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상처 난 미간
그 해, 우리 집에 큰 사건이 일어났다.
난 그때 엄마의 얼굴과 행동과 마음을 들여 다 본 것처럼 아주 상세하게 기억한다. 엄만 그때 정말 힘들어 보였다. 우리 셋은 솔직히 할머니, 할아버지를 잘 모른다. 엄마의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셔서 그저 사진으로만 인사를 나누었고, 아빠의 아빠,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우리가 유일하게 얼굴을 아는 존재였다.
어른들 말을 몰래 들은 바로는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새 할머니와 살다가 헤어지셨고 또 다른 할머니와 살다가 또 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또 라고 했었나, 아, 생각만 해도 복잡한 어른들의 생활이다.
할아버지는 꽤 많은 재산으로 여기 저기 여행을 다니시며 살았고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게 문제다. 할아버지의 돈이 다 떨어질 무렵, 그 분은 우리의 아주 괜찮은 두 번째 집으로 무작정 짐을 싸서 오신 것이다. 이건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 당시, 아주 예민하고 그 누구도 상대하기 싫어하는 언니가 방을 내 주어야 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물론 나는 언니와 방을 함께 쓰고 있었지만 내게는 권한이 없었기에 언니의 방이라고 일컫는 게 속이 편하다.
처음 할아버지가 집으로 오셨을 때, 우리 또는 엄마의 생각으로 비추어 봤을 때,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실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후 나의 엄마가 가장 무서워하거나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고모가 집에 온 것이다.
엄마는 우리의 첫 번째 집을 싫어했다.
왜냐면 고모의 집과 가까웠기 때문이다. 우리가 엄마의 뱃속에서 나오기 전 첫 번째 집으로 이사를 오기가 죽기 보다 싫어서 며칠을 아빠와 떨어져서 지냈다고 한다. 그렇게 고집을 피워 봤지만 엄만, 끝내 우리의 첫 번째 집으로 올 수밖에 없었고, 드디어 광명을 찾아 두 번째 집으로 온 것인데, 이런 시련이 나의 엄마에게 닥치다니, 생각할수록 끔찍했고, 가련한 나의 엄마가 참 불쌍했다.
겨우 찾은 광명은 서서히 어둠에 가려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고모는 아빠의 누나다. 나이 차이가 꽤 있다. 그래서 일까? 내가 봐도 고모는 정말 무섭다.
사람의 외모를 글로 표현하는 게 참 어리석은 일이지만 난 어릴 적 고모의 얼굴을 보면 독이 있는 두꺼비가 생각났다. 두꺼비는 화가 날 때에 배를 부풀려 엄청나게 몸이 커진다고 들었다.
나는 실제 그 모습도 봤다. 정말 비슷했다.
고모, 죄송하지만 그땐 전 정말 그렇게 겁을 먹었었답니다. 내가 무서워하는 사람 또는 귀신, 인형, 을 합쳐 열 손가락 안에 들어 갈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 그러니 나의 엄마를 이해하고도 남을 일이지 않은 가.
고모는 할아버지와 언니의 방에서 아주 긴 이야기를 아주 비밀스럽게 나누고 있었다. 엄마는 안절부절 세상의 모든 짜증을 끌어 모아 우리에게 나눠주는 중이었다. 엄마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기까지 했다. 이럴 때 왜, 나의 아빠는 옆에 없는지, 엄마의 지원군은 아무도 없었다.
고모는 뚱뚱한 몸으로 뒤뚱거리며 거실로 나왔다. 우린 당연히 안방으로 숨어 들어 갔다. 아무리 귀를 기울여 봐도 고모의 단호한 목소리만 들릴 뿐, 나의 불쌍한 엄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마치 내가 학교에서 선생님의 물음에 답할 때처럼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얼굴뿐 아니라 이런 면은 엄마와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갑자기 고모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커졌다. 나의 엄마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저렇게 소리를 지르는 걸까, 아 나는 고모가 너무 미웠고 잘은 모르지만 왠지 같은 편일 것 같은 할아버지도 너무 미웠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소중한 우리의 연립 아파트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언니의 방에서 담배를 피웠다. 지금이라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정말이지 우성이의 똥 냄새 보다도 더 지독했다. 나는 살며시 안방 문을 열었다. 그리고 틈새로 고모를 보았다.
악, 깜짝이야. 눈이 마주쳤다.
나는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피하지 않았고 오히려 씩씩거렸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난 그때 정말 흥분했고 정말 화가 났었다. 고모에게도 난 착한 아이 였던 터라, 나의 동그란 눈을 보고 조금 놀란 눈치다.
