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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봉 Nov 06. 2023

그대의 계절

1. 프롤로그


그 사람을 떠올린다는 건 그 계절이 다가왔다는 것.


그를 처음 본 건 낭만도 감정을 자아낼 풍경도 하나 없는 은행이었다.


그땐 모두가 그렇게도 열심히 순서표를 뽑고 은행 한편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그 어떤 불평 없이 또는 불편 없이 그때 우리는 그랬었다.


내 차례를 기다리며 나 홀로 감정을 뿜어내는 흥분된 음악이 오직 나의 귓속만을 간질였다.


♬Sorry Seems To Be Hardest Word-Blue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의 발과 앞을 보며 다투듯 걸었다.


그때의 감정을 표현하려 준비에 들어가기만 해도 나의 심장이 요동친다.

그가 나의 대각선 왼쪽에서부터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창피함도 느낄 수 없이 그에게 고정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 검게 선명하게 짙은 나무 향기가 스쳤다.


그가 나를 보았다.

우린 눈이 마주쳤고 얼빠진 나의 턱을 알아차리기라도 했는지 그는 내게 미칠 정도로 매력적인 눈웃음을 지으며 사라졌다.


한참 동안 나의 턱은 빠져 있었고 나의 순서를 가리키는 번호가 띵동, 하며 나타났다.

나는 빠르게 자리를 박차고 나무 향기를 따라나섰다.


두리번두리번


나의 뇌에 깊게 박힌 짙은 나무 향기와 짙은 얼굴은 그렇게 사라졌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 미친 감정, 단 몇 분의 시간만에 느낀 이 블랙홀의 소용돌이.


뜨거웠다, 나의 심장이 붉은 단풍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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