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장
처음에는 누구나 '그리고 싶은 욕망'에 이끌려 그림을 그리지만, 점차 매너리즘에
빠지고 의욕을 잃는다. 특히 타인을 그릴 때는 그를 존중하는 마음이 은연중 작용해서,
잘 그려야 한다는 생각에 조심성이 작동한다. 매너리즘에 더 깊이 빠지고 의욕상실이
악화되는 것이다. 반면에 자신을 그릴 때는 이런 조심성에서 벗어나 '그리고 싶은 욕망'이
되살아난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한 가지 방법이 자화상 그리기다.
자화상은 그리기 쉽다. 막 그릴수록 잘 그려진다. '그리고 싶은 욕망'이 충분히 분출되어
마음과 손이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화상 그리기를 어려워한다.
자신의 모습과 똑같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그리는 내내 시달린다.
그런데 우리는 거울을 볼 때마다 자신의 모습이 형태, 색채, 분위기 등에 있어서 늘 변하는 것을
느낀다. 똑같이 그린다는 목표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설령 순간적인 자기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고정시켜 똑같이 그릴 수 있다 해도 일부러 다르게
그리는 것이 좋다. '나'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을 버리고, 이런저런 점들을 새로 발견하여
자신에 대한 생각을 확장하기 위해서다.
자화상은 그 제작의도부터 실용적인 용도로 찍는 증명사진이나 한 인물의 삶을 특별히
기념하기 위해 그리는 초상화와 다르다. 외부의 평가나 미술시장을 염두에 두지 않고
그리는 경우가 많다. 자화상은 그리고 싶다는 순수한 욕망과 예술적인 흥취에 이끌려
창작한 '작품'이다.
'작품'은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대상으로부터 독립하여 자기만의 존재성을 갖는다.
그려진 풍경이 실제 풍경과 똑같으냐 아니냐 하는 질문처럼, 그려진 인물이 작가와 똑같으냐
아니냐 하는 질문 역시 우문(愚問)이다. 자화상은 그 자체로서 작품이며,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래 두 그림은 십여 년의 시간 차를 두고 그린 나의 자화상들이다.
<Self-Portrait, Oil on Canvas, 53 x 45.5 cm, 2006>
<Self-Portrait, Oil on Canvas, 53 x 45.5 cm,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