아니다, 이건 나의 착각일 수도 있겠다. 왜냐면 그렇게 나를 보고 나서도 고모는 끝까지 자기 할 말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엄마 뱃속에서 이제 그만 살고 싶어 나왔을 때, 고모는 아들이 아니라며 내 얼굴을 보지도 않았다. 난 그 소리를 듣고 기가 막혔다. 자신도 딸이 있었고, 여자면서, 어찌 나를 비난한단 말인가, 또한 내가 어떤 아이인 줄도 모르고 방금 환한 빛을 본 아이를 그렇게 대접하다니.
그렇게 나의 이름은 그 누구도 지어주지 않았다. 아빠의 사정은 잘 모르겠다. 아닌 척하며 나를 대면대면 한 건지, 실망은 했지만 소중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나의 집이었던 나의 엄마가 손수 지어 준 이름, 우재가 되었다.
참으로 남성스러운 이름이 아닌가, 아직도 나의 이름을 말하면 다들 성별이 남자 인 줄 오해한다. 어쩌면 엄마도 나를 사내아이로 생각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도 해 보았다.
하지만 난 나의 이름이 좋다. 왜냐면 나를 반기지 않았던 사람들 가운데 유일하게 나를 반기고 사랑해 준 나의 엄마가 지어준 이름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고모가 돌아간 뒤 당분간, 이라는 희망적인 거짓말에 속아 넘어갔다.
그렇게 할아버지와 우린 함께 살게 되었다. 그 날 아빠는 퇴근 후, 그 무지막지 한 권력과 용기를 가진 남자의 모습은 온데 간데없이 사라지고 도망치듯, 또 밖으로 나갔다. 물론 꼴깍, 한 잔을 하러, 아니, 몇 병을 마시러 말이다.
엄마는 더 많은 양의 반찬과 밥을 해야 했고 대충, 점심을 때우는 날들은 사라지고 늘 제대로 챙겨줘야 하는 할아버지 때문에 미간에 마치 상처가 생긴 것처럼 내 천 자가 늘 선명했다.
그래 맞다. 그 자국은 상처였다.
방을 빼앗긴 나의 언니 우정이의 살벌함은 가히 설명할 길이 없다. 사나운 개처럼 막 달려 들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결국 불쌍한 나의 동생 우성이는 방이 없는 아이가 되었다. 우성이의 방이 우정이의 방으로 탈바꿈되고 말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언니의 방을 함께 쓰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그때부터 우성이는 자신의 방 하나 없이 학창시절을 보냈다. 물론 할아버지와 함께 쓰긴 했지만 담배 냄새 나는 곳에서 무슨 공부가 됐을 까 싶다.
우리 할아버지는 참, 염치도 없으신 분이다. 자식의 결혼식에도 유량을 다니느라 오지도 않았고, 돈 한 푼 보태 주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러다 갈 곳도, 돈도 없으니 자식에게 숟가락만 들고 온 모습이라니, 아니다 숟가락도 갖고 오지 않지 않았나. 내가 만약 아빠였다 해도 이 상황을 받아드렸을까, 싶다.
날이 갈수록 엄마의 청순하고 단아했던 모습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동네의 무서운 아주머니들처럼 똑같이 변해 갔다. 이유 없이 빗자루를 들고 우릴 혼내거나 우리의 웃음 소리만으로도 화가 날 수 있는 지, 욕을 퍼붓기도 했다.
간혹, 혼자 허공에 눈을 고정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마치 봄에 핀 꽃이 점점 시들어 가는 것과 같았다. 엄마의 꽃은 이제 피어 나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함에 나는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나는 더더욱 열심히 할아버지를 미워하기로 했다.
나는 두 번째 소풍을 준비했다.
당연히 엄마가 싸 준 김밥을 들고 소풍 장소에 찾아온 엄마를 찾아 얼른 달려갈 생각뿐이다. 하지만 난 너무 큰 절망에 빠져들었다.
엄마가 아팠다. 감기 몸살이다.
아, 그렇다면 아빠가 올 거야, 라는 생각을, 기대를, 기도를 했다.
하지만 모든 상상은 무너져버렸다.
나의 김밥도 달콤한 음료수도 온전히 나만 바라보고 있는 엄마도 없을 것이다.
젠장, 나도 아프고 싶었다. 아니 그냥 휙, 하고 쓰러져서 입원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니면 돌부리에 일부러 걸려 넘어져 볼까, 생각도 했다.
그래, 거기 까진 괜찮다. 소풍을 마치고 빠르게 연립 아파트로 돌아오면 되는 거다.
난 이를 악물었다. 헌데 엄마와 아빠는 이상한 수를 놓고 있었다. 나에게 의견도 묻지 않은 체, 그럴 일이 있을 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제발 나의 생각을 물어봐 주지, 나는 또 그렇게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이게 있을 법한 일인 가, 말이다.
