케이?”


그녀는 다시 젖은 이마를 닦아내며 이마를 짚으며 수긍의 고개질을 끄덕였다.


“딱 한 시간요”


테오는 앞서 걸으며 그녀를 재촉했다.


한 낮 태양의 열기는 대단했다. 

카페의 그늘 속에서도 들끓는 아스팔트 위 아지랑이가 느껴졌다. 


그녀의 하얗고 도드라진 이마에 붙은 젖은 머리카락이 테오의 눈을 계속 끌었다. 

그녀는 음료를 벌컥거리더니 얼음을 와그작거리며 씩씩하게 씹어 먹었다.


그 모습에 테오는 웃음이 나왔다.

그녀도 따라 웃었다.


“자, 무슨 이야기로 한 시간을 보낼까요?”


그녀가 비웃듯 말했다.


“협박만 하지 말아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 둘은 동시에 눈을 마주하며 웃었다. 


테오는 자신의 직업을 말하며 사진 속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필요로 했다.


“글쎄, 난 놀랐어요
내 나라는 아직 동물에 관하여 
관대하지 않아요
젖도 떼지 않은 작은 강아지를 좁은 공간에 가둬 놓고
장사를 하는 펫숍이라는 감옥에서
많은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고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죠

그들 중 잔인한 인간들은
너무 커 버린 모습과 대책 없는 장난기에
진저리를 치며 버리는 일이 
다반사예요, 말도 안 되는 일이죠
그런데, 동물에 대한 인식도가 높은 이 나라가
이래도 되는 거예요?
하루에도 수십 마리를 보는 것 같아요
물론 그들을 내치거나 해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운이 좋지 않아요
먹을 것도 구걸할 수도 없어요

어쩌다 보니 난…”


그녀는 가방 속에서 플라스틱 그릇을 꺼내 보였다.


갑자기 그녀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말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사진을 쓰세요
 흐음, 나의 얼굴이 모두 나온 것도 아니고
 이 사진을 쓴다면 아마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테오가 말했다.


“흠, 뭐 
 그럴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난, 유명한 작가가 아니에요”


“그 사진으로 유명해지면요?”


테오는 눈을 동그랗게 말아 쥐듯 웃었다.


“하하하하”


그녀는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정확히 1시간!
 일어날게요, 꼭 그 사진이 잘 쓰였으면 좋겠어요
 건투를 빌어요”


테오도 함께 일어나더니 그녀의 등에 대고 소리쳤다.


“이름, 이름이요
 이름을 알려줘야죠”


그녀가 소리쳤다.


“실버, silverly”


테오는 몇 개월 후, 운 좋게 그녀의 말처럼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유기견에 관한 부정적인 시각과 문제점을 드러낸 작품으로 많은 전시회에서 도드라졌고 호평을 받았다. 


정작 테오는 실버,라는 이름의 그녀를 찾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애써 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영국을 떠난 상태였고 그 만남은 기억 속에 묻어 둬야 했다. 



7년 후

은오가 여러 색깔을 뽐내고 있는 국화를 들고 있었다. 

은오의 작은 정원의 잔디는 국화처럼 싱그럽고 반짝거렸다. 

부쩍 추워진 공기에 은오가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긴 단발머리를 질끈 묶고 있었고 곱슬머리 특유의 잔머리가 이마 위에서 바람에 리듬을 맞추며 살랑거렸다.

 

그때 테오는 숨이 멎을 뻔했다. 


7년 전 그때 그녀의 모습이었다.

자신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생각했던 장면 속으로 다시 들어가 버린 것이다.


“silverly? 맙소사”


그녀였다, Silverly.



7년 전 그때의 그가 테오라는 것을 은오는 나려 집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알아보았다. 하지만 선뜻 아는 척하며 나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급한 나려의 마음을 더 급하고 더 비좁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나려는 지금 굉장히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고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야 한다고 은오는 자신에게 가스라이팅을 했다. 


은오는 겁이 났다. 

마치 친구의 애인을 빼앗기라도 한 사람처럼 위축되었다. 실수 없는 실수를 한 셈이다.


새벽부터 급한 마음의 나려 목소리를 듣고 나니 은오 또한 밤을 꼬박 새울 수밖에 없었다. 

나려가 좋아하는 창문에 기대어 시간을 보내고 나니 오전 시간을 모두 할애해 버리고 말았다. 


은오는 어머니와 작은 카페를 운영했다. 


어머니의 빈자리가 생기고 난 후 아직 카페에 발을 들이지 않고 있었고 홀로 그곳에 있다는 생각만 해도 우울의 그림자가 자신을 집어삼킬 것 같은 느낌에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젠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머릿속에 말도 안 되는 테오의 얼굴과 나려의 얼굴이 자꾸만 교차되어 괴롭혔다. 


오랜만에 시장을 들러 두 손 가득, 장바구니가 가득 찼다.


카페 문을 열어젖힌 후, 마치 몇 년 동안 공기 순환 한 번 안 한 커피의 찌든 기름 냄새가 훅 불어 닥쳤다. 


“후우우”


어머니의 목소리가 기억 속에서 속삭였다.


