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 나는 버스에 올랐다.
시골집에 오는 일은 자주 있는 상황이 아니다.
친구 은오의 모친상이었다. 오랜 지병으로 결국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우리의 어릴 적 작은 페이지에 늘 함께 계셨던 분이 먼 길을 떠났다.
은오는 병마에 시달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처음에는 세상이 뒤집어지고 모든 것이 불에 타서 사라지는 것처럼 애가 타고 또 아팠다고 했다.
점점 시간이 지나갔고, 병마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되돌이표처럼 늘 같았고 그렇게 무디어지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위장에 있는 모든 것들을 게워내는 어머니의 모습에 은오는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처음엔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이제 난 지금 엄마가 느끼는 고통 따위에
애타는 감정이 겹쳐지지가 않아
아, 그렇구나?
치워야지, 하는 생각…
가끔은 사는 것보다 저기가 나을까?라고
자고 있는 엄마 등 뒤에 대고 속삭이기도 했어”
은오의 어머니는 병원에서 억지스럽게 말한 3개월이란 시간보다 1년을 더 버티고 가셨다.
뒤틀린 위장 때문에 보통 음식을 넘기지 못했던 분이 그 마지막 날 너무 간절하게 치킨을 먹고 싶다고 하셨다. 치킨이 어머니의 마지막 음식이라고 생각하니 은오는 기가 막혔다.
“정말이지 맛있게 드셨어”
장례를 마친 뒤, 나는 은오의 슬픔과 안정을 확인하기 위해 은오의 집으로 나섰다.
약속을 하고 왔지만 은오가 기척이 없다.
익히 알고 있던 번호를 누르고 급히 집안을 살폈다. 마음이 점점 다급하다.
“은오야, 유은오?”
은오가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인 곳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양념이 묻어 있는 치킨 상자를 들고 있었다.
“은오야”
나는 말없이 은오를 안았다.
은오는 그렇게 오랫동안 흘리지 못했던 눈물을 모두 쏟아냈다.
마음이 단단한 은오는 또 그렇게 단단히 버티고 살아낼 것이다.
죽음의 마지막 길을 보는 경험은 그리 쉬운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굉장히 긴 시간이 흘러간 것만 같았고 버스에 몸을 싣자 그제야 온몸의 긴장이 녹아내렸다.
특유의 버스 냄새가 오늘만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어폰을 꽂으며 기사 아저씨가 얼른 표를 확인해 주기만을 기다렸다.
그저 잠을 자고 싶었다.
♬ Let it Be – Nick Cave
눈을 떴을 땐, 이미 시골을 벗어나 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버스의 덜컹거림은 늘 내게 안식을 준다.
추위가 시작된 이 가을의 계절 문턱에 빛나는 햇살은 참, 따뜻하다.
나는 눈을 감고 햇살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때 커튼을 잡아채며 햇살을 막아버린 짙은 갈색 손등이 눈에 들어왔다. 앞 좌석에서 닫아 버린 커튼 덕에 햇살은 내게 반 틈 만을 허락했다.
앗, 짙은 나무 향기가 났다.
그때부터 난, 꽤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감정 선이 불뚝, 솟아난 것을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은오의 슬픔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뭐 하는 짓…”
며칠 전 은행에서 마주친 짙고 짙은 혈색의 그 사람, 그 남자가 떠올랐다.
나의 짐작이 맞는 거라면 이것은 우연이 아닌 인연일 지도 모른다는 주책을 떨었다.
애꿎은 안전벨트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고속버스는 종점에 도착했다.
나는 아직 미확인체를 확인하기 위해 그 보다 먼저 일어섰다. 미확인체가 나의 뒤에 서길 바라며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나무 향기가 이번에는 내 귓등을 스치며 날아왔다.
보지 않은 척, 완벽하게 확인해야 한다.
아, 그 사람이 맞다.
짙은 색을 갖고 환한 빛을 뿜어 냈던 그 사람.
내게 이런 발칙한 면이 있었다니, 은오가 갖게 된 슬픔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그가 가는 길을 따르고 있었다.
휴대전화의 진동은 언제부터 울렸을까, 나의 모른 척은 이제 양심도 날아가버린 상태다.