헐, 나는 그렇게 할아버지와 함께 소풍을 갔다. 난 할아버지를 그때 처음 본 것과 같았기 때문에 어떤 친숙함이나 끈끈한 정, 같은 게 없었다. 게다가 엄마가 꽃을 활짝 피울 때까지 미워하기로 했기 때문에 함께, 라는 말은 우리에게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었다.
아직은 그냥 남 같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또한 할아버지는 늘 당신이 먼저여야 하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나쁘게 말하면 아주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거다.
할아버지는 키가 정말 크다. 그리고 오른 쪽 다리가 불편하다.
늘 절 룩, 하고 걸어야만 했다. 그 다리는 일제 시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떤 잘못도 없이 그냥 일본 순사에게 끌려가 매를 맞았다고 한다. 아직은 남 같은 할아버지지만 이 일만큼은 생각할수록 화가 치미는 일이다.
아빠는 그 사실을 바탕으로 할아버지의 억울함, 을 찾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똑 부러진 증거가 없다면 그것은 없는 일이다. 라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시간이 더 흐른 후, 할아버지는 지팡이 없이는 걷지 못했다.
그것이 할아버지의 오른 발이기 때문이다. 불편한 다리로 할아버지는 늘 움직인다. 새벽부터 운동을 했고 아침을 해결하면 다시 나갔다.
우리 집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할아버지다. 그리고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 밥은 늘 고봉처럼 드시지만 그 쌀들은 모두 어디로 간단 말인가, 그렇게 삐죽, 키가 큰 할아버지와 나는 소풍을 갔다.
너무 슬펐고 우울했지만 소풍 장소에 도착해서 가을 햇빛에 반짝이는 강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할아버지도 함께 강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점심 시간, 아이들은 엄마를 찾아 돗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알록달록한 과일과 색동 저고리 같은 색의 김밥을 입에 집어넣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아이들, 이다. 난 돗자리도 가져오지 않은 할아버지를 보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릴 뻔했지만 정말 꾹, 참았다.
나는 착한 아이여만 하니까.
나는 찬찬히 할아버지의 두 손을 다시 살폈다. 그런데 정말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하다 못해 빵이라도 가져올 생각을 못했던 걸까, 아니다. 엄마는 왜 할아버지에게 내 몫을 챙겨주지 않았을 까, 내가 굶어도 되는 거라 생각했을까?
아, 한끼 밖에 안되니까 괜찮겠지? 라고?
그리고 아빠는 뭐 하는 분일까? 나를 이렇게 홀로 김밥 없는 소풍, 돗자리 없는 소풍에 덩그러니, 떨어 뜨려 놓다니 말이다. 당연히 난 배고프지는 않았다.
그저 절뚝거리고 삐죽하고 머리가 하얀 정말 누가 봐도 할아버지 같은 할아버지가 창피했다. 앉을 곳도 없이 우린 서성거리거나 돌 바닥에 앉았다. 그러다 할아버지는 나를 무작정 끌고, 어묵 장사하는 아저씨에게 데려 갔다.
“오뎅 묵으라.”
어른들은 참 막무가내다.
왜 또 물어보지 않는 걸까? 난 어묵 따위가 먹고 싶을 리 없었다.
할아버지는 긴 막대를 내게 쥐어 주며 또 말했다.
“무라.”
난 그것을 또 착하게 받아 들어 뜨거운 김을 식혀가며 조금씩 베어 물었다. 그런데 순간 닭 똥 같은 눈물이 무슨 폭포수처럼 흘렀다. 얼마나 많은 양의 눈물인지 눈 앞에서 파도의 물결이 쳤다.
도저히 반 정도 남은 어묵을 마저 먹을 수가 없어서 내려 놓았다.
할아버지는 왜 쓸데없이 눈물 바람이냐고 다그치며 내가 남긴 어묵을 간장까지 찍어가며 입에 넣었다. 이 와중에 간장을 찍다니, 정말 간장까지 찍어 먹을 여유와 엄마 없는 김밥 없는 나의 대한 연민은 조금도 없었던 것일까.
그 날 이후로 난 어묵을 절대 간장에 찍어 먹지 않는다.
난 정말 찍 소리도 내지 않고 엉엉, 울었다. 나는 소리내지 않고 엉엉, 우는 게 가능한 아이였다. 나는 계속 엉엉, 대며 강가 앞 돌 덩어리에 풀썩 주저 앉았다.
햇빛은 눈치도 없이 내 눈을 계속 쏘아붙였다. 게다가 찬 바람이 불 때 즘 요란 떠는 나의 비염은 또 재채기를 연발하게 만들었다. 역시 콧물도 나를 한방 먹인다. 난 옷에다 그냥 쓱쓱, 닦아 버렸다.
어차피 엄마도 김밥도 돗자리도 그리고 아빠도 없는 아이니까, 누가 나를 신경 써 준 단 말인가?
