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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담 Dec 08. 2023

청년 다자이를 만나는 시간

다자이 오사무 <만년>

 만년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간실격으로 다자이의 생애를 들여다본 나는 그의 청년시절이 녹아있는 작품 만년을 읽지 않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은 청년 다자이가 써 내려간 단편 열다섯 편이 수록되어 있는 그의 첫 창작집이다. 다자이의 말에 따르면 그는 이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태어났다고 했다.


 이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배경은 사실 매우 어둡다. 이는 작품 가장 처음에 실린 단편 <잎>의 서두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죽을 생각이었다. 고로 만년의 의미는 그에게 유서였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좌익 운동에 가담하면서 느껴야 했던 모순과 괴리, 자살시도에서 동반 여성은 죽고 자신은 살아남은 죄책감, 생가와 불화, 첫 아내 하쓰요에게 다른 남자가 있었다는 충격, 그리고 생활고까지.

 

 그의 삶을 돌아보면서 참으로 기구하다 여겼다. 그러나 그는 기구한 삶 속에서도 오로지 하나 글쓰기만은 멈추지 않았다. 글을 쓰는 행위는 곧 그에게 구원이었으므로. 치열한 삶 속에서 태어난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죽음이 각오되어 있었다.


 그래서일까. 아무래도 역시 만년을 대표하는 두 작품 <추억>과 <어릿광대의 꽃>이 완독 후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단편 여기저기에 다자이 오사무라는 사람이 묻어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글이니까.


 추억은 작가의 유년기와 소년기를 그려낸 자전적 소설로 솔직하고도 어쩐지 애틋한 느낌의 소설이었다. 미요를 향한 다자이의 마음이 드러나는 함께 포도를 따는 장면에서 특히 더 그랬다.


 추억과 더불어 만년의 중심을 이루는 작품 어릿광대의 꽃은 아마 만년에서 딱 한 작품만 꼽아본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작품을 선택할 것이다. 이 소설은 그냥 청년 다자이다.


 처음에 '바다'라는 소박한 글로 시작했다는 이 글은 작가의 난도질에 가까운 작업을 거쳐 탄생했다고 한다. 실제로 오바 요조라는 인물을 앞세운 이 소설에선 다자이 자신이 직접 작품의 흐름에 개입하면서 내면과 외부를 넘나들며 표현하는 점이 인상 깊다.


 인간실격을 통해 요조를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일 수 없느냐가 곧 다자이 오사무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간주하던 나였으므로 역시나 같은 이름의 요조가 등장한 이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실격으로 본 그의 생애중에서 좌익운동을 하다가 술집 여성과 투신자살시도를 한 후 혼자만 살아남았던 죄의식에 사로잡혔던 다자이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묘사한 글 같았다.


 다자이를 생각하노라면 사람에게 다가가지 못하지만 누구보다 사람에게 닿고 싶었던 사람, 생에 발을 붙이기 어려운 사람이면서 동시에 누구보다 살고 싶었던 사람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 책을 읽고 있으니까 다시 인간실격이 읽고 싶어졌다. 조만간 그의 작품을 다시 꺼내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인간실격으로 유명한 그이지만 다자이를 알고 싶다면 만년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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