“이걸 어떻게 들고 왔어?
 아이고 미련하긴”


은오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제 나 혼자 해야 하는 걸…
 괜찮아 엄마”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음악을 틀었다.


♬ Every breath you take - police♬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은오의 머리 위로 넘어가는 해를 본 순간 알았다. 


“벌써 시간이…”


볕이 반짝이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곧 추운 겨울이 들이닥칠 생각에 창문 청소를 깨끗이 마쳤다. 

오랜만에 타일 바닥에 켜켜이 쌓인 찌든 때도 말끔히 닦아 냈다.


깨끗해진 타일 바닥에 그대로 앉아 벽에 기대어 보았다. 

탁자와 시선이 비슷했고 탁자와 의자 다리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환하게 열린 문 사이로 볕을 등지고 그림자가 왔다 갔다 했다. 


“앗”


은오는 아직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 손님이라도 들어오면 낭패라는 생각에 닦던 걸레를 집어 들고 벌떡 일어났다. 


힘겨움에 끙, 하는 소리가 절로 배어 나왔다. 


아주 길고 긴 그림자가 다시 가게 안에 들어 길게 뻗어 들어왔다. 

볕을 마주한 은오의 눈이 가늘어졌고 잠시 후, 그림자의 정체가 눈에 들어왔다.


은오는 한 번의 뒤 걸음질 했다.


“아…”


테오의 그림자, 가슴 앞에 툭 튀어나온 사진기의 그림자, 테오였다. 

너무 놀란 은오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그녀의 이마 위 곱슬 머리카락이 그때처럼 맺힌 땀에 늘러 붙어 꼬부랑거렸다. 

테오는 마치 중독된 사람처럼 사진기를 잡으며 그런 그녀의 모습을 담고 싶어 안달했다. 


그때 은오가 뒤돌아서며 차가운 공기를 일으켰다. 


테오가 말했다.


“미안해요”


은오는 나려 걱정을 가장 먼저 했다.


“여긴 어떻게…
 혹시 나려에게…”


테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에요
 카페는 당연히 집 근처일 거란 생각에
 천천히 걸었어요”


테오는 은오가 어머니와 카페를 운영했다는 사실을 나려에게 들었던 적이 있었고 자석처럼 이끌리듯 다시 은오의 앞에 서 있었다.


테오가 다시 말했다.


“저기, 우리…
 우리말이에요”


우리라니, 은오는 다시 차갑게 말했다.


“저기 난 할 일이 너무 많아요
 보시다시피…”


“Silverly…
 당신 별명”


은오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참, 오래된 일이죠?
 늦었지만 축하해요
 그리고 난 지금 할 일이…”


테오가 조금 더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냥 갈 수가 없었어요
 그때 난…
 참 많이 은오 씨를 찾았어요
 그런데 이렇게 만났고 
 어떻게 내가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요?”


은오는 좀 더 자연스럽게 굴고 싶었다.


“좋은 친구가 되었잖아요?
 나려 덕분에요”


은오는 마치 나려를 잊지 말아요,라고 말하는 듯 나려의 이름을 테오에게 계속 말하고 있었다.


“은오씨”


은오는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요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우린 당연히 좋은 친구예요
 그런데 왜 난 이러는 테오 씨가
 불편한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군요
 날 불편하게 만들지 말아요
 부탁이에요”


테오는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침묵하며 은오의 등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정말이지 그녀는 철벽과도 같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그럼, 떠나기 전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을 까요?”


은오도 오랫동안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좀 시간이 걸려요
 괜찮다면…”


“감사합니다”


침묵의 시간이 조금 더 지나갔고, 은오는 갓 구워 낸 빵 조각과 뜨거운 커피를 빠르게 담아냈다. 침묵과 불편함과 어색함을 달래 줄 음악을 틀어 놓고 보니 다시 재 오픈 할 준비를 모두 마친듯한 기분이 들었다. 


“뜨거워요”


“감사합니다”


은오는 테오와 차마 얼굴을 마주할 수 없었고 주방 안 쪽으로 들어와 숨을 골랐고, 테오는 뜨거운 커피를 호호 불며 은오의 인기척을 확인하려 두리번거렸다. 


이들의 긴장된 호흡이 서로 섞여 조용히 흘러나오는 음악을 이기려 들었다. 


은오는 타일 바닥에 앉은 체,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길게 들어오던 볕이 그새 사라지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차가운 바람이 잠시 카페 안을 훑으며 지나갔다.


테오가 사라졌다.


은오는 자신도 모르게 테오가 앉았던 빈자리를 확인하며 재빨리 밖으로 뛰어나갔다.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테오는 사라졌다. 


은오의 긴 한숨이 다시 후, 하고 뿜어져 나왔다. 


그가 앉았던 자리에 여러 장의 사진들이 놓여 있었고 은오는 그 자리에 앉아 테오처럼 사진을 바라보았다. 


7년 전 그때의 사진이다. 


그리고 7년 후 지금 은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놓여 있었다. 



테오는 카페를 나와 골목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숨을 죽이며 그녀가 자신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것을 확인했다.

사연 모를 미소를 지으며 테오는 갈 길을 재촉했다.


그녀가 내어 준 진한 커피의 향기가 입술 위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With coffee – Brown e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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