그 누구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
태어나서 우재라는 관심 섞인 이름을 갖긴 했지만 어쩌면 난, 태어나지 말아야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그 때 처음 해 보았다. 태어날 때부터 나를 좋아해 준 사람이 있었을 까?
이제야, 마른 눈물을 훌쩍, 하는 나를 보고 할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다. 왜 점심 시간은 이리도 긴 시간일까? 나에게 너무 잔인한 시간이었다.
이 학교에 전학을 오기 전 학교 담임 선생은 내 꿈 속에 자리했던 그 무시무시한 얼굴의 선생님이었다. 선생은 도시락을 들고 있었는데, 점심 시간이 아님에도 책상에 앉아서 밥을 먹었다. 물론 우린 그때 선생이 말하는 글을 적거나 책을 읽었다.
나는 그 때 분명히 보았다. 선생님의 투명한 도시락은 붉었고 군데군데 검은 알갱이 들이 박혀 있는 음식을 말이다.책을 읽는 척 그것을 먹는 모습을 보고 도시락을 아주 자세히 살폈다.
검은 색의 알갱이는 분명 총알 같았다.
나는 왜 내 기억속에 총알이 밥 알에 박힌 시뻘건 무엇으로 비벼서 싼 도시락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설마 총알을 먹는 선생?
이 생각이 상상이라고 해도 좋지만 내 기억은 그랬다. 그리고 선명하다. 그 도시락은 분명 보통 도시락이 아님을 말이다. 그리고 짧은 머리카락과 대단히 큰 머리와 얼굴을 가진 선생님은 당연히 입술도 무지막지하게 컸다. 도시락의 내용물을 한 입에 넣을 땐 아, 나는 지금도 소름이 끼쳤다.
다행히 전학을 와서 그 무시무시한 도시락을 보지 않게 되어 잘 된 일이지만 이곳마저 내게 이런 시련들이 닥치게 할 줄은 전혀 상상도 못했다.
나는 전과 다르게, 또는 학교 생활을 힘들어하는 부분과는 다르게, 지금의 담임 선생님을 좋아한다.
우선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단발 머리카락은 굉장히 풍성했고 진한 갈색은 온화해 보이기까지 했다. 선생님이 내가 앉은 자리를 왔다 갔다 하면서 책을 읽을 땐 엄마가 바르는 로션처럼 향긋한 파우더 냄새가 났다. 가까이 서 긴 대화를 해 보지 않았지만 난 선생님이 좋았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얕은 강에 돌을 던진다. 참, 할 일 없는 행동이다.
아, 이럴 수가. 나의 눈동자가 왔다 갔다, 하고 있다. 가을 잎을 입은 것처럼, 갈색 투피스를 입은 나의 선생님이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선생님은 분명 나의 눈을 마주하고 있었고 내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난 움직일 수 가 없다.
이런, 선생님은 이제 바로 내 앞에 서 있다. 마치 따뜻한 햇살 같은 파우더 냄새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할아버님, 안녕하세요 전 우재 담임 선생님입니다.”
할아버지는 어묵을 간장에 찍어 위 속에 집어넣었던 힘을 모아 벌떡 일어서며 인사를 나누었다. 난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때 할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우재 일어나야 지.”
“괜찮아요, 할아버님.”
선생님은 내 키만큼 쪼그려 앉아 네모난 상자를 내게 들이밀었다.
“우재야 이것 도시락이야 엄마께서 전화를 하셨어, 같이 못 와서 우리 우재 걱정이 많으시네.”
난 속으로 중얼거렸다.
‘거짓말.’
“자 받아, 할아버지와 함께 먹으렴.”
난 그때 정말 묻고 싶었다.
이 도시락이 정말 나의 엄마가 선생님에게 부탁을 한 건지 말이다. 선생님은 주황색 음료수도 내 손에 꼭 쥐어 주었다.
난 또 모기의 날개 짓 소리를 낸다.
“감사합니다.”
역시 착한 아이는 감사하다, 고맙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를 잘 해야 하는 법이니까.
할아버지는 연신 선생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다. 오직 나의 궁금증은 도시락의 출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다. 나의 엄마는 선생님에게 전화를 한 적도 없고 도시락을 대신 전해달라는 부탁도 없었다.
나의 기대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엄마를 사랑하게 만들었지만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그 때부터 난 아주 쓸쓸하거나 삐딱하거나 툴툴거리는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나의 소중한 도시락의 색동저고리를 한 입에 집어넣어 구겨버리고 있었다. 난 도저히 그 소중한 도시락을 먹을 수가 없었다. 내친 김에 난 주황색 음료수를 할아버지에게 내밀었다.
“니 먹어.”
라는 가래 끓는 소리가 들렸지만 벌써 음료수는 할아버지의 손아귀에 잡혀 있었다.
나의 선생님, 보름달 얼굴, 가을 잎 옷을 입은 햇살의 빛을 닮은 나의 선생님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