큰 키의 그 사람은 자신의 상체를 온전히 덮을 만큼의 크기의 배낭을 메고 있었고, 허리에 질끈 묶은 청 재킷은 걸을 때마다 힘차게 날렸다.
다시 주머니 속 휴대전화의 진동이 사납게 울렸다.
그가 도넛 판매점으로 향하는 것을 확인한 후 발신자 확인도 하지 않은 채, 휴대전화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미안합니다 제가 바빠서요”
빠르게 종료 버튼을 누른 후, 나의 발은 이미 도넛 판매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은오의 슬픔 속이야 말로 단맛의 치료제가 필요할 것이다.
한데 내가 지금 달콤한 도넛과 커피를 마주했다. 나는 자꾸만 올라오는 죄책감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와 나는 조금의 거리를 두고 얼굴을 마주 보고 있었다.
그의 커다란 배낭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다리를 조금씩 비켜서게 만들었다. 그럴 때마다 그의 고개가 숙여졌고 눈가의 미소가 공중에 분해되고 있었다.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그처럼 미소 지으며 지나갔다.
지금 나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우스꽝스럽다.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그를 확인하기 위해 눈은 치켜뜨고 있었으며 다리는 덜덜덜, 입술은 치아로 질겅거렸다.
한 입 베어 문 도넛의 달콤함에 은오의 슬픔이 끼쳐와 일초동안 심장이 아렸다.
다시 휴대전화의 진동이 시작되었고, 확인한 발신자는 은오다.
나는 은오의 슬픔에 긴장이 되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은오야”
은오의 목소리는 여전히 가늘고 음울했다.
“도착했어?”
“응, 그럼
지하철 기다리는 중이야
밥은 먹었어?”
나는 내가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란 것을 오늘 깨닫는 중이다.
은오는 한숨을 길게 쉬었다.
“하아… 조심해서 가고 문자 해”
“그럴 게, 은오야 눈 좀 붙여”
“응”
방망이질하던 심장이 아주 조용하게 뛰기 시작했다.
이런, 맙소사
짙은 나무 향기의 그 남자 내게 다가온다.
나는 확인할 것도 없는 뒤를 보는 척하며 이제까지 내가 한 행동과는 거리가 먼 행동을 했다.
한 모금도 먹지 못한 커피를 뒤로 한 채 나는 일어섰다.
어디로든 그냥 가야 했다.
남자의 목소리가 가을의 햇살처럼 짙고 따뜻했다.
“저기, 실례합니다”
듣지 못한 척을 하기엔 그와 나의 사이는 밀착되어 있었다.
아마도 난 그때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또다시 눈은 치켜뜨고 있었을 것이다.
아주 못생긴 얼굴로.
나는 그대로 얼어붙어 그 자리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우리말이에요
우리, 혹시 은행에서”
그제야 나는 고개를 들었고 그와 눈이 마주쳤다.
큰 키의 얼굴을 보기 위해 나의 고개는 마치 누군가 머리채를 뒤로 잡아챈 것처럼 들어 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군요 하하
함께 앉아도 될까요?”
이런 바보 멍청이, 나는 순간 말을 잃은 자가 되어 또다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그럼 잠시만요”
남자는 자신의 배낭을 챙겨 다시 내 앞에 앉았다.
그가 다시 내 앞에 앉은 순간, 우린 몇 초였을 까?
서로를 빤히 들여 다 보았다. 이런 느낌은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정말이지 우린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이지 않았을까?
그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터미널 내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그 시간 동안 우린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린 계속 서로를 빤히 들여 다 보았다.
아주 깊게 속눈썹의 개수를 셀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들여 다 보았다.
나는 그 사람의 긴 여행 중, 만난 사람 중, 하나다.
그리고 열흘 뒤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열흘이란 시간이라니.
나는 지금 이 하루 중 단 한 시간 만에 사랑에 빠졌다. 그것도 은오의 슬픔을 한편에 둔 체, 양심도 없이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런데 열흘 후 그는 떠난다. 나의 발이 버둥거렸다.
열흘 중, 하루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땐 따뜻한 갈색 빛 햇살이 비추는 가을의 계절이 사라질 것이다.
온데 간데없이.
그 흔적을 계절에 잡아 둬야만 했다